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담 (문단 편집) === 실정(失政)의 반복 === 원소가 원담을 폐출시키고도 청주자사로 기반을 마련하게 한 것은 자식들의 충성심을 이용한 권력강화의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청주자사로 있으면서 [[원술]]을 불러들이고, [[유비]]를 맞아들이고, [[정현(삼국지)|정현]]을 초청하는 등 당대에 굵직한 인재 영입에 열을 올렸으며 관도전에도 원소를 따라 직접 종군하는 등 뭔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결과적으론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 원술: 제호를 바치며 투항하겠다는 원술의 말에 원소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고 주부 경포를 시켜 은밀히 여론을 떠봤다가 반응이 좋지 않자 그대로 애꿏은 경포를 척살해 의혹을 해소했다. 한마디로 원술은 골칫덩어리라는 말인데 원담은 업에서 떨어져 있어 이런 분위기를 몰랐는지 원술에게 사람을 보내 청주로 오라고 했다. 원술이 도중에 죽었기 때문에 흐지부지 되었지만. * 유비: 유비는 [[동승(삼국지)|동승]] 사건의 관련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기에 원소 측에 조조를 칠 명분을 마련해 줄 중요한 인물이었고 원소 또한 유비를 엄청나게 중시했다. 게다가 과거에 유비가 원담을 천거했던 적이 있고, 공식 직함이 예주목이었기에 원소가 조조를 격파했을 때 유비가 예주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구축하고[* 실제로 [[관도대전]] 당시 조조의 후방 교란을 위해 예주로 파견되었고 [[채양]]을 격파해 죽이는 등 약간의 성과도 냈으나 조인에게 격파되었다.] 원담과 서로 협력해 청-예주 중간에 걸쳐 있는 서주를 아우른다면, 유비는 원담의 장래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원담은 이 당시 직접 청주군을 이끌고 원소 본대와 합류하는 등 매우 의욕적인 상황이었는데, 아무튼 유비를 맞이한 것은 원담의 몇 안되는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유비는 [[안량]], [[문추]][* [[안량]]이야 [[유비]]가 [[원소(삼국지)|원소]]에게 간 줄도 모르고 [[관우]]가 죽였지만 [[문추]]가 연진에서 패할 때 누구랑 같이 지휘했는지 생각해보자. 물론 원소 세력 내에서 신참인 유비의 실질적인 입지는 크지 않았다고 봐야겠지만 어찌 됐든 손에 꼽는 고위직 인사였던 만큼 패전 책임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의 전사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입지가 다소 미묘해졌고, 결과적으로 원소가 관도에서 패배하고 유비는 유표에게 가버려서 별 도움이 안 됐다. * 정현: 대유학자 정현의 경우 노환으로 인한 건강문제로 초빙을 거절했는데 원담이 원소의 총애를 얻기 위해 무리하게 강권해 데려가는 와중에 병이 들어 진중에서 죽었고 원소까지 욕먹이게 되었다. 원술의 경우와 같이 안 해도 될 짓을 해서 스스로 손해를 본 경우. * [[관도대전]]에서 직접 청주의 군사들을 이끌고 원소에게 합류하는 등 이쁨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관도전은 참패... 또한 원담은 관도전 이후로 원소의 신임을 잃고 입지가 축소되어 밀려나던 [[곽도]], [[신평(삼국지)|신평]]과 함께 파당을 조성하는데, 이걸 원소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이후로도 곽도와 신평은 항상 원담에게 아첨하며 (나쁜 의미로) [[길동무|죽음까지 함께하게 된다.]] 원소의 혈족으로 각 주를 장악하고 있던 고간, 원희는 물론, 원소를 제외한 원소세력 인사 전원을 통틀어서도 원담만큼 적극적으로 대외적인 행적이 보이는 인물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