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조화폐 (문단 편집) == 파급력, 그리고 무기화의 역사 == 위조화폐 유포가 이렇게 중대한 범죄로 취급되는 이유는, 이렇게 공인되지 않은 물건이 화폐의 가치를 가지고 시중에 공공연히 유통되면 정부가 보증한 화폐의 신뢰도에 손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국가 경제 체제를 완전히 박살 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위조화폐 관련 뉴스가 확 줄어들다 보니 덩달아 경각심도 약해져서, 대중들의 인식이 '''화폐 제조 기술의 발달로 비교적 줄어든 위조화폐에 의한 피해+더 집중적으로 보도가 되는 강력범죄에 대한 이슈'''로 인해 강력범죄보다 위조화폐에 의한 범죄를 훨씬 사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위조화폐로 인한 다양한 피해와 고대부터 위조화폐에 대한 처벌, 그리고 여러 사례로 본 고의적으로 위조화폐를 유통하려는 의도를 보면 위조화폐 범죄의 죄질이 심하면 더 심하지 절대로 강력범죄보다 사소하게 취급될 문제가 아니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죄질이 강력범죄 이상인 이유는 위조화폐로 인한 범죄는 일반적인 금융범죄를 넘어 범국가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어 사실상 위조화폐로 피해를 본 국가의 국민들 대다수를 학살하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 전쟁이 나면 서로 상대국의 위조지폐를 뿌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위조화폐가 시장이 공공연히 유통될 시 [[인플레이션]]은 껌으로 보일 정도의 [[초인플레이션]] 같은 국가멸망급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위폐의 악영향이 워낙 큰지라 전쟁 중 적국의 경제를 박살내기 위해 적국 화폐를 대량으로 위조해서 뿌리는 일도 흔했다. 어떻게보면 일종의 [[비대칭 전력]]인 셈. 나폴레옹도 [[러시아 원정]] 때 러시아 돈을 미리 찍어놨다가 뿌린 바 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반면 이런 상황을 인지한 시민사회에서 방어를 위해(?) [[대체통용화폐]]가 도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 전시의 기호식품들이 있다. 미국에서 아래의 Secret Service를 만든 것도 남부에서 북부 엿먹이고 북부에 비해 부족한 물량을 보충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만들었기 때문. 주마다 지폐가 달라서 주끼리 거래하려면 [[카탈로그]]를 봐야 할 정도였다. 위조화폐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 주는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나치 독일]]이 세운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Bernhard|베른하르트 작전]]'''.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파운드]]화를 위조하는 작전이다. 작전의 이름은 해당 작전의 책임자인 친위대의 [[베른하르트 크루거]] 중령의 이름에서 따 왔다. 이를 위해 각종 서류 위조에 특출난 자들은 [[유대인]]마저도 살려서 투입했다. 실제로 이 작전의 핵심은 [[불가리아]] 출신의 유대인 위조범 솔리 스몰리아노프였다. 그러나 '조바심+제공권 상실'로 인해 본토에 제대로 투입을 못 해서 실패했다. 양산이 제대로 되던 1944년의 독일 공군은 이미 본토 방어조차 헉헉거리던 마당이었다. 하지만 작전 초기에 생산된 위조지폐들은 전쟁 중 독일 국내·외에서 실제 유통되면서 여러 경로를 거쳐 영국 본토까지 흘러 들어가게 되었고, 그 유통량은 작전 중 생산된 전체 위조지폐 총액의 10~20% 정도였지만 1970년대까지 영국을 괴롭혔다. 영국은 이 독일산 위조 파운드 덕분에 [[1960년대]] 결국 12진법 파운드를 10진법 파운드로 교체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화폐개혁 이후에 10여 년 간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구권 위조지폐(독일산)와 신 파운드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영국 은행들에서 구권 - 신권 교체 과정의 혼란상까지 더해져서 [[혼파망]] 상태가 지속됐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억 3,461만 파운드를 찍었다고 하는데, 이게 몽땅 투입되었다면 영국 경제는 말 그대로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직접 뿌리는 건 실패했으나, 작전의 목적은 제대로 달성한 셈. 