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로(일본) (문단 편집) === 중기 === 그러나 원로들 내부에서도 문관인 이토계와 무관인 야마가타계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고,[* 문관과 무관이란 분류는 사실 정확하지 않고 두 사람 모두 조슈 번의 [[사무라이]] 출신이며 이토는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시스템]]을 중요시하는 반면 야마가타는 [[일본제국 육군]]의 창설자로서 비교적 강경 권위적인 느낌이 강해서 서로 성향이 다소 달랐다고 평가된다.] 또한 원로들 자신도 노쇠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1세대 원로라 할 수 있는 초기의 원로들은 갈수록 세력이 쇠퇴해 갔다. 이에 정치상의 경력을 쌓아가면서 세력을 신장시킨 2세대 정치인들이 부상하자 원로들은 가쓰라 다로나 사이온지 긴모치와 같은, 정당과 번벌 관료집단들 사이에서 잘 조정할 수 있는 인물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1901년]] 1차 가쓰라 내각의 성립 과정은 이토파에 대한 야마가타파의 우위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즉 야마가타 야리토모는 원로회의 내에서 수상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친구이자 머리 굵은 이노우에 가오루 대신 같은 군인이었던 [[가쓰라 다로]]를 밀었고, 성공한 것이다. 물론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문관계였던 이토가 반대한 인물이었기에 1차 내각은 '''영 허술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뭐 어떤가. 수상 먹었는데. 그리고 1차 가쓰라 내각은 사실상 '''원로회의에서 모든걸 결정하다시피 하는 판이라''' 어쩌면 그 허술해빠진 내각은 별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1차 가쓰라 내각은 말 그대로 '''내각 위에 원로회의'''가 현실화된 내각이었다. 1차 [[영일동맹]]? 원로회의에서 먼저 정하고, 이후 내각과 함께 심의해 결정한다. [[러시아 제국|러시아]]와의 협상? 원로들이 지지해서 수행한다. [[러일전쟁]] 준비? 사실상 원로들이 주도해서 준비한다. [[러일전쟁]] 개전? 원로들이 주체가 된 각료회의에서 결정했다. [[러일전쟁]] 지휘? 현지 [[최고사령관]]도, [[후방]] 군 지휘본부도 모두 원로가 맡는 판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러일전쟁 지도는 말 그대로 원로회의가 전담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추밀원 의장으로서 천황을 보필했고, 야마가타 야리토모는 만주군 총사령관직을 노렸다가 같은 원로인 오야마 이와오에게 밀린 다음에는 참모총장이 돼서 후방에서 군을 지휘했다. 현지에서 군을 총지휘한 것도 원로인 오야마 이와오였다. 이노우에 마쓰가타는 전문이던 재정 관리에 전념한다. 즉 자기가 전문인 분야에 달려가서 적극적으로 전쟁 수행에 전념했던 것이다. 그리고 포츠머스 회담에서 배상금 못받아도 되니까 협상을 타결지으라 한 것도 원로들의 결정이었다. 정부와 군부, 의회간 통합 조정 역할도 맡았다. 실제로 '''근대 일본이 수행한 전쟁 중 [[러일전쟁]]만큼 원활하게 수행된 전쟁은 없다.''' 물론 현장에서는 거한 삽질이 종종 나왔지만. 그러나 러일전쟁 직후 [[가쓰라 다로]]는 원로회의 없이 사이온지 긴모치를 차기 수상으로 추천한다. 물론 이것도 원로들의 동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자체 회의 없이 이를 결정한 일은 원로들의 세력이 후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때도 아직 원로들의 권력은 강한 편이라, 러일전쟁 직후 일본측이 점령한 지역에 '''관동총독부'''를 신설해 만주침략을 시도하자 [[이토 히로부미]]는 1906년 5월 22일 소집된 협의회에서 '''"[[군부]]는 [[만주]]에서 일본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만주는 결코 우리 일본의 영토가 아닌 순수한 [[청나라]]의 일부이다. [[영토]] 아닌 장소에서 우리나라의 [[주권]] 행사가 이루어질 도리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군정 기관인 관동총독부를 [[관동도독부]]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어쨌든 이후 가쓰라 다로와 사이온지 긴모치가 수상직을 돌려먹기하는 케이엔(桂園) 시대가 들어섰고, 타협 조정에 능숙한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저격당해 사망하면서]] 야마가타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전체 원로진을 주도하자 원로들의 세력은 갈수록 감소하였다. 특히 원로들이 가쓰라 다로를 두번이나 더 추천하자 '''아니 저 원로란 작자들은 왜 가쓰라만 추천함? 이거 순 파벌 정치 아님?!''' 하는 불만이 폭발, 제1차 호헌운동이 일어나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시작을 알린다. 거기다 당시 원로회의를 주도하던 야마가타는 자기 파벌세력을 가쓰라에게 홀라당 다 빼앗기는 일까지 당해 원로의 세력은 급격히 약해진다. 그런 가쓰라 다로도 3차 내각 붕괴 후 원로의 일원으로 임명되지만 몇개월만에 사망해 버리기도 했고... 1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약해져 가는 원로들에겐 세력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러일전쟁과는 달리 내각과 원로들은 몇번이나 충돌했고, 결국 야마가타는 분노를 폭발시켜 오쿠마 시게노부 내각을 박살내고 [[데라우치 마사타케]] 내각을 세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