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월북 (문단 편집) === [[한국인]] === ※ 고향이 [[북한]]인 사람들은 ★ 표시를 한다. ※ 재탈북한 경우나 단순한 방북인 경우[* 정확히는 방북 과정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어서 법리적으로 월북이 된 경우를 말한다.]는 ☆ 표시를 한다. * [[http://nkd.or.kr/news/article/view/4865|강동림]] (2009년 10월 26일) - [[제22보병사단/사건 사고#s-5]] * [[강태무 표무원 월북 사건]] - [[6.25 전쟁]] 발발 이전인 [[1949년]] 국방경비대 소속 8연대[* 현재 해당 연대는 [[제7보병사단]] 예하 연대로 편입되었고 해당 연대 역시 이 사건을 두고두고 엄청난 불명예로 여기고 있다.]의 이 두 [[대대장]][* 당시 이들도 창군 초창기 다른 부대들이 그러하듯 [[소령]] 계급으로 대대장 직급을 맡았다.]은 길어야 하루 차이로 훈련 및 대북 시위 명분으로 자기 대대원들을 이끌고 나란히 월북[* 다만 이는 같은 고향 출신인 두 대대장 간 [[밀약]]이었는지, 북한군에게 투항하기 전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챈 중대장을 포함한 몇몇이 저항하거나 3개 중대가 포위망을 뚫고 가까스로 탈출한 사례는 있었다. 이때 부대에 잔류해 월북당하지 않았던 사람들 중 [[12.12 군사반란]]의 현장에 있었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도 있었다. [[http://blog.naver.com/jiaptng?Redirect=Log&logNo=150101869712|블로그]].]했고 이로 인해 군은 물론 나라 전체도 충격에 빠졌다. 그들이 왜 이러한 일을 벌였는지는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당시 [[여수·순천 10.19 사건|여순사건]] 직후 진행된 군 내부의 숙군 작업을 고려하면 아마 [[남로당]] 소속인 자신들도 이 대상에 오르리라 불안에 떨어 이 같은 일을 벌인 듯 싶다. 월북 이후 이 두 대대장은 부하들을 제물로 삼아 북한에서 성대한 환영을 받았고, 그 후 벌어진 [[6.25 전쟁]]에서도 북한군 지휘관으로 참전해 둘 다 전후까지 살아남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를 역임하다 [[http://ko.wikipedia.org/wiki/%ED%91%9C%EB%AC%B4%EC%9B%90|표무원은 2006년]], [[http://ko.wikipedia.org/wiki/%EA%B0%95%ED%83%9C%EB%AC%B4|강태무는 2007년]]에 사망했다. * [[6.25 전쟁]] 와중에도 전의를 잃거나 포위당해 월북해 [[삐라]]에 실린 이들도 있었다. [[http://shyne911.tistory.com/589|여기]]에도 위 8연대에 이어 3연대 대대장(소령 김업)도 나오는데[* 연출이 아니라면 정황상 [[현리 전투]] 와중 군단 전체가 와해된 상황에서 별 수 없이 월북한 듯 싶다.] 해당 연대들뿐만 아니라 [[제7보병사단|이 두 연대를 예하에 두고 있는 사단]] 입장에서도 당연히 불명예 그 자체다. * [[강홍식]]★ * 김광호☆ - [[탈북]]과 월북, 재탈북을 거치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 김금혁★: [[북한이탈주민 강화도 경유 월북 사건]] * 김기호: 군인으로 [[주한미군]] 6병기대대 538중대 검사과장으로 일하다가 2004년 10월 철원 지역 철책을 뚫고 월북했다. [[http://nkd.or.kr/news/article/view/4865|#]][[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91028/23726032/2|#]] * 김남천★ * [[김석형]] * [[김순남]] * [[김원봉]] * 김유찬 - 1991년 3월 1일 JSA판문점 공동경비대대 근무 중 회담장 분리선을 넘어서 월북했다. 성균관대 체육과 출신이며 1968년생이다. * 김하기☆ - [[부림 사건]] 관련자이자 <완전한 만남>을 지은 소설가. 1996년 7월에 중국에 갔다가 '''술에 취한 나머지''' [[두만강]]에 뜬 달을 보고 혹해서 강으로 뛰어들어 헤엄쳐서 월북했다. 술에 취한 김하기는 북한 주민들에게 "나는 남에서 온 소설가"라고 떠들다가 체포되었는데 김하기를 체포한 북한 군인들의 첫 마디는 "동무는 남조선의 '''[[수영]] 선수'''인가?"였다고. 북한은 김하기의 신원을 확인한 다음에 "북한에서 새 장가도 들고 글도 쓰지 않겠는가"라고 제의했지만 김하기는 거부했다. 1996년 8월 16일에 그는 귀국했으나 북한으로 갈 적에 남한의 장기수 명단과 사상투쟁 등을 북한에 보고한 혐의로 구속되어 1997년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1000329123008&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9-10&officeId=00032&pageNo=23&printNo=16213&publishType=00010|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다만 이듬해에 [[국민의 정부]] 출범 뒤 사면되어 석방되었다. * [[노수희]]☆ * [[도상록]]★ * [[류미영]] - 최덕신의 아내, 최인국의 어머니. * [[박인숙]]★ - 이 사람은 [[북한이탈주민]] 출신이다. 