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옥저 (문단 편집) == 개요 == '''옥저'''(沃沮)는 늦어도 [[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기원전 3세기]]가 기원으로 알려져 있으나 고고학적인 발굴 결과에 의하면 옥저인들의 유적지와 유물들은 이미 기원전 11세기부터 그 흔적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옥저의 역사는 [[기원전 3세기]]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후 [[285년]]까지 [[강원특별자치도]], [[함경도]]에서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남쪽, [[연해주]]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퍼져 있었던 [[국가]] 집단이다. 남옥저, 동옥저, 북옥저가 존재했다. 남옥저의 경우, 《삼국지》와 《후한서》의 〈동이전〉에서 북옥저의 위치에 대해서 언급할 때 한 번 언급되는 것이 전부이다. 따라서 남옥저를 동옥저와 동일한 집단으로 보기도 하고, 별개의 집단으로 보기도 한다. [[기원전 3세기]]경 북옥저와 남옥저가 성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명인 '매구루'의 '구루(溝婁)'는 대표적인 [[고대 한국어]] 어휘로,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보이는 홀(忽)과 동원이며 현대 한국어의 '골'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단어이다. 그 뜻은 본래 '사람이 사는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고구려어와 백제어에서 '성읍'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고, 시간이 지나 '성' 등의 한자어에 밀려 '골짜기'에서 볼 수 있듯이 길쭉하게 들어간 지형을 뜻하는 말로 축소되었다. 위서 《[[환단고기]]》는 서옥저도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역사서와 교차 검증되는 바가 없다. 동옥저가 개마대산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만약 ‘서옥저’라는 집단이 있었다면 [[현도군]] 서개마현이 위치한 곳에 있었을 가능성 정도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