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연 (문단 편집) ==== 최후 ==== 234년, 제5차 북벌 중 위독해진 제갈량은 장사 양의, 사마 [[비의]], 호군 [[강유]]를 불러 자신이 죽고 난 뒤 철군할 것을 명했고, 위연에겐 후발을 맡도록 했다.[* 한편 『[[위략]]』은 제갈량이 위연 등에게 "내가 죽은 뒤에 삼갈 뿐 다신 오지 말라." 하며 위연에게 자신의 사무와 장례를 은밀히 맡겼는데, 위연이 이를 숨겨 포구에서 발상했다. 이때 사이가 좋지 않은 양의가 위연이 위에 귀부하려 한다고 모함하며 자신의 군사로 공격하였고, 위연은 배반의 뜻이 없었으므로 싸우지 않고 패주했는데 양의가 위연을 뒤쫓아 죽였다고 전한다. [[배송지]]는 이는 적국에서 전해 들은 말로 보이니, 본전과 논하여 살펴 알 수는 없다고 하였다. 다만 『[[자치통감]]』에서는 본전의 기록을 따랐다.] 제갈량은 위연이 명을 따르든 따르지 않든 바로 군을 출발하라고 말했고, 이 때문에 양의는 위연에게 비의를 보내 속마음을 떠보게 했다. 그런데 위연이 말하길; >"승상이 비록 죽었다고 하나 나는 건재하오. 승상부에 가까운 관속들은 곧바로 시신을 모시고 돌아가서 장례를 지내야 할 것이나, 나는 모름지기 제군을 이끌고 적을 공격해야 하오. '''어찌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하여 천하의 일을 그만두라 하시오?''' 더군다나 나 위연이 어떤 사람이기에 양의가 부륵[* 部勒, 부서를 정하여 인원을 배치하거나 혹은 부대를 나누어 인원수를 갖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3566&cid=41826&categoryId=41826|#]]]하는 바에 따라 뒤를 끊는 장수 노릇이나 하겠소!" >---- >[[진수(역사가)|진수]], 『[[정사 삼국지]]』, 유팽요이위양유전(劉彭廖李劉魏楊傳) 하며 군령을 거스르고 비의와 함께 떠날 부대와, 남아서 자신이 이끌 부대를 나눈 뒤, 비의에게 친필로 서명하게 해 제장들에게 알리도록 했다. 단순히 앙숙 양의를 따르기 싫다는 핑계를 넘어 아예 제갈량의 최종 군령을 거부하는 걸로 부족해 군 통수권을 이양받은 것도 아닌데 마치 이미 자기가 군 통수권자가 된 마냥 이리했다는 것은 혼자 김칫국 마시는 행위나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파멸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연히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알아차렸을 비의는 동의하는 척하면서 >"마땅히 자네를 위하여 가서 양 장사(長史)를 설득하겠소. 장사는 문관이라 군사(軍事)에는 어두우니, 반드시 자네의 말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오." >---- >[[진수(역사가)|진수]], 『[[정사 삼국지]]』, 유팽요이위양유전(劉彭廖李劉魏楊傳) 라 말하며 위연을 속인 뒤 빠져나와 말을 타고 떠났고, 뒤늦게 위연이 후회하여 뒤쫓았으나 잡을 수 없었다. 위연이 척후를 보내 엿보게 했는데 여러 군들이 차례대로 군사를 물리고 있었다. 이때 위연은 화를 이기지 못하여 직속부대를 이끌고 양의보다 먼저 남하했고, 촉으로 통하는 [[잔도]]를 불태워 끊어 버렸다. 과거 초한전쟁 시기 [[고제(전한)|유방]]은 [[항우]]의 의심을 피하려면 잔도를 불태우라는 [[장량(전한)|장량]]의 진언에 따라 실제로 불태운 적이 있는데, 비록 항우를 속이는데 성공했지만 아군 제장들 중에도 정말 꼼짝없이 익주에 고립되어버렸다고 믿고 절망하거나 아예 이탈자들이 속출하는 일이 벌어졌고, 유방 본인도 낙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수백년 후 촉한의 북벌 역시 이 잔도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위연 때문에 7 ~ 8만의 본대가 적지에 고립되고 만 것이다.[* 기록으로 미루어 제갈량이 지휘하는 촉군 본대와 연계를 위해 따로 주둔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위연과 양의는 서로 반역했다며 표를 올렸는데, 누구의 서신이 먼저 도착했는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하루 차이로 도착했다고 한다. [[유선]]은 시중 [[동윤]]과 유부장사 [[장완]]에게 진위를 물었는데 둘 모두 양의를 보증하고 위연을 의심하였고, 장완이 수도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를 모아 출정하였다. 촉군 본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잔도를 급조해 침착하게 나아갔는데, 위연이 먼저 도착해 남곡구를 점거하고 군을 보내 본대를 역격[* 逆擊, 자기 편을 치려고 향(向)하여 오는 군사(軍士)를 맞받아 침. [[https://hanja.dict.naver.com/#/entry/ccko/99a51b5388e54da0b5b09cc9862b2c83|#]]]했다. 이미 아군의 길을 막아 고립시킨 것만으로도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닌데 아예 공격까지 함으로서 더 이상은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스스로 몸을 던져버린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촉군 본대와 위연의 직속부대가 대치하게 되자 양의 등은 [[왕평]]을 앞에 세워 위연을 막았다. 왕평이 위연의 선봉대를 만나자 이렇게 외치며 꾸짖었다; >"'''공(公: [[제갈량]])이 돌아가셔서 그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거늘, 네놈들은 어찌 감히 이런 짓을 하느냐!'''" >---- >[[진수(역사가)|진수]], 『[[정사 삼국지]]』, 유팽요이위양유전(劉彭廖李劉魏楊傳) 그러자 위연의 사졸들이 잘못이 위연에게 있음을 알고 명을 받들지 않으니 곧 온 군이 모두 달아났다. 여예전에 보면, 제갈량이 죽고 달아났던 병사들이 군에 가기 싫어 호적과 이름을 위조하다가 [[여예]]가 시정하였는데, 위연이 이끌던 군세의 규모가 상당했을 것을 생각하면 이 병사들일 가능성이 있다. 순식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위연은 아들들과 함께 자신의 세력권인 한중으로 달아났는데 양의가 [[마대#s-3|마대]]를 보내 추격하게 하고 이윽고 붙잡아 참수했다. 양의는 위연의 [[수급]]을 보자 일어서서 짓밟으며 >"이 하찮은 종놈아! 이래도 못된 짓을 할 수 있겠느냐!" >---- >[[진수(역사가)|진수]], 『[[정사 삼국지]]』, 유팽요이위양유전(劉彭廖李劉魏楊傳) 하고, 나서서 삼족을 멸했다. 양의가 선을 넘는 행동을 했지만[* 위연이 내란을 획책했다가 실패하여 그 자신과 자식들이 죽임을 당한 건 자업자득이지만 남은 삼족에 대한 처분은 국가에서 진행하고 결정할 일인데 양의가 독단적으로 이런 짓을 저지른 건 그가 자기가 제갈량의 정식 후계자니까 그래도 된다는 대단한 착각에서 나온 만행이다.] 어쨌든 촉군은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