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비 (문단 편집) === 고대 === >왕성(姓)은 부여씨(夫餘氏)로 ‘어라하'(於羅瑕)라 부르며, 백성들은 ‘건길지'(鞬吉支)라고 부르니 이는 중국어로 모두 '왕'이라는 뜻이다. 왕비는 ‘어륙'(於陸)이라 호칭하니, 중국어로 '왕비'라는 뜻이다. >---- >《주서》(周書) 〈이역열전〉(異域列傳) 백제(白濟) >우리 백제왕후(百濟王后)는 좌평(佐平) 사택적덕(沙乇積德)의 딸로서 오랜 세월[광겁曠劫] 동안 선인(善因)을 심으시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승보(勝報)]를 받으셨다. >---- >번역문 출처: 김상현, "금제사리봉영기",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4), 59. [[고구려]]나 [[백제]], [[가야]], [[발해]] 왕비들의 시호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중국의 기록에 백제에서는 왕비를 '어륙'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고, 일본서기에서는 고구려와 백제의 신분 높은 부인을 '오리쿠쿠'라고 칭한 것을 볼때 ㅇㄹㅋ 자음을 쓰는 단어가 왕비의 칭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백제의 금석문인 무령왕릉 묘지석, 미륵사지 석탑 봉영기 등에서는 왕후 칭호를 사용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 문화가 들어온 후 [[신라]]의 왕비들은 주로 '''[[부인]]'''이라는 형식의 시호로 [[삼국사기]] 등에서 전해진다. 후술할 [[고려]]에서도 부인 칭호를 쓰기도 했지만 신라의 경우 정실부인도 부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단 여러 부분에서 나타나는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 신라 등의 나라에서도 당대에는 왕태후, 때로는 황후 등의 중국식 미칭 역시 사용했던 것은 확인할 수 있다. 가령 [[문명왕후]]는 문명황후로 기록되기도 했다. [[무열왕]] 이후로 생전에는 ~부인이라고 부르다가 죽으면 왕후로 추존하는 식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문명왕후 이후의 모든 왕비들에게 왕후가 쓰인 건 아니지만, 이는 기록 누락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대체로 1명의 왕의 정실부인만 기록되지만, 왕의 2번째 정실부인이 기록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차비]] 문서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