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상숭배 (문단 편집) ===== [[보편교회]]([[가톨릭]], [[정교회]]) ===== >9문: 우상숭배란? >9답: 우상숭배는 하느님께만 속해 있는 흠숭[* 신에게만 바치는 경배, 즉 '신앙'을 말한다.]이라는 최고의 경배를 피조물, 이를테면 조각상, 형상 혹은 사람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 >11문: 이 구절은 모든 종류의 형상을 금지합니까? >11답: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숭배하는 것과 같이, '경배를 받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 신의 형상에만 해당됩니다.' 그런즉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직접 모세에게 명하시어 예컨대 언약궤를 위한 케루빔(천사상)과 사막의 구리뱀과 같은 형상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 > 교황 [[성 비오 10세]]가 저술한 가톨릭 교리문답서의 제 1계명 해설 중. 가톨릭에서는 우상의 정의를 어느 표상이나 사물로 표현되는 거짓 신(神)에게 그 신이 그런 곳에 내재한다고 믿고 하느님께 드릴 예배를 바치는 행위로 규정한다.[* 출처 : 가톨릭 대사전, 우상숭배.] 따라서 성상(가톨릭적 종교 목적의 축복받은 상, 성모상, 예수성심상, 천사상 등) 공경과 성상을 통한 신앙생활 등을 온전히 인정한다. [[보편교회]]에서 주로 쓰이던 [[성상(조형물)|성상]]이 '우상숭배인가 단순히 성스러운 상징인가?' 하는 문제는 중세 초기의 [[동로마 제국]] 내에서 큰 분열을 낳은 논란이었다. 성상파괴운동은 우상숭배 보다는 기독교 교리에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류가 된 기독교 교리는 [[예수]]에게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함께 있다는 것이고 그 이외의 주장은 배척하는데, 성상파괴운동 시기의 동로마 제국의 몇몇 신학자들은 성상에는 오직 사람의 모양만이 있기에 예수의 인성만이 나타나고 신성은 배제되므로,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네스토리우스파]]의 주장에 부합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성상파괴운동을 주장하였다. 물론 내부에서도 성상이나 [[이콘]]이 우상숭배인가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엄청난 논란이 있던 적이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도 번져서, 726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 3세의 성화상 파괴 칙령이 발표되었고 제국은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된다. 멀쩡히 성화상 공경을 유지하던 서방교회 역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843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 의해 다시 성화상 공경이 승인되기까지 120년간 성상옹호자와 성상파괴론자 사이의 극심한 대립으로 말미암아 박해와 혼란을 겪었다. [[정교회]]는 이 판결이 "이단자를 이긴 정통 신앙의 승리"라고 해석하고, 매년 사순시기 첫 번째 주일을 축일로 기념해 오고 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옛날 신앙의 선배들이 성상 파괴주의자들의 공격에 용감하게 대항하여 [[순교]]의 피를 흘리며 싸워 이겨서 이런 승리를 얻게 되었으며 정교회 신앙을 지켰다고 가르친다. 단, 정교회에서는 이 시기의 영향으로 성상보다는 [[이콘]] 문화가 훨씬 발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이콘 문화가 더 발달했다 뿐이지, 입체적인 조각 성상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성상파괴론자들과의 타협에 의한 결과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한편 신성과 인성을 분리했다며 매도당한 [[네스토리우스파]]는 초기에 다른 동방 교회 교파들처럼 성상을 사용한게 사실이다. 다만 15세기경부터 이슬람 세력에 포위당하는 처지에 놓이면서 생존을 위해 성상 사용을 포기하고, 단순한 십자가 형상만을 존숭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후 가톨릭과의 일치를 놓고 분열한 뒤로 신파([[아시리아 동방교회]])는 계속 성상을 꺼리고 있으나, 구파([[칼데아 가톨릭]])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성상 사용을 다시 재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