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릉 (문단 편집) === [[상나라|상]][[주나라|주]]시기 === 상나라 시기 왕릉으로는 [[상나라]]의 왕릉인 [[안양시(중국)|안양]](확인 요망) 은허유적의 근처에 후가장 고분군이 유명하다. 지하식의 무덤으로써 많은 시대를 대표하는 청동기들이 매납되있던 것이 확인되었고, 특히 [[순장]]의 일환으로 무수한 [[두개골]]들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평면형태는 초대형묘는 亞자형, 중대형묘는 中자형, 중소형묘는 甲자형이다. 당연히 亞자형 묘곽을 쓴 초대형묘는 왕릉과 왕후릉, 中자형묘는 다음가는 왕족이나 유력귀족, 甲자형묘는 군소귀족묘로 추정한다.[*물론 甲자형 무덤의 묘광깊이나 규모, 부장품의 질과 양은 상당히 많다. 군소귀족이라 해도 당대의 엄청난 실권자였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물론 묘의 형태, 규모가 묘주의 신분과 대응되는 체제는 주나라는 물론, 춘추전국시대, 진한시대까지 이어진다. 주나라도 초기 유적인 섬서성 바오지시 인근에서 확인되는 묘곽은 기본적으로 형태가 中자형이다. 이는 상나라보다 주나라의 세력이 명목적으로 약했으며, 주나라는 명목적으로 상나라에 예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나라를 정벌한 뒤 지금의 시안과 낙양 인근에서 발견되는 주나라 왕묘들은 亞자형 묘곽에 대규모 순장은 물론, 부장갱과 마갱과 병장기갱을 따로 갖추고 있다. 한편, 이 시기 감숙성 천수현에서 발견되는 초기 진나라 왕릉들을 보면 묘곽 규모가 작고, 평면형태는 中자형이며 별도의 배장갱이나 마갱, 병마갱이 보이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