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월북 (문단 편집) == 월북자들의 결말 == 북한이 안 받아주거나 남한으로 돌려보내는 게 오히려 고마운 것이다. 받아줄 경우 이용가치가 크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은 [[정치범수용소/북한|정치범수용소]]로 가는 것으로 일생을 비참하게 마치게 된다. 이용가치에 따라 몇 달 있다가 갈지, 몇 년 있다가 갈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끔 넘어가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귀빈 대접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건 '''북한 경제가 여유가 있던 1990년대 이전의 일이다.''' 북한의 경제가 급속히 빈곤화된 1990년대 이후에는 상술하듯이 평범하게 경제적인 동기나 소속된 공동체에 대한 비관으로 인한 월북했거나 범죄를 일으킨 다음에 북한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그냥 되돌려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고위급 인사 또는 탈북을 했다가 다시 북한으로 넘어간 재입북자 정도만 체제 선전용으로 쓸모 있으니 대접받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도 얼마 가지 않아 대부분 말 그대로 증발하게 되는데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월북자들은 따로 구역을 정해서 아파트처럼 살림집으로 관리되어 있는 곳에서 생활하며 가끔씩 당국에서 월북한 고령자의 생일잔치를 할 때 장병들을 모아서 생일 축하파티를 열어주곤 하는데 월북한 군인을 동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1961년에 소대원들을 데리고 월북한 당시 소위였던 이태복은 2018년에 80세를 맞이하여 생일상을 차려주었는데 그것이 대남선전전단을 통해 알려지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의 최신 사정에 능통하다는 이점 때문에 대남공작 관련 훈련 기관의 교관 내지는 대남방송 관련 업무에 배치하는 경우가 월북한 사람들 중 일부다.[* 오히려 월북자보다는 납북자를 많이 쓴다고 한다. 이는 월북자 중에서 교관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 1981년 6월 월북한 1사단 수색대 대위 석정현 대위로 탈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대외 선전 값어치가 높은 사람은 방송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또한 소수다. [[조선일보]] NK 리포트에 따르면 고위직의 월북자를 제외한 그냥 월북자들 중 적어도 2~3명 정도는 선전 잡지에 고정 출연한다고 한다. 또 대남선전도 사실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월북자들 중 정치인은 상당수가 뒤끝이 좋지 못했다. [[박헌영]]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김일성]]은 월북한 [[남조선로동당]] 출신들을 정적으로 취급했다. [[한국근현대사]] 공부를 열심히 해 보면 알겠지만 북한 정치판은 창립 이후 [[숙청]]을 거듭하여 김일성파(갑산파 중 강경파와 김일성의 만주 빨치산파 두 계파 모두)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비단 한국사뿐만 아니라 20세기 세계사 전반을 공부하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부터 [[마오쩌둥]]까지 소위 [[현실사회주의]]권의 지도자들은 '''막상 필요하면 [[해리 S. 트루먼|트루먼]], [[리처드 닉슨|닉슨]] 같은 양반들이랑 악수하고 '우리는 공존을 원한다'''' 따위 서방에 대한 립서비스는 잘만 하면서도 자기들 손이 닿는 '''비 [[코민테른]], [[레프 트로츠키|트로츠키]] 주의자, 비 마오쩌둥 계열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같은 '''자기 말 안 들을 것 같은 다른 좌파들'''을 [[숙청]]하는 데 훨씬 더 열을 올렸다. 북한 정권에서 남로당파와 갑산파 숙청 같은 좌익 내 팀킬 작업 또한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무엇을 했으며 얼마나 열성적인 좌익이었는지에 상관 없이 [[김원봉]] 같이 노선이 조금이라도 달랐거나 조금이라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사상적 월북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경우가 대다수다. 