탈북했다가 다시 북한으로 간 케이스. * [[문선명]]★☆, [[박보희]]☆ - 사실상 [[방북]]이었음에도 법적으로는 월북이므로 기재한다[* 단순한 [[방북]]이 목적이라도 [[통일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 땅을 밟으면 금방 다시 나왔더라도 공식적으로 월북으로 처리된다. 그래서 정부 허가도 없이 북한에 멋대로 들어갔다 나온 [[문선명]] 부부, [[임수경]]이나 술에 취해 멋 모르고 북한 땅에 들어가버린 김하기 등의 본의 아닌 월북자들도 종종 나오는 것이다. 사실 법적으로는 북한군과 교전 중 후퇴하는 북한군을 추격하거나 기타 상황이 벌어지던 중 우발적으로 국경을 넘는다고 해도 월북이다. 그걸 월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뿐.]. 참고로 박보희는 [[세계일보]] 회장. * [[문예봉]]★ * [[박세영(시인)|박세영]] * [[https://www.dailynk.com/%EB%B6%81-%EC%9B%94%EB%82%A9%EB%B6%81%EC%9E%90-%EB%8F%99%EC%9B%90-%EC%B2%B4%EC%A0%9C%EC%84%A0%EC%A0%84/|#]], [[http://nkd.or.kr/news/article/view/4865|박순용]] (2003년 1월) * 박정숙★ - 2006년 북한을 탈출한 [[북한이탈주민]] 출신이나 2012년 다시 월북하여 남한의 체제를 부정하는 데 앞장섰다. 일각에선 가족들이 볼모로 잡혀 다시 월북하였으며 체제 선동에 이용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 [[박태원(소설가)|박태원]] * [[박헌영]] * [[백남운]] * [[백석(시인)|백석]]★ - 전통적으로는 대개 월북자로 간주되지만 고향인 [[정주시|정주]]에 거주하던 상태에서 해방과 분단을 맞았기 때문에 근래에는 월북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북에 잔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 백흥룡☆ - 일명 배인오. 1993년 김삼석 [[남매간첩단 사건]]을 조작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프락치. 원래는 영화로 노동사회운동을 하는 영화감독이자 연출가, 작가였다. 그러나 안기부에 포섭되어 당시 반핵평화운동을 하던 김삼석과 그의 여동생에게 접근하여 친분을 쌓은 후 김삼석에게 물건을 배달을 부탁하여 간첩으로 몰았다. 이후 [[독일]]로 망명하여 [[베를린]]의 범청학련 사무실에 나타나서 양심 선언을 한 후 북한으로 망명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22600329127010&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12-26&officeId=00032&pageNo=27&printNo=15976&publishType=00010|#]] 현재는 북한을 탈북하여 [[동남아시아|동남아]]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소재 파악은 안 되고 있다고 한다. * [[성혜림]], [[성혜랑]] 가족 - [[성혜림]]이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남한에서 살고 있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온 가족이 월북했다. 이 중 성혜림은 이미 북한에서 결혼했으나 [[김정일]]과 불륜을 통해 교제하는 사이가 되었고 결국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북한)|김정남]]을 낳았다. 후에 성혜랑은 탈북한다. * [[신불출]]★ * [[심영(배우)|심영]] - 철원군 서변면(현 철원읍) 출생이라[* 다만 어린 시절부터 월북 직전까지 계속 서울에서 거주하였기 때문에, 출생지만 철원이고 실질적인 고향은 서울로 볼 수도 있다.] 월북 당시에는 고향이 북한이었는데 6.25 전쟁의 결과 남한이 철원을 수복하면서 고향이 남한 땅이 되었다. * [[안기영]] - 당대 저명한 성악가(테너)이자 작곡가로, [[이화여자전문학교]] [[음대|음악과]] 교수를 지냈다. 1950년 아내 김현순[*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출신으로, [[안기영]]과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 처음 만났다. 안기영은 아내와 아이들도 있는 [[유부남]]이었지만, 제자 김현순과 [[불륜]] 관계를 맺다가 결국 가정을 버리고 김현순과 재혼했다.], 딸 안남식과 함께 월북했다. 