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고슬라비아 (문단 편집) === 구성 집단 사이의 합의와 이질성 === * '''구성 집단 사이의 차이가 지나치게 현격하였는가?''' 먼저 유고슬라비아의 건국은 1차대전 직전에 고조되었던 [[범슬라브주의]]에 따른 것이며, 훨씬 이질적인 요소가 섞였지만 그럭저럭 연방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 (예를 들어 [[인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 비해 분열요소가 딱히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쨌든 종교만 달랐고, 이들 국가들은 [[동로마 제국]]-[[오스만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틀안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고슬라비아가 내부적 다양성이 높았다고 하지만, 유럽만 해도 [[스페인]], [[벨기에]],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네덜란드]] 등 분열되기 이전의 유고슬라비아 정도의 다양성을 지니면서도 통합을 유지하는 나라들이 분명 적지는 않다.[*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에서도 이 때문인지 일부 지역에선 분리주의를 통한 분리독립 국가 건설 주장이 나오기도 하나 비교적 미미한 편이다.] * '''구성 집단의 동의가 없었는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세르비아 주도로 통합한 것은 사실이지만,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역시 (지역 의회 결의 등으로) 이에 동의했다. 이 무렵 강대국인 [[대영제국|영국]],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어렵다. 원래 영국과 프랑스는 '[[런던 밀약]]'으로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에게 [[아드리아 해]] 해안 지대를 넘기기로 결의했고 실제로 1차대전 말기에 이탈리아는 이 지역을 점령하려 했다. 유고슬라비아 통합안은 이에 대한 카운터로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민족주의자들이 주도적으로 주장한 결과 받아들여진 것이다. 따라서 유고슬라비아의 건국은 강대국들의 이해와 강요에 따른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민족의 '자의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다.[* 물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내에서도 세르비아와의 합류를 반대하고 독립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1차대전이 채 마무리되기 전부터 이탈리아가 [[달마티아]]를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상황이 너무도 급박하게 전개됐고 결국 민족과 언어와 문화가 남슬라브계로 좀 더 가까웠던 세르비아 합류 지지로 여론이 크게 기울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유고슬라비아인들의 합의가 성공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버리고 유고슬라비아를 승인해 주었다. 그래서 [[중동전쟁]]을 부른 [[아랍]] 국가들이나, [[아프리카]]의 식민지 출신 국가들이나 [[베트남]]과는 이런 측면에서 동일시할 수 없다.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이 무렵에 이탈리아(미수복 이탈리아) 및 세르비아(대세르비아)의 야망 때문에 각 지역이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못하고 급히 통합되어야 했던 탓에 세르비아의 독선을 유발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러한 주도 국가의 독선과 같은 경우에는 [[프로이센]]이 주도한 [[독일 통일]]과 [[사르데냐-피에몬테]]가 주도한 [[이탈리아 통일]]에서도 두드러진 문제이긴 하지만 위의 두가지 경우에는 유고슬라비아와 같이 끔찍하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특히 [[이탈리아/사회/남북문제|이탈리아의 통일과 같은 경우에는 이탈리아 민족주의가 강성했던 북부와 달리 남부에서는 이탈리아 통일의 경우 구성 집단의 동의가 없는, 북부에 의한 남부의 강제 합병으로 인식되어 골치를 썩혔음에도 이탈리아라는 국가는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물론 남북간 격차에 의한 사회적 문제는 현재진행형이지만.]. 그렇기에 유고슬라비아 통합에서 세르비아의 독선이 유고슬라비아를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보거나 설령 구성 집단의 동의가 없었다 간주하더라도 유고슬라비아의 붕괴가 필연적이었다고 하기에는 하자가 많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당시 발칸 반도 지역에서 일어났던 남슬라브 통일 운동은 몇몇 현지 지식인들과 지도자들만 주장했고 대다수 일반 민중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민족주의 운동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이탈리아 통일]]에서도 존재한 문제였고, "이제 이탈리아는 만들었다. 다음 차례는 [[이탈리아인]]들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어록이 존재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일반 대중이 민족주의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주장한 지식인이 소수였더라도 결국 동조하고 따라간 대중이 있으니까 민족주의가 힘을 얻은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