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옥저 (문단 편집) === 멸망 === > 나라가 작아 대국의 사이에서 시달리다가 끝내 구려에 신속하였다. >---- > 《삼국지》 〈위지〉 동이전, 동옥저 > 가을 7월에 동옥저를 정벌하고 그 땅을 취하여 성읍으로 삼았다. >---- > 《삼국사기》 권15, [[태조대왕]] 4년(AD 56년) 우선 동옥저는 서기 56년에 고구려 제6대 [[태조대왕]]에 의하여 정복되었다.[* 동남북 3옥저 중 유일하게 멸망 연대의 논란이 없다.] 논란이 많은 남옥저는 기원전 2세기에 위만조선에 복속되었다가 이후 한사군 중 하나인 현도군에 편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도군은 고구려의 공격에 근거지를 빼앗기고 서쪽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아마 남옥저 일대 역시 이 과정에서 고구려가 확보했을 것으로 추론 가능하다. 일부 자료에서는 남옥저가 서기 260년에 백제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 겨울 11월에 왕이 부위염에게 명하여 북옥저를 정벌하게 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을 성읍으로 삼았다. >---- > 《삼국사기》 권13 [[동명성왕]] 10년 마지막으로 북옥저는 기원전 28년 고구려 동명성왕에 의해 멸망했다고 되어 있으나 이후에도 몇몇 기록이 있다. 서기 244년 [[위(삼국시대)|조위]]의 장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할 당시 제11대 [[동천왕]]이 패배한 이후 북옥저로 도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북옥저도 관구검의 침입을 받았고[* 이때 조위군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사로잡힌 옥저인들의 수가 3,000명에 달했으며, 옥저의 모든 마을들이 조위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285년 고구려 제13대 [[서천왕]]에게 귀속했다. 이후 흩어진 옥저인들이 백두산으로 도망가 주변의 말갈인들과 뒤섞여 새롭게 탄생한 종족을 [[백산말갈]]로 보는 학설이 존재한다. [[흉노]]의 침공을 받고 선비산으로 도망가 [[선비족]]이 된 [[동호]]족의 예와 비슷한 경우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