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담 (문단 편집) == 평가 == 열악한 상황에서도 공손찬이 보낸 청주자사 [[전해]]와 북해태수인 [[공융]] 등을 격파하고 청주 전역을 재패했으며, 분산된 전력 집결에 실패하는 등 불리해진 상황에서 벌인 조조와의 회전에서도 한 차례 승리하는 등 꽤 선전했던 것으로 보아 군사적 재능은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격적으로는 이래저래 [[소인배]]스러운 인간이다. 야심 많고 경력도 화려한 장남이 아버지에게 폐출되면서 까마득히 어린 동생을 섬겨야 한다는 울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보여주는 행동이 전부 근시안적인 데다 치졸한 수준이다. 근본적으로는 원담이 원상한테 개기는 게 가능할 만한 여건을 만들어놓고, 후계자 문제를 수습 못한 채로 병사해버린 원소의 책임이지만. [[유표]]는 원담을 일컬어, '천성이 급하며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 고 평가했다. 나이 역시 아무리 적게 잡아도 원상보다 최소한 열 살은 많을 터이고 유표는 원상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청주(=원담)가 천성이 급하고 그야말로 앞뒤 분간을 할 줄 모르지만 동생 쪽은 현명하니 큰 것으로 작은 것을 포용하고 우월함으로 열등함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당시 원담은 적어도 30세 전후였으며, 원상은 많아도 20세 이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원담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원담의 어리석은 결정이) 만세가 경계할 실례가 될 것이며 모든 동맹자들에게 수치를 준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당대에서도 보통 한심하게 생각한 게 아닌 듯하다. 구주춘추에선 원담을 비록 군사적 성공을 제법 거두긴 했으나 성품이 교만, 방자하며 음란하고 사치스러운 데다 민정에도 무능하고, 주위에는 소인배들이나 기용하는 용렬하기 짝이 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원담에 대한 소수 의견으로 삼국지의 주석으로 인용되고 있는 전론에 의하면, '''어질고 총명했다'''고 하고, 후한서에서도 이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데, 행보를 보면 용렬하고 어리석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원담도 일단은 [[나름]]대로의 군사적인 실적이 있었으니 유능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또한, 전론에 의하면 조조와의 연합 따위 때려치우고 모든 문제의 원흉인 곽도를 죽이고 화해하자는 심배의 편지를 받고[* 원상 측에서 화해하자는 신서를 보낸 것 자체는 후한서와 한진춘추에서도 구체적인 내용이 전해지기에 사실로 봐야할 것이다.] 눈물을 흘렸으나, 이미 전권을 곽도가 장악해버렸기에 곽도한테 겁박당하며 돌이킬 수 없었다는 말도 있다.[* 전론의 저자가 조비인지라 장자 계승의 정당함을 위해 원담을 미화했다는 시각이 있기도 하지만, 원담과 비슷한 처지였던 유기에 대한 변호는 따로 없는데다 후한서에서 해당 내용을 인용했음을 볼 때 적어도 이러한 평가가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종합하자면, 꽤 뛰어난 군재를 가졌지만 방종한 처신과 방만한 행정으로서 지도자로서는 함량 미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제치고 그가 뛰어난 인재였다면 조조가 아닌 원씨가 천하를 손에 쥐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장자가 훨씬 큰 권력을 쥐는 마당에, 하물며 1800년 전이었을까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