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화 (문단 편집) == [[삼국지(정사)|정사]] == 양양기구기에 따르면 집안은 면수 남쪽에서 대대로 고관을 지낸 가문이었고 대충 [[한중 공방전]] 직후 즈음 촉에 임관했다. 이후 [[형주]]에서 전장군 [[관우]] 휘하로 주부(主簿)에 임명되었는데 형주가 함락될 때 오에 포로로 잡혔다. 하지만 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을 가장하여 감시의 시선을 피했으며 노모를 모시고 밤낮으로 달려 오를 탈출해 때마침 오를 치기 위해 자귀로 나온 유비군에 합류했다. [[유비]]는 매우 기뻐하며 요화를 의도(宜都) 태수로 삼았다.[* 육손전에서는 [[보광]], [[조융(촉한)|조융]], [[부융]] 등과 함께 각각 별독(別督)으로 임명되었다고 나온다. 요기서는 초명인 요순(廖淳)으로 기재한다.] 이릉대전에서 촉 2세대 무장들이 떼죽음 당하는 와중에도 무사히 살아남았다. 유비 사후에는 [[제갈량]]의 참군(승상 참군)이 되었고 후에 독광무(督廣武)에 임명되었다. 점차 관직이 올라 우거기장군 가절, 영 병주자사에 이르고 중향후(中鄕侯)에 봉해졌다. 과단성있고 강직하다고 칭해져 관위(官位)가 [[장익(삼국지)|장익]](張翼)과 나란히 하고 [[종예]]보다 앞섰다. 제갈량 사후 음평태수 등을 역임했다. 238년 9월, 음평에서 옹주자사 [[곽회]]가 보낸 광위태수 왕윤(王贇), 남안태수 유혁(遊奕)의 장병을 격파하고 둘을 죽였다. 이때 곽회는 '왕윤, 유혁 등이 분병하여 산의 동서를 둘러쌌고, 포위하여 적의 외면을 함락시켰으니, 격파하는 건 아침 아니면 저녁의 일입니다.'라고 자신했지만 조예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는데 결국 조예의 예상대로 되었다. 연희 12년(249)에 [[강유]]에게 부절을 주어 또 서평으로 출정했는데 이 일 있기 바로 전에 곽회 및 [[하후패]]와 조수에서 싸우고 이민족 수장 치무대의 항복을 받았다. 강유는 위에 패배해 달아난 강인들을 거둬들이고 요화에게 석정산에 성을 쌓아 적과 대치하게 했는데 곽회는 숫적 우세[* [[비의]] 시대엔 강유에게 북벌병력을 1만 밖에 주질 않았다.]를 이용해 하후패를 보내 강유를 추격하게 하고 자신은 요화를 공격하니 강유는 별수 없이 달려와 요화를 구원하고 퇴각한다. 이때도 음평태수였던 것으로 보아 꽤 오래 봉직하고 있던듯하다. 249년에 등애는 곽회와 함께 촉의 편장군 강유를 막아냈다. 강유가 퇴각하자, 곽회는 그 기회를 틈타 다시 서쪽으로 강인을 공격하려는데 등애가 말했다. "적군은 아직 멀리까지 가지 못했으므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응당 병사들을 나누어 의외의 일에 대비해야 합니다. 등애의 예상대로 3일 만에 돌아온 강유는 요화에게 백수 남쪽에 진을 세우고 등애를 견제하게 하고 본인은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강유군의 진로를 예측한 등애가 미리 요지를 선점하고 지키는 바람에 퇴각해야 했다. 개인적으론 강유의 북벌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가졌다. 한진춘추에 이르길 경요 5년(262)에 강유가 군을 이끌고 적도(狄道)로 출병하자 요화가 말했다, "전란이 끊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불태운다고 하더니 백약(伯約-강유의 자)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지모가 적보다 뛰어나지 않고 역량도 적으면서 용병이 끊이지 않으니 어찌 스스로를 보존하리? 시경에서 말하는 ‘不自我先, 不自我後’라는 것이 바로 지금의 일을 가리키는 것이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유의 북벌에 계속 보조를 맞추었다. 263년엔 강유가 요화에게 음평교두를 맡겨야 한다고 유선에게 표를 올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검각에서 강유, 장익, [[동궐(삼국지)|동궐]]과 함께 [[종회]]의 위군을 방어하였다. 264년 봄, 촉한 멸망 후 [[종예]]와 함께 낙양으로 옮겨지던 중 길에서 병사했다. 최후에는 우거기장군, 영병주자사, 중향후에까지 이르렀다. 분명 촉한 군부의 중신이었지만 기록이 미미한 촉한 인물답게 열전을 남기지 못했고 종예전의 말미에 더부살이로 약간의 기록만이 남아있고 그외 곽회전, 강유전 등에 기록이 조금식 남아 있어 [[삼국지연의]]로 얻은 인지도에 비해 알려진 정사의 내용은 매우 부족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