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왜나라 (문단 편집) == 기타 == 어느 나라나 사정이 비슷한지 일본 내에도 [[국까]]들이 있기 마련이다. 즉, 일본인 네티즌이 일본 자국을 까는 것. 그런데 특이하게도 [[일본]]의 [[국까]]들은 [[사대주의|사대주의자]]거나 [[중세 잽 랜드]]같이 자조하는 의미에서 국까를 자처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자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마구 들춰내는 식으로 [[자국 혐오]]에 이른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일본이 과거 [[추축국]]이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일본의 전쟁범죄]]와 같은 자국사의 추악한 진실을 깨닫거나 [[일본의 우경화|자국의 우경화]]에 환멸을 느끼는 [[진보주의|진보]] 성향 [[일본인]]들이, 이런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고 [[일본의 피해자 행세|오히려 쉬쉬하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한 분노로 이렇게 된 경우이다[* 같은 예로 [[독일]]은 [[나치스]] 시절의 [[홀로코스트|과오]]때문에, 자국 내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민족주의]] 성향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그래서 역시나 [[안티파]] 진영을 중심으로 [[자국 혐오]] 여론도 크게 퍼져있다.]. 그래서 이런 진보 성향 국까들 중에는 [[친대만]]이나 [[친한]], [[친미]]가 많으며, 심한 경우는 아예 [[한빠]]나 [[미빠]]로 진화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고대에 일본이 대외적으로 왜국(倭國)으로 불렸다는 점을 국까 본인들의 단골 소재로 써먹기도 한다. 여기에다 다른 나라들 평균 신장까지 같이 첨부해서 일본이랑 비교하면서 까는 변형도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가끔씩 자국을 굳이 조선이라 부르면서 어그로를 끄는 것과 비슷하다. >"귀국의 문집을 보다보면 '''일본에 대하여 반드시 왜적이라거나 야만이라고 하는데 참을 수 없다.''' 도쿠가와(이에노부) 장군도 가끔 조선의 문헌을 보고 군신들에게 조선은 이 정도로 우리를 미워하는가 하고 항상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공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 어떤가!" > >라고 호슈는 심히 불만스런 표정으로 노기를 띠면서 말했다. > >"그 뜻은 쉽게 알 수 있으나 바라건대 귀국이야말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당신이 본 우리나라의 문헌이란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간행된 글일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의 철천지원수이고 종묘사직의 훼손, 영혼의 원한, 실로 만세까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민은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위로는 지존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욕하고 적으로 말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문장에 반영되어도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임금은 백성을 사랑하여 부산에 왜관을 개설하여 교역하고 더구나 일본의 산하에는 히데요시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로 사절을 파견하여 화목을 도모하고 국서를 교환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지나간 원한을 다시 불러일으키는가?" > >그리고 그의 반응을 보는 동안에 오사카에 도착하였다.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을 목격하고 머리가 쭈뼛해짐을 느꼈다. > >호슈 왈, > >"그것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지금도 일행의 종자들조차 일본 사람을 부를 때 [[왜인]]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지금부터는 일본사람으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 >"그럼 귀국의 사람은 우리를 부를 때 당인(唐人)으로 말하지 않는가!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 >신유한의 《해유록》 중에서 조선시대에 이 왜(倭)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왜놈이란 말은 엄연히 멸칭으로 사용되어서 논란이 많았듯이 조선통신사들이 왕래하던 18세기에도 조선 사람이 일본인을 '[[왜인]]'으로 부르는 것에 일본인들 스스로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당대 일본 최고의 유학자로 평가받던 [[아메노모리 호슈]]가 불만을 제기하자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이었던 신유한은 왜 일본인은 조선 사람을 보고 '당나라 사람'[* 훈독으로는 두 나라 모두 '가라'라고 읽었다. 사실 이 말은 [[가야]]에서 온 말인데, 고대 일본이 중국 문물을 전래받은 중간 통로가 바로 가야였기 때문이다.]이라 부르느냐?! 라고 맞수를 놓았다(이에 호슈는 "조선이 중국에 못지 않게 문화가 뛰어나서 그러하다"라고 대답하였다). 자기들 편의에 따른 것이라 정당한 반박은 아니지만 18세기에도 이러한 호칭의 사용을 통해 조선과 일본 사이에 서로의 인식에 대해 많은 간극이 있었던 듯하다. [[https://blog.daum.net/won0672/1739625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