다만 이러한 경우와 별 상관이 없는 학술인, 예술인은 양극으로 갈리는데 본업에 종사하면서 괜찮은 삶을 살거나 노동 지역으로 배정받아 활동이 완전히 끊긴 채 심한 경우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일부 월북한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 가운데 극진한 대접을 받은 사람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홍명희가 있다. 해방 직후 좌익으로 널리 알려진 문인들이 월북 이후 대부분 숙청당한 데 반해 홍명희는 종신토록 고위직을 지내며 북한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명망을 누렸다. [[파일:attachment/jirashi.jpg]] 왼쪽에서부터 차례로 설명하자면 이래성이라는 사람은 북한에서 공훈배우다. 한국전쟁 도중에 인민군에 투항한 사람이다. 두 번째에 있는 김세연의 경우 부대명이 안 나오고 머슴이라고 나왔는데, 1975년 [[대성동(파주)|대성동]]에서 납치된 농민으로 추정된다. 3번째는 석정현이라고 1981년 파주1사단 수색대 중대장으로 단기사관 12기출신 육군 대위로 월북했다. 4번째는 박현문이라는 사람으로 1982년에 12사단에서 북한으로 월북했는데 저 사람은 너무 굶주려서 배고파서 참지 못하고 월북한 걸로 알려져 있으며 넘어갈 때 지뢰를 밟고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5번째는 이필우라는 사람인데 88여단 출신이고 현재는 22사단이다. 1981년 10월 분대장과 동기를 총으로 쏴죽이고 월북했기 때문에 북한에는 이필우계곡이라고 불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필우의 소속 부대였던 88사는 [[제22보병사단|88여단]]의 오기로 보이고 윤치기의 소속 부대인 동경사는 [[제7기동군단|동해경비사령부]]를 뜻한다. 또한 김종운의 소속 부대가 미 2사인데 김종운은 [[카투사]] 출신이다. 참고로 김종운은 미2사단 보병A소대에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월북했다고 한다. "서울 마포출신 도시빈민인 내가 성공해봐야 얼마나 성공하겠나 나는 북한에 가서 성공할테니 나를 잊어주세요" 라는 편지를 쓰고 월북했다. 현재 평안북도 정주시 양정사업소 지도원으로 근무 중이라고 하는데 밝혀진 바가 없다. 이 사람은 한양대학교 운동권 출신이었다고 한다. 월북자들은 보다시피 1980년대까지는 이런 [[삐라]]에 출연했다. 현재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저 삐라에 출연한 저 사람들의 생사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2018년 대남선전방송에 사진에 있는 사람들 중 80%는 모두 조선인민군 군관복을 입고 출연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걸로 보인다. 여담으로 윤치기라는 사람은 북한에서 윤혁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고 이 사람에 대해 어느 사람이 댓글을 남긴 바 있는데 70년대 후반에 눈길을 뚫고 플라스틱 통을 이용해 월북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대성동(파주)|다른 곳]]에는 윤치기라는 사람은 1970~1980년대쯤 탈북을 했다는 말도 있다.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159&pn=0&num=11929|#]] [[6.25 전쟁]] 직후부터 70년대까지는 대한민국 내 사정에 정통하거나 친척과 같은 연고자가 있는 것을 이용하여 남파 간첩으로 훈련시켜 역침투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순재]]가 주연한 [[고영남]] 감독의 영화 '[[탈출]]' 이 바로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 모 국군 하사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정 하사가 북에 가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지만 적어도 그 영화에서는 이순재가 연기한 정 하사는 자진 월북이 아니라 [[비무장지대]]에서 납치되어서 자진 월북으로 위장되었다. 그가 간첩훈련소에서 만나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진 월북자이다. 결국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거듭난 척 연기하여 북한의 신뢰를 받고 남파 간첩으로 대한민국에 돌아오자마자 동료들을 모두 쏴죽이고 국군 부대에 투항한다. 남과 북 모두 [[연좌제]]를 실행한 이유가 사실 이런 인간 관계를 염두에 두고 첩보 활동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2013년 10월에는 월북자 6명과 시신 1구를 돌려보냈는데 이 때 송환된 사람들은 월북한 이후 2~3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남쪽으로 송환되었고[* 보통 월북자를 돌려보내지 않을 생각이면 관리소에 보낸다. 