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바리시 (문단 편집) == 짧은 번성과 긴 쇠락 == [[메이지 시대]]부터 탄광이 많아지면서 [[석탄]] 산업으로 먹고 살았던 도시다. 한국의 [[정선군|정선]]/[[문경시|문경]]/[[태백시|태백]]과 비슷하다. 하지만 7~80년대 이후 석탄산업이 사장되고, 그 대책으로 1980년대부터 석탄[[박물관]]을 시작으로 공공시설을 지었다. 하지만 [[거품경제]] 붕괴로 관광객이 줄어들자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당시 시장이었던 나카다 데쓰지는 "투자 없이는 유바리를 재생시킬 수 없다"면서 관광 투자를 무리한 수준으로 확충했다. 대표적 예시 중 하나가 유바리 판타스틱 영화제[* 2008년부터 규모를 축소하여 매년 개최되고 있다. 전성기 끗발은 [[허우샤오셴]]도 [[밀레니엄 맘보]]를 찍을 때 다른 일본 도시도 아니고 유바리를 로케이션했을 정도이다.]라는 행사까지 만들었고,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리한 테마 시설, 리조트, 호텔의 난립으로 적자는 커져가는데 관광객은 점점 줄어들었다. [[분식회계]]로 막아보려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관광객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하기위해 만든 놀이공원,스키장,박물관,공원 등을 테마 파크 전문기업이 아닌 시청에서 경영하고 경영 책임을 맡은 임원들도 기업경영에 전문성 없는 공무원으로 채워 만성적자에 시달리다가 부도나기가 반복되어 지역재정을 거덜내었고 관광객 유치도 힘들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시 소속 공무원의 숫자는 인구가 많던 시절부터 전혀 삭감을 하지 않은 채로 수백 명 이상을 줄곧 유지했던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구가 1만5천명 이하로 줄어들었던 2001년 당시에도 공무원 수는 200명이 넘었고,[* 인구 5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기장읍의 공무원 수는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결국 2007년과 2008년에 공무원 수를 대폭 삭감하게 되었다. 2021년 현재 81명의 공무원이 근무중이다. 결국 2002년 무려 6선이나 했던 나카다 시장이 타계하고 실상이 드러나면서 시는 [[파산]]을 선언했다. 빚이 많은 상황에서 공공재 투자가 실패했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다. [[KBS1]]에서 방영하였던 '도시파산, 유바리의 잔혹한 봄(2007년 4월 7일 방영분)' 편에서도 유바리시의 처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젊은 사람이 극도로 부족한 전형적인 농촌의 연령분포를 보여주고 있어 눈물이 난다. [[MBC]]의 <[[세계와 나 W]]> 2007년 1월 12일 방영분, <뉴스 후> 2009년 7월 30일 방영분 에서도 소개하기도 했다. 구글 스트리트뷰로 유바리를 둘러보면 폐건물로 된 거리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등 처참함을 엿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