월북 후 북한 음악계에서 활약했으며, 아내 김현순도 [[성악가]]([[소프라노]])이며, 딸 안남식도 '공훈배우' 칭호를 받는 등 북한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다. * [[안성희]] - [[최승희]]의 딸로 부모를 따라 월북 * ~~안학수~~ - 육군 하사. [[베트남]] 전쟁시 월북했다고 알려져서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는 등 곤욕을 치렀으나, 이런저런 정황과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가 되어 북송된 후 탈북하다가 1975년에 처형되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2009년 국방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월북자가 아닌 납북자로 인정했고, 2010년 주간조선에서 공개한 베트남 전쟁 관련 문서에 의하면 당시 주월사령부에서도 안학수 하사가 공무 중 납치 실종, 납북을 '''알고 있었음'''에도 공문서 위조까지 하면서 술과 여자 문제 때문에 [[탈영]]해서 북으로 도망쳤다고 우겼다. 이 일로 유족들은 국가배상소송을 청구했다. * [[안호상]]☆ - 1995년 [[대종교]] 교주 신분으로 [[단군릉]]을 참배하기 위해 무단 방북했다. * [[오길남]] - [[1970년]]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독일]]에서 경제학자로 있었으나, [[공산주의]] 사상에 호기심이 들어 가족들을 데리고 북한으로 이주했다. 아내가 반대했음에도 이주를 강행했고, [[오길남 사건|결과는 당연히 절망적이었다]]. 영화 [[출국(2018)|출국]]이 이 이야기를 다루었다. * [[오익제]]★ * [[오장환]] * 윤노빈★ -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월북'''의 주인공. 헤겔 철학의 전문가이자 신생철학이라는 철학 사상으로 유명했던 윤노빈은 현실에 비판적이지도 않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1983년]] [[대만]]으로 유학을 떠난 뒤 가족과 함께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가버렸다. 이후 가명이었던 '정영호'라는 이름으로 [[평양시|평양]]에서 살고 있다. 오길남의 증언에 의하면 나름대로 글을 쓰면서 사는 것 같으며, 소문에 의하면 대남방송의 기사 작성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윤이상]]☆[* 재탈북한 게 아니라 자기 맘대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다. 국적상 [[독일인]]이라서 법적으로는 방북이 자유로운 편이긴 하다.] - [[김일성]]과 접촉해서 북한의 [[5.18 민주화운동|5.18]] 왜곡 선동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했다는 설이 있는데, [[황석영]]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5.18과 관련된 이러한 서술의 출처가 5.18 북한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이라 교차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북한의 악단을 직접 지휘한 것만큼은 사실인 듯 하다. * 유운학 - [[제20기계화보병사단]][* 당시에는 연천 지역에 주둔하던 일반 보병사단이었다.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된 시기는 주둔지를 양평으로 이전하고 5년 뒤인 1983년이다.] 예하의 대대장이었다. 이 인간은 하필 보병학교 전술교관 출신이라 당시 한국군의 비문, 군사교범, 부대명 등이 싸그리 물갈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근거자료는 없지만 당시의 피해를 환산해보면 무려 1조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 이후 20사단은 주둔지였던 [[연천군|연천]]에서 [[춘천시|춘천]]을 거쳐 [[양평군|양평]]으로 주둔지가 변경되었고, 5사단은 졸지에 양평에서 연천으로 부대가 이동되어 버렸다. 