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청 (문단 편집) === 청년 시절 === 어느 정도 나이가 찬 위청은 당연히 이런 집안에서는 더 생활을 안하고, 다시 평양후의 집으로 가서 평양공주를 섬겼다. 그리고 평양공주의 [[기사]](騎士) 노릇을 했는데, 기사라고 해서 체인메일 입고 폼 내는 그런 것이 아니라 공주가 외출할 때 말을 끌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김기사... 아니 위기사...~~ 아무튼 이렇게 그냥 저냥 살아가던 도중,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무제는 황후 진아교(陳阿嬌)와 본래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나 문제는 아교가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아교는 질투심이 심했고 심지어 의부증 증세까지 보여 한무제는 아교에게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지고 만다. 한무제의 누나인 평양공주는 이런 상황을 난감하게 여겼는데, 그녀와 한무제의 어머니인 [[효경황후 왕씨]]는 자식을 네 명 낳았지만 아들은 하나, 한무제밖에 없었다. 황제를 떠나서 가까운 핏줄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 아들이 또 자식이 없으니 걱정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괜찮은 여자들을 계속 소개시켜 주지만 한무제는 영 뚱한 태도만 보였다. 그렇게 평양공주 집을 들락거리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평양공주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하찮은 여가수 [[무사황후 위씨|위자부]]였다. 위자부는 위온의 딸로 위청의 누이다. 한무제는 그녀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고, 이렇게 위자부가 존귀해지면서 위청도 정씨 성을 갈아버리고 위씨 성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건장궁(建章宮)에서 일하게 된다.[* [[한서]]의 위청곽거병열전이나, [[사기(역사책)|사기]]의 위장군표기열전 모두 위청이 어느 시점부터 궁궐에서 일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과정을 봤을 때 이때부터 궁전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한편, 이 위자부가 기어코 한무제의 아이를 임신까지 하게 되자, 본래 무제의 부인인 아교의 질투심이 폭발해버렸다. 당장 황제의 총애를 받는 위자부를 어찌해볼 수는 없으니, 그 대신 건장궁에서 일하고 있는 위청을 잡아 들여 죽여버리려고 사람들을 풀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위청이지만, 마침 친구였던 기랑(騎郞)[* 황제를 시중하는 무관. 그러니 공손오의 무예가 보통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손오(公孫敖)가 소식을 듣고 급히 장사들을 이끌고 구하러 와서 간신히 죽음만은 면하게 되었다.''' ~~아니 무슨 인생이 무협지를 찍네~~''' 이 소식은 한무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한무제는 위청을 불러들이고 건장궁의 궁감(宮監) 겸 시중(侍中)[* 황제를 좌우에서 모시고 수레와 복식을 관리한다.]으로 삼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위씨 집안을 우대하기 시작하는데, 위청의 누이이자 위자부의 첫째 언니인 위유(衛孺)는 태복 공손하(公孫賀)에 시집을 보내주었고, 둘째 언니인 위소아(衛少兒)가 진장(陳掌)이라는 남자와 살고 있자 진장도 불러들여서 귀하게 대접했다. 그리고 이 위소아의 아들이 바로 '''[[곽거병]]'''이다. 즉 곽거병과 위청은 숙부조카 사이인 것. 다만 곽거병의 집안 내력 역시 복잡해서, 곽거병의 친아버지는 진장이 아니다. ~~애초에 곽씨도 아니고~~ 자세한 것은 곽거병 항목 참조. 그리고 위청은 곧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임명이 되었다. 그야말로 인생 대반전이 이루어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