이 여파로 영국은 신권으로 모두 교체할 때까지 10파운드 이상의 돈 자체를 안 뽑았다. 웃기게도 이렇게 힘들게 만든 A급 위폐는 영국의 전문기관이 조사하더라도 들킬 확률이 매우 적을 정도로 원본과 동일했기 때문에 친위대원들이 상당액을 챙겼다고 한다... 그들은 위폐 제작소를 '[[캐나다]]'라고 불렀는데, [[https://brunch.co.kr/@y-siii/157|'자원의 보고'라(서 돈이 넘쳐난다)는 뜻이었다]]. 열받은 영국도 독일에 위폐 작전을 실시하려고 했으나, 패전 직전의 막장 경제에서 위폐를 뿌리면 통화량이 증가해 '''[[양적완화|오히려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 예측해서 포기했다고. 또한 이들은 영국 파운드 뿐만 아니라 미국 달러도 위조를 시도했으나,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기 시작할 땐 이미 전쟁이 거의 끝난 뒤라서 작업이 중단되었다. 생산된 위조화폐 중 미처 유통하지 못한 분량 및 설비들은 오스트리아의 토플리츠(Toplitzsee) 호수에 폐기했다. 전쟁이 끝난 후 잠수부를 동원해서 이 위조화폐들을 회수했다. 작전의 책임자인 베른하르트 크루거는 종전 후 연합군에게 체포되었지만 전범으로 처벌받지는 않고 몇년 후 풀려났다. 위조화폐 제작은 전시엔 다들 하는 짓거리(...)라서 전쟁범죄 행위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그가 동원한 유대인들은 위조 지폐 제작을 독려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 물론 이들은 자신들이 위조지폐 제작에 성공한 뒤에는 쓸모가 없으니 죽임을 당할 것이란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도 이들은 종전 직전에 다른 수용소로 끌려가서 친위대에게 살해당할 뻔했으나, 연합군이 접근하자 친위대들이 도주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를 받았고, 이 때문에 동원된 유대인들은 베른하르트 크루거에게 우호적인 증언을 해줘서 풀려난 것. 베른하르트는 이후 독일의 한 제지 회사에서 일했다고. 이 사건을 다룬 영화로 [[카운터페이터]]가 있다. [[중일전쟁]] 때 [[일본 제국]]은 [[쇼카쿠급 항공모함]] 한 척을 만들 돈으로 40억 위안의 위폐를 만들었는데, 중국이 전비 충당을 위해 이전 발행량의 100배가 넘는 [[대륙의 기상|'''1,890억 위안'''을 뿌리는 인플레이션]]을 제 손으로 일으키는 바람에[* 심지어 이때 무분별하게 발행한 '''공식 화폐'''의 질이 하도 조악하여 일본이 뿌린 '''질 좋은(?)''' 위조지폐가 더 많이 쓰이는(...) 황당한 사태까지 이어졌다. 일본이 위폐를 뿌리지 않았더라면 국민당의 통화팽창정책 때문에 화폐 가치가 폭락했을 텐데 위폐 덕분에 진짜 화폐를 구분--해서 폐기--할 수 있어서 살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일본이 열심히 찍은 가짜 돈의 효과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진정한 [[양적완화]]~~ 중국은 그야말로 세계구급의 자폭을 한 셈. 오죽하면 작전 책임자가 "[[https://bbs.ruliweb.com/etcs/board/300780/read/47278200|중국은 실로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나라다]]"라고 했을까. 그리고 이 위안화 남발은 전쟁 이전 국민정부가 실시한 [[법폐개혁]]의 성과까지 무위로 돌렸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초인플레이션은 결국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공산당한테 패하고 대만으로 쫓겨나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국]]은 위조화폐가 하도 돌아서, 시골에 가면 100[[위안]]짜리를 안 받는 곳도 있다고 한다. 위조화폐를 받았다간 그 날 수입이 다 날아가니까.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 위조화폐가 나오면 경찰에서 즉시 수사에 들어가며 아주 난리가 나지만, 중국은 손님이 잘못해서 위조화폐를 내면 가게 주인이 '이거 위조지폐니까 못 쓴다'라고 하고는 공안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하도 많이 돌아다니니 다들 무신경해진 것. 