이들이 갇힌 수용소가 관리소가 아니라 단순 수용소 정도였다는 점으로 볼 때 애초에 가치가 없어서 송환할 생각이었고 남한과의 협상 카드로 쓰려고 억류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한 명은 부부 불화로 살해한 사실까지 확인되어 모두 남한에서 처벌받았다.[* 참고로 이때 피살자의 시신을 인계하면서 북한 측이 직접 ''''월북자 이모 씨가 자기 아내를 살해하였다''''고 통보했고, 검찰의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되어 집유를 받은 다른 월북자와 달리 유일하게 징역 10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되었다.] 이것은 대한민국 당국에 '우리도 월북자 돌려보낼 테니까 탈북자 문제로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이 탈북자를 조건 없이 수용하는 이유는 '북한 주민들은 헌법상 자국민인데 거주 이전의 자유가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이상 자국민이 자국 정부의 통치가 미치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코미디이기 때문'인데 애초에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주민들의 단순 이동마저도 통제하며 최고 통치자의 명령이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북한이 당연히 같은 원칙을 따를 리는 없다.] 북한 입장에서도 돈이 없는 채로 월북하면 뭘 뜯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문제를 일으킬 이유도 없다. 위에서 월북 시도를 하다가 거절당한 이야기처럼 본인이 '''북한의 기준'''[* 북한의 기준으로 한국의 거물급 인사를 꼽아보자면 [[국회의원]] 이상급의 정치인, [[장성급 장교]], [[재벌]]급 경제인 정도가 될 텐데 이들은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뭔가 큰 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수감됐다고 해도 [[유전무죄|오래 지나지 않아서 풀려날 확률이 높으므로]] 월북을 할 동기가 전혀 없다. 아니, 설령 자신이 지닌 돈이나 권력이 씨알도 안 먹혀서 일평생 [[교도소]]에서 썩을 처지가 돼도 [[조희팔]]처럼 해외로 도망치거나 [[박근혜]]처럼 그냥 체념하고 형을 살려고 하지(심지어 후자는 특별 사면까지 받았다.) [[북한]]으로 갈 정신 나간 사람은 한 명도 없다.]으로 대한민국에서 거물이라든가 소수의 특기를 지닌 사람이 아닌 이상 북한에서도 월북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부분 돌려보내며 '''[[코렁탕|국정원에서 인수해 간다.]]''' 2010년대 이후에는 북한에서 월북을 받아들인 사례는 최덕신의 아들로 상징성이 있는 [[최인국]] 정도다. 월북했다가 기적적으로 탈북해 살아서 남한으로 돌아오게 되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대공분실|시도경찰청 보안수사대]],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청]] 공공수사부 조사실, [[국정원]]'''일 것이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와도 몇 년 정도 [[교도소]]에서 지내야 할 수도 있다. 사안에 따라 [[국가보안법]]상으로는 무죄가 될지는 몰라도[* 육로로 [[중국]], [[유럽]] 등으로 가기 위해 단순 통과를 목적으로 방북했다던지 등.] 최소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모르고 월북하더라도 북한에 방문하려면 반드시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남북교류협력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 되면 아주 운이 좋아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 재판을 받고 집행유예 내지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는데 바꿔서 말하면 인생에 빨간 줄 그이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에 자진해서 온 외국인들 중에서 한국인보다는 미국인이 더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처럼. 그들의 자칭 '원수 미제놈들이 어버이 수령님의 은혜를 깨우치고 귀순했다'는 등으로 온갖 선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옛말이라 [[트레비스 킹]]은 엄연한 미국인 월북자임에도 추방 결정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