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발탄 (문단 편집) == 시대 배경 == 당시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던 한국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오발탄의 배경인 [[이승만]] 정권 시대의 한국 경제는 정말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공식 집계된 실업률만 30%에 육박했고 대학교 졸업생의 실업률은 무려 50%나 되었다. 이런 상황이니 당시 각 언론들은 대학교를 가리켜 "지식을 갖춘 고등실업자 양성소." 라고 비꼬기 바빴고 더 나아가서는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교 나와 봤자, 죄다 실업자만 되는데 이런 대학교에 뭐하려고 돈을 쏟아 붓는가? 대학교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 는 논조의 ‘대학망국론’ 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나중에 [[4.19 혁명]]이 벌어진 것은 [[3.15 부정선거]]만큼 서민들이 살기 힘들었던 경제난이 원인이기도 했다.] [[6.25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지나간 한국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서울 시내에는 온통 팔과 다리를 잃고 군대에서 쫓겨나 실업자나 부랑자가 되어 버린 상이군인[* 백의용사라고도 한다. 저 당시뿐만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이들의 상황은 [[https://www.youtube.com/watch?v=RumGWxFiG4I|여전히 좋지 않고 윗선에 의해 일어나는 폐단이 많다.]]]들로 넘쳐났다. 상이군인들은 떼를 지어 정부 청사의 건물이나 은행으로 몰려가서 [[보너스 군대|"우리들은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가 이렇게 다쳤다! 몸이 불편해 생활이 힘드니 우리들을 위해 생활비를 달라!!"]] 라고 윽박지르거나 더러는 사람이 많이 모일 만한 버스나 정거장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자기들이 가지고 온 염색한 닭털과 같은 쓸모없는 물건들을 강매하면사 생계를 꾸려나갔다. [[육남매]]와 같은 전후를 다룬 드라마에 허름한 [[군복]]--에 더해 어디서 [[선글라스]]까지 구해 와 써서 [[박정희]] 패션-- 차림으로 한 손에 [[후크 선장|후크]] [[선장]]마냥 [[의수]] 대용품인 쇠갈고리를 끼운 상이군인이 장터에서 상인들에게 말없이 갈고리를 보여주고 상인들이 음식 두어 점이나 푼돈을 주면 받아서 사라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엔 그게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상이군인들은 이유없이 행패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고 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비참한 꼴이 된 것이니 당시 경찰은 물론 군인들조차 성난 상이군인들을 상대로 어떻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힘으로 이들을 제지하려고 하면 곧바로 다른 상이군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더 큰 행패를 부리는 통에 그럴 엄두조차도 나지 않았다. 이럴 때 정부가 나서서 상이군인들을 위한 연금이나 일자리 및 주거시설을 마련해 주면 문제가 해결되었을 테지만 그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 또한 전쟁을 겪고 난 이후라 매우 가난했었고 딱히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상이군인들을 앵벌이나 실업자 같은 비참한 상태로 내버려 둘 뿐 무대책과 방치로 일관했다. 또한 미국에서 경제 발전과 국민 복지에 쓰라고 준 원조금도 부패한 정부 관리들의 주머니로 빨려들어갔고, 정작 필요한 국민들에게 전해 주지 않아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자 상이군인들 사이에서는 나라를 위해 싸운 자신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분노가 싹트기 시작했다. 1960년에 [[4.19 혁명]]이 일어나자 상이군인들이 시위대에 대거 가담했고 심지어 이승만의 명령을 받고 시위진압을 하러 나온 군인들까지 시위대와 합세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이다. 결국 상이군인들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분노와 함께 같은 군인 출신으로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고 상이군인들의 생계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 아래 [[박정희]]의 핵심 지지기반으로 자리잡았다.[* 출처: 실업이 바꾼 세계사/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2017년 11월 25일 발행/ 245~250쪽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