게다가 혼자서 월북한 것도 아니고 월북 제안을 거절하는 운전병은 총으로 다리를 쏴서 놔두고 무전병은 위협해서 억지로 함께 월북해버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억지로 끌려간 그 무전병은 아직도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 * [[이용악]]★ * [[이쾌대]] * [[이태준(소설가)|이태준]] * [[임선규]] : 신파극 극작가, 문예봉의 남편 * [[임수경]]☆ - 역시 방북이지만 국가보안법 상 월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기재했다. * [[전혜성]](임지현)★ - 다만 [[TV조선]] 프로그램 [[모란봉클럽]]의 다른 탈북민 출연자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말하길, 전혜성은 애초에 간첩도 아니고 자진 월북자도 아니며, 그녀의 중국인 남편에게 속아 중국에서 북한 보위부에게 기획 납치를 당하여 '''강제로 북한으로 끌려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https://youtu.be/p6_AXvjYhuQ?t=29|해당 영상]]. * [[주인규]]★ * [[조준희 일병 월북 사건|조준희]] - [[제22보병사단]] 출신의 월북 군인. 그 중에서도 특히 악질인데, [[GP]]에서 내무반에 [[지뢰]]를 던져 중상을 입고 기어나오는 전우들까지 총으로 하나하나 다 살해한 뒤 소초에서 나오던 군인들과 근무 서던 군인들을 사살하고 월북. 이를 추적하던 다른 군인 2명까지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 최계순 * [[최승희]] - [[일제강점기]]의 유명한 무용가로, 해방될 당시 이미 유부녀였는데 남편을 따라 월북했다. * [[최덕신]] - [[대한민국 육군]]의 중장 및 [[육군사관학교]] 교장까지 지낸 사람이지만 1972년 [[박정희]]와 갈등으로 [[미국]]에 망명했다. 이후 1986년 북으로 망명하였다. 결국 북에서 [[천도교]] 청우당 당수를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 [[육군사관학교]]의 씻을 수 없는 불명예로 알려져 있다. 사망했을 때는 [[김일성]]이 직접 문상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데 [[제11기계화보병사단]]의 엄청난 실책이 되는 [[거창 양민학살사건]] 지시를 내린 인물이라서 이걸로 인해 대한민국이 종북 방관 혐의를 씌워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 [[최용달]] - [[양양군]] 군내면(현 [[양양읍]]) 출신이라 월북 당시에는 고향이 북한이었는데 6.25 전쟁의 결과 남한이 양양을 수복하면서 고향이 남한 땅이 되었다. * [[최인국]] - 위의 [[최덕신]]의 아들이다. 2019년 7월에 뒤늦게 월북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 [[최인규(영화 감독)|최인규]]★ - 일설에는 [[납북]]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하태경]]☆: [[지린대학|지린대학교]] 유학 시절 월경하여 북한 병사와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고 한다.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5792|#]] 방북이지만 법리적으로 월북이다. * [[한설야]]★ * [[한상렬(1950)|한상렬]]☆: 방북이지만 법리적으로 월북이다. * [[허헌]]★ * [[홍명희]] * [[황철]]: 본인만 월북한 게 아니라 [[최은희(배우)|최은희]] 등 여러 동료 배우들까지 [[납북]]했다. 다만 [[최은희(배우)|최은희]]는 [[6.25 전쟁]]의 그 난리통을 틈타 탈북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월북자들이 존재한다. 한국이 민주화되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파탄이 난 90년대 이후에도 정말 곤란한 처지가 되어서 월북한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2005년경 방송된 [[조선중앙방송]]의 방송 내용에 따르면 길게는 1990년대 초반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를 하던 도중 월북(1991년 3월1일 김유찬 카투사 일병)한 경우도 있는 반면, 짧게는 2000년대 중반 평범한 연구직이나 사무직에 근무하다 월북한 사례도 있다. 사실 남북 체제 대결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기 때문에 [[종북|종북주의자]]들의 월북은 오늘날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경제적 혹은 범죄 관련으로 곤경을 모면하고자 하는 것이 근래 월북자들의 주된 동기로 보인다. 