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리법연구회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는 70년대 중반 사법연수원의 장로교 소모임이었다. 지도교수를 중심으로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던 밥터디 (밥 + 스터디)에 불과했지만, 지도교수가 법조계 마이너리티인 광주일고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호남계 법조인, 운동권 법조인들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또한 종교 모임에서 학술학회로 성격도 자연히 바뀌었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 때 보수단체에서는 반발 여론을 주동한게 우리법연구회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용산 사건 기록 공개 결정과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판결 이후 여당과 보수단체에서는 재판장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 무죄가 나온 것이라 주장하며 해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2010년에 논문집 제6집을 간행하면서 이정렬 부장판사 등 당시의 회원 명단을 공개하였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25/2010052502325.html|#]] [[김명수(법조인)|김명수]], [[최유정(변호사)|최유정]] 등 이미 탈퇴한 회원들이 포함되어 있던 오래 전 명단을 [[국가정보원]]에서 입수하여 보수단체에 유포한 사실이 최근 국가정보원의 자체 조사에서 밝혀졌다. 논문집 제6집(2010)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활동내역이 알려져 있지 않었으나, 그 후에도 매월 세미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7년에 논문집 제7집을 간행하여 항간의 '우리법연구회가 사실상 와해된 것 아니냐'라는 추측을 잠재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