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담 (문단 편집) === 후계자 쟁탈전 === 결과적으로 하는 짓마다 사고에 가까웠기 때문인지 원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소의 총애는 원담에게 향하지 않는다. 원소는 여전히 삼남(혹은 막내아들) [[원상]]을 총애해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본격적인 후계자 작업에 들어가기 전인 202년 5월에 병사한다.[* 생전에 원상을 적사(=대를 이을 아들)로 족보에 올렸으나 병사해버려서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 이 원소의 병사가 원담에게는 큰 기회가 되었는데, 당시 원상의 나이가 워낙 어렸기 때문에 기주 내에서는 원담과 야합하고 있던 곽도와 신평을 중심으로 나이나 경력면에서 앞서는(30세 전후) 원담이 옹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원담 또한 원소의 뒤를 잇기 위해 청주에서 군사를 이끌고 업으로 향했으나 도착하기 전에 원담과 사이가 나쁘던 [[심배]] 등이 선수를 쳐서 정권을 장악하고 원상을 옹립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다. 심배 등의 유서조작 여부는 미지수다. 원담은 이에 불만을 품고 군사를 업 근교에 주둔시키며 원소의 첫 작위인 거기장군을 자처하는 등 원상의 승계에 불복했지만, 마침 [[조조]]가 쳐들어오는 바람에 원상과 화해하고 조조를 물리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봉기(삼국지)|봉기]]는 끔살당했다. 이때 원담은 퇴각하는 조조를 추격해 습격하면 완전히 궤멸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원상은 이를 거절했고, 또한 원담에 대한 군사와 무기의 지원을 중단했다. 군사지원을 중단한 원상의 의도인 즉, 공연히 욕심부리지 말고 청주로 돌아가란 소리다. 원담으로 인해 크게 위험을 겪었던 원상으로서는 당연한 처사였지만, 후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원담으로서는 반강제로 내쫓기는 격이니 당연히 대노할 수밖에 없었다. 원담은 이에 워낙 대노한 데다 마침 곽도, 신평의 부추김[* 곽도와 신평은 이런 원담에게 원소가 그를 폐출시킨 것은 모두 심배의 이간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언했다. 물론 모함이었지만 심배는 평소부터 원담과 대단히 사이가 나빴고, 또한 당시 어린 원상을 옹립하여 기주의 권력을 대부분 독점하고 있었으므로 원담은 이를 그럴듯하게 여겼다. 아예 연의에서는 원소의 임종 직전에 원상의 생모인 유씨와 함께 원상을 후계자로 옹립해도 되겠냐고 질문하는 장면까지 나온다.]을 듣고 원상을 급습하지만 오히려 대패하여 [[남피]]로 도망간다. 이후로도 원상에 대한 적대를 멈추지 않아 다시 군사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백성들을 워낙 쥐어짜서 그렇잖아도 명분 없는 싸움에 더욱 명분을 잃었고 청주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원담세력 내부에서도 곽도, 신평을 죽여버리고 원상과 화해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가 된다. 원담은 이를 모두 무시하고 다시 원상을 공격했으나 끝내 여기서도 거하게 털려버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