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소(삼국지) (문단 편집) === 용인술 === 원소 자신의 직속 측근이 법령을 어기자 이를 처형한 뒤 보고한 [[견초]]를 문책하지 않고 기특하게 여기며 높게 평가했다는 일화가 견초전에 남아있기도 한데, 이런 일화로 공명정대하고 대인배스러운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일화성 기록을 배제하고[* 사실 이런 류의 세세한 일화는 견초의 일화를 제외하면 남아있지도 않다. 훗날 위 왕조에 종사하며 전기가 남을 정도의 활약을 펼친 견초의 인생 전반부에서 중요 사건이라 기록이 남았을 뿐, 진수가 딱히 원소에 관심이 있어서 기록한 게 아니기 때문.] 전반적인 행적에서 용인술과 인사 관리 측면을 살펴봤을 때 기주 입성 이후부터의 원소는 혈족 중시 + 자신의 정치적 명성과 권력에 모여든 구름같은 무리들 중 적당한 인물을 필요한 곳에 뽑아 쓰다가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곧바로 숙청하고 다른 적당한 인물을 뽑는 식의 인사를 반복한다는 인상이 유난히 두드러지는데, 권력자의 혈족 중시 경향이야 조씨, 하후씨의 요직 독점까지 갈 것도 없이 만국공통이지만, 숙청의 경우 그렇게 괴멸적으로 기록이 적은 가운데 사서에 이름이 남은 네임드만 주한, 장도, 유훈, 동소, 여포, 장홍, 국의, 경포, 전풍, 저수 등 측근으로 활약하다 숙청당하는 기록이 남은 인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심지어 장합, 고람처럼 잘못이 없는데도 억울하게 숙청당할 것이 두려워 전장에서 배신하는 상황이 발생할 정도로 당대 군벌들 중 도무지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즉, 혈족 중시 경향, 무수한 친정을 통한 군사적 권위 확보, 열사 이미지를 통한 정치적 권위 확보, 폭넓은 인사 임용을 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내부 인사에 대한 가차없는 숙청과 견제, 지속적인 측근 교체와 충성 경쟁 유도 등, 궁극적인 목적이 본인 1인으로의 권력 집중 / 강화라는 측면이 있었다. 충성 경쟁을 조장하기 쉬운 이런 인사는 조직을 경직되고 비효율적으로 만들지만, 그만큼 우두머리의 권력은 천하무적이 된다는 이점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원소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지만 부하들끼리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견제하여 서로들 파벌을 만들어 적이 되었고 일시적 뿐이지만 결국 곪고 곪았던 문제가 하필이면 가장 중요했던 관도에서 한번에 터지게된다.], 원소 자신도 이를 의도한 것으로 보이나 관도대전 패배를 결정지은 허유, 장합의 배신이나 관도 패배 이후 세력 내의 전국적인 반란에서 보이듯이, 외부적 요소 때문에 자신의 [[카리스마]]가 무너진다면 내분으로 [[헬게이트]]를 열 가능성이 높았고, 이것은 원소의 사망 이후에 실현된다. 원소 자신은 군사, 정치적인 노회함으로 번번히 위기를 극복했고, 관도 패전 이후에도 무수한 반란을 가혹히 진압하면서 오히려 신격화에 이를 정도로 세력기반 내에서의 권력을 확고히 했으나, 원소가 죽고난 뒤 후계자가 이런 카리스마를 대체하기는 어려웠고, 여기에 원소가 병사했다는 것, 원상의 나이가 어렸다는 것, 폐출된 원담이 후계에 도전했다는 것, 원상의 후견인으로 권력을 잡은 인물이 하필이면 전략적 식견도 포용력도 전무한 [[심배]]였다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소 식의 인사에선 심배 같은 부류의 [[예스맨]]이 권력 핵심에 남기 쉽다.] 것, 당연하게도 이를 틈탄 조조가 쳐들어오는 등의 몇 가지 요소가 맞물리면서 최악으로 흘러가 사실상 패망의 원인이 되었다. 종합해 보면 [[권모술수]]에 능하고 위선적이며 부하들을 소모품 취급하는 전형적인 [[독재자]]형 용인술인데, 동탁, 공손찬, 여포, 원술, 유표 등이 특정 계파를 지나치게 무시해 반발을 사거나 혹은 지나치게 중시하다가 오히려 휘둘리거나 통수를 맞는 것과 비교하면 조직관리의 측면에선 확실히 낫다고 볼 수 있고[* '''현재'''만 바라본다면 낫다고 볼 수 있지만 천하를 노리는 군웅으로서 자기 대에서 이것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실패한 조직 관리다. 자신의 후계자가 자신과 똑같이 해줄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리고 곪은 부위는 언젠간 터지기 마련이다.], 기존의 질서나 가치관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권력에만 몰두했던 만큼 인재를 보는 기준은 도적떼의 무리조차 거리낌없이 임용한다고 비판받았듯 권력에 도움이 되냐 아니냐의 합리적(?)인 관점이지, 신분과 명성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용하고 버리긴 했을지언정.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인재를 버릴 시점이 아닌데 자신의 체면 치례나 책임 회피를 위해 능력 있는 부하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숙청해 버린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숙청]]과는 별개로 옳은 의견은 수용한다면 크게 문제가 없었을 텐데 자기애가 강한 원소는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실 이것이 진짜 가장 중요한 점일 수 있는데, 단적으로 말해 숙청은 하더라도 전풍과 저수의 조언 중 핵심적인 몇 가지만 취사 선택해서 들었다면 애초에 관도대전에서 질 일도 없었을 뿐더러, 설혹 졌다 하더라도 그뒤로 그렇게 호족들 반란에 어려움을 겪지도, 사후 후계 문제로 제풀에 무너지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 즈음의 원소는 아직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저수, 전풍이 제시하는 옳은 선택을 모조리 거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원소가 그 즈음 [[곽도]], [[신평(삼국지)|신평]] 등의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오만해졌기 때문인지, 저수, 전풍을 [[숙청]]하기 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병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관도대전 즈음의 원소는 항상 좋은 선택지를 앞에 두고도 오판에 오판을 거듭하는 실책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원소군을 멸망으로 이끈것 만은 틀림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