아예 위안화를 믿지 못해서 계좌 이체나 신용 카드로 거래하게 된다. 그도 아니면 바코드를 사용하거나. [[파일:se3_image_37355858.jpg]] [[중국 위안|중국 100 위안]] 위조지폐. 위쪽 C9F5가 위조지폐이다. 일련번호 밑에 초록색 100이라는 글자의 색이 변하지 않는 것이 해당 위폐의 특징이다.[* 진폐는 보는 방향에 따라 녹색이나 회색으로 보여야 하는데 이것은 어떤 방향으로 보든지 녹색으로만 보였다고 한다.] 이 위폐를 손에 넣은 한국인 거주민은 황당하게도 '''저 위폐가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에서 당당하게 출금'''됐다고 한다. [[https://web.archive.org/web/20190804134401/https://blog.naver.com/mizno_travel/220888904689|아카이브]] 아예 진폐와 위폐가 당당하게 섞여서 돌아다니는 나라가 됐다. 심지어 '''[[KB국민은행]]에서 위안화로 환전을 했더니 위조지폐가 딸려왔다는 사례'''가 있었으며, 해당 위조지폐는 국민은행이 무사히 교환해주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중국에서는 보통 가게에서 지폐를 받았을 때 종업원도 고객도 조명에 비춰 보거나 위폐 감식기에 돌리는 일이 흔하다. 물론 그렇다고 위폐범 처벌이 가볍지는 않다. 오히려 무거운 편이다. 본보기를 보인다고 위폐범 일당을 죄다 사형에 처해 버린 적도 있었으나 잡히는 족족 사형시켜도 대책이 없어서 아예 일련번호가 HD90으로 시작하는 지폐는 몽땅 가짜라고 선언까지 내려 버렸다. [[마오쩌둥]]이 그려져 있는 현행 구권 100[[위안]]짜리 첫 코드 4자리가 HD90이었다. 대략 발행일자는 첫 발행부터 [[2008년]]까지. 이러다 보니 HD90 적혀 있는 지폐를 내밀면 위폐범으로 의심받으니 코드를 꼭 확인할 것. 수습이 곤란하게 된 이유는 고퀄 위폐가 돌아다녀서가 아니라, 놀랍게도 발퀄 위폐가 대량으로 당당하게 돌아다녀서라고 한다. 슈퍼노트급이 아닌 조악한 위조지폐다 보니 진짜 돈과 촉감 등이 완전히 달라서 중국 돈에 익숙한 현지인이면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위조지폐가 상당수 유통되고 있는데, 이러다보니 중국인들의 돈 세는 방법이 달라졌다. 가게 등에서 돈을 지불하면 한국식으로 넘겨가면서 세는 게 아니라, 엄지와 검지 사이에 지폐를 넣고 비벼가면서 촉감 및 재질을 확인하는 식으로 천천히 센다. 결국 위폐의 온상인 100위안 지폐는 [[2015년]]에 신권으로 교체되고 구권의 유통이 중단됐다. 물론 이 신권도 위조되고 있다. 고액권 위폐 방지를 위해 [[중국인민은행]]권 중에서는 최초로 색 변조 기술 등의 신기술을 적용했는데, 그런 것까지 위조하는 게 참으로 [[대륙의 기상]]이다. 이렇게 위조가 만연하게 되니, 중국에서 현금보다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등의 중국 내 양대 [[간편 결제 서비스]]를 선호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그냥 지폐로 거래하면 위조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야해서 귀찮고 번거롭기 그지 없는데다가 그렇게 확인을 해도 위조지폐가 나와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위챗이나 알리페이를 쓰면 번거로움이 해결되니까. 심지어는 거지들도 QR 코드를 크게 인쇄해 들고 다니며 구걸한다.[* 한국으로 치면 종이에 계좌번호를 적어놓고 토스로 쏴달라고 하는 격이다.] 결국 중국인민은행은 2010년대 신권 발행 계획을 세울 때 [[77246 위조지폐 유통사건|100위안권만은 4년 앞당겨 2015년에 발행을 시작했다.]] 나머지 권종들은 2019년(5위안은 2020년)에 리뉴얼. 때문에 위조화폐의 발행은 아니더라도 과도한 화폐의 발행도 오늘날 매우 민감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화폐 가치를 폭락시키고 물가를 급등시키고 정부가 없는 돈을 쓰는 경우이기 때문. 한마디로 국가가 스스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는 꼴이다. [[흥선대원군]]이 발행한 고액권인 [[당백전]]도 대표적인 케이스로, [[경복궁]] 중건을 위해 6개월 만에 당시 통화인 [[상평통보]] 유통액의 1.6배에 해당하는 당백전을 찍어 낸데다 위조 주화도 난무해서 한순간에 조선 전체의 통화가 당백전 유통 직전의 3배가 되는 대격변이 벌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