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옥쇄 (문단 편집) == 일본의 옥쇄(ぎょくさい) == [youtube(3l2NeCiP8b8)] [[일본 제국|일제]]가 [[태평양 전쟁]] 때 [[카미카제]]나 [[반자이 돌격]]처럼 [[자살]]돌격하는 행위를 '[[천황]]을 위한 옥쇄' 운운하며 미화한 적이 있어서 요즘에는 그다지 뉘앙스가 영 좋은 단어가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폭]]'''. [[태평양 전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일본군을 통해 '옥쇄'란 단어를 알게 되었을 텐데, 당시 일본군은 자폭 외에도 후퇴 없이 끝까지 위치를 사수하다 죽는 걸 옥쇄라고 표현하는 등 아무튼 싸우다 '명예롭게 전사'하면 일단 옥쇄라고 여기기도 했다. 끝까지 위치를 사수하다 전사한 경우도 자발적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강제로 쇠사슬로 묶어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위치를 사수하다 죽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제로 미화된 측면도 있다. 일본군도 그럴 지인데 강제로 징집된 타국 국민들이 일본을 위해 옥쇄하는 경우는 대부분 전부 이런 식이였다.[* 강제로 징집되어 억지로 일본군이 되어 쇠사슬을 차고 옥쇄하는 경우였지만 [[연합국]] 군인들이 보기에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동양인으로 비슷해 보였기 때문에 일본인 출신 일본군으로 오해당하고 독하다며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도 많았다.] 일본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태평양에 끌려온 강제 노동자들과 현지 민간인 및 주민들에게까지 강요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이판 전투의 만세 절벽(Banzai cliff), 오키나와의 주민 집단 자살 등 수많은 사례들이 있었다. 일본제국은 미군이 자신들이 했던 것과 동일하게 [[귀축영미|미군의 포로가 되면 민간인 부녀자들은 수없이 강간과 능욕을 당하고, 남자들은 결국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며 강요와 세뇌를 하였으며, 이는 주민들이나 일본군이 항복을 못 했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말하자면 일본의 옥쇄는 상명하복하고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는 일본 제국의 병폐[* 이 성향은 전후 일본인이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고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 그 잔재가 은근히 남아 있다고 분석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 북한에도 남았는데, 그야말로 최악의 일제강점기 잔재 중 하나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과 북한은 [[징병제]] 국가인 터라서 오히려 더더욱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 [[전체주의]]의 결과물. 일부 일본 [[극우]]계 인사들은 상술된 대로 이 옥쇄를 임전무퇴의 [[사무라이]] 정신, 일본인들이 깊이 새겨야 할 정신으로 추천(?)하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군국주의]] 미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일본의 일반 대중들에게도 [[일본의 역사왜곡|일본의 저질 역사 교육 문제]]로 인한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무관심, 또는 우경화 풍조의 영향으로 옥쇄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문제. 심지어는 (별다른 의도는 없다지만) 옥쇄에 대한 왜곡된 뜻을 공공연하게 차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켜 온갖 잔혹한 짓이 벌어진 면은 그닥 신경 쓰려 하지 않았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몇몇 애니메이션에서는 작가가 극우든 아니든 상관없이, [[특공]]과 자폭 공격 등의 주인공의 옥쇄 정신이 알게 모르게 녹아 있다.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1억 옥쇄]]'''가 있다. 이쪽도 실제 일본군이 선전에 이용했던 용어이다. 세계 각국 군대의 극단주의자들이 옥쇄를 미치게도 좋아하고 있다. 보통 [[높으신 분들]] 기득권 [[귀족]] 혹은 극단주의자들이 이걸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남이 목숨을 바쳐서''' '''자기 것'''을 지켜 주기 때문이다. 그 후 이걸 애국심으로 포장만 하면 자기들이 욕먹을 일도 없이 관심도 돌릴 수 있다. 일본 제국도 마찬가지로 옥쇄니 자폭이니 강조하는 쪽은 [[대본영]]인데 정작 여기에 죽어나간 사람들은 죄다 일반 병사들, 조선인이나 본토의 민간인이었다. 즉, '''자기들은 죽지 않고 타인들이 대신 죽어 주니 이런 정신나간 소리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도조 히데키 등 대본영은 국민들에게 옥쇄를 강요하면서 자기들은 옥쇄는커녕 마츠시로 방공호를 만들어 살길을 궁리했으며, 패전 후에는 잡혀서 추한 꼴로 재판을 받고 사형당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0/Class-A_War_Criminals_in_bus.JPG|옥쇄는 커녕 얌전히 버스로 호송되는 A급 전범들 사진]] 그러나 어디까지나 '''생존자가 있어야 승리가 있는 법이다'''. 저런 식으로 아군에게 무의미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떠한 긍정적 결과도 불러올 수 없다.[* [[조지 패튼]]이 정반대로 "나라를 위해 죽지 마라, 적이 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라는 어록을 남긴 것이 괜히 그런 게 아니다. 결국에는 끝까지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게 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이 맞선 [[중화민국|적국 중국]]의 지도자인 [[장제스]]도 [[중일전쟁]] 당시 [[우한]] 함락 이후 옥쇄의 각오를 다졌다. 이쪽은 의미 없는 죽음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조차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말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는 표현 방법이다. 화기 등장 전 냉병기가 주무기이던 시절에는 사기진작의 방법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필사즉생행생즉사]]라는 오자병법의 말도 있는 것처럼 냉병기 시절에는 사기로 전세를 뒤엎는 것도 공공연히 있던 일이고, 목숨을 건 특공은 병법의 하나로 취급되기도 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주된 전략이 아니라, [[최후의 발악|도저히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시도하는 것이다.]] [[사면초가]]의 경우처럼 포위당해 몰리면 옥쇄는커녕 병사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탈주 행렬이 이어지는 경우가 다수다. 이런 병법을 [[일본제국]]은 냉병기도 아닌 화기 시대에, 시도할 때 안 할 때를 못 가리고 시도했으니 옥쇄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괜히 영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서구권에선 이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2차 세계 대전 말기를 그린 대중매체에선 일본군을 묘사할 때 옥쇄 관련 내용이 대부분 등장한다. 소설 1984에도 영향을 줘서 아시아 지역의 국가는 '죽음 숭배'를 따른다는 서술이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