즉 2000년대 이후의 월북 사유를 살펴보면 2004년에 막대한 사채 빚을 진 군 간부가 월북한 사건이 있고, 2009년에 폭행죄로 지명수배된 강동림이 월북했다고 알려진 사건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안으로 북한을 고르는 것은 정상적인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짓이다. [[정치범수용소/북한|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를 생각해본다면 자신이 사형을 선고 받을 만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남한에서 사형을 받거나 징역을 사는 것이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현재 [[대한민국|남한]]은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는 데다가, [[정치범수용소/북한|북한의 수용소]]처럼 고문, 인체실험이나 수형자 착취를 하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남한이 설령 사형을 재개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사형수에게 집행 당일날까지 최대한 인간적인 대우를 하기 때문에[* 사실 웬만한 나라는 [[사형제]]가 유지되었건 말건 죄수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편이다. 심지어 [[인권]] 수준이 바닥인 [[중국]]조차도 사형수에게 집행 직전에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을 먹이고 형장으로 보낼 만큼 죄인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한다. [[북한]]이 오히려 특이한 경우인 것이다.], [[북한]] 같은 데서 사람 취급도 못 받고 혹사 당하다가 인사불성인 채로 죽임을 당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 또 북한 입장에서도 이미 체제 대결이 끝나 선전용 월북자가 굳이 필요 없고, 더군다나 자신들 사회에 사실상 적응이 불가능한 범죄자의 월북은 오히려 골칫덩이만 떠안는 셈이라 전혀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무엇보다 월북자들은 이미 남한 땅에서 살아왔으므로 누구보다도 남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인민에게 대고 남한의 실상을 떠벌리고 다니기라도 하면 그간 남한을 엄청 비참하다고 허위선전해온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골치 깨나 썩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월북자들이 자신이 생각한 북한의 모습과 실상이 너무 다르다면 더더욱 그 위험성은 커진다. 사실 월북자들 중 대부분은 북한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남한이 싫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텐데, 자유를 잃기 싫어 도망나온 사람이 꽉 막힌 북한 스타일을 더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남한 출신 월북자들을 받는 것은 꺼리지만,[* 감시하느라 쌩돈과 인력만 낭비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평분자이기 때문에 북에서도 적응 못하고 시한폭탄이 될 확률이 높다.] 탈북했다 되돌아온 재월북자들은 자신들의 체험으로 북한인들에게 "탈북해봤자 별 볼 일 없구나"라는 식의 인식을 심어주어 체제 단속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북한은 갖은 수를 동원해 이들을 다시 유인하고 있다. 탈북했다가 재입북해서 한동안 북한의 이런 선전에 동원된 뒤 2013년 재탈북한 김광호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김광호는 남북한을 오가며 각종 정보를 양측에 누설했다는 죄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김광호처럼 탈북과 월북을 반복한 파란만장한 행적을 보인 자도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재월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한 편견과 행위 때문에 남한에서 탈북자들이 여러 모로 불이익을 받고 사는 것은 사실이나, 탈북할 때의 초심과 현재 북한이 어느 정도로 미쳐 돌아가는 국가인지 생각하면 남한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에 비해 재월북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특히 이미 남한의 문물을 체험해봤던 사람들을 북한이 미쳤다고 마음대로 풀어줘서 살게 놔두겠냐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김광호 씨도 재입북한 뒤 그곳에서 무심코 내뱉은 '남한이 더 잘 산다'는 말 한 마디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재탈북했다고 한다. 목적이 방북이었어도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국가보안법]] 상 월북으로 간주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