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비/혈통 (문단 편집) == 삼국지연의에서의 유비의 혈통 == 육성정후 유정 이후 혈통 기록이 없는 정사와는 달리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의 혈통을 세세하게 언급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정사에서는 중산정왕 유승의 아들 육성정후 유정이 후작을 잃고 탁현에 정착했다는 것까지만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후의 기록은 연의의 창작이다. 창작인 만큼 엉성한 부분이 있다. 분명 유정이 후작을 박탈당했는데도 벼슬이 확실히 기록된 유웅을 제외하고 모조리 후작인 것으로 적었다. 또한 유웅을 이어 주군에서 복무했다고 기록된 유홍은 졸지에 백수가 되어버렸다. 볼드체로 표기된 부분은 확실하게 정사에서도 존재가 언급된 부분. 경제의 아들 '''중산정왕 유승(劉勝) - 육성정후 유정(劉貞)''' - 패후 유앙(劉昻) - 장후 유록(劉綠) - 기수후 유연(劉戀) - 흠향후 유영(劉英) - 안국후 유건(劉建) - 광릉후 유애(劉哀) - 교수후 유헌(劉憲) - 조읍후 유서(劉舒) - 기양후 유의(劉誼) - 원택후 유필(劉必) - 영천후 유달(劉達) - 풍령후 유불의(劉不疑) - 제천후 유혜(劉惠) - '''동군범령 유웅(劉雄) - 유홍(劉弘, 무관직) - 유비''' 다만 연의의 기록대로면 유비는 황숙이 될 수 없다. 이 혈통대로면 유비는 경제의 18대손이 되는데 헌제는 경제의 13대손으로 헌제가 유비의 현조뻘로 훨씬 항렬이 높게 되어버린다. 촌수로 따지면 31촌이 된다. 굳이 호칭을 찾자면 황숙이 아니라 황제의 십삼종내손 혹은 황십삼종내손이라는 해괴한 타이틀을 써야 한다. 그냥 헌제가 황실 혈통을 이어받은 유비 같은 군웅의 도움을 받기 위해 유비를 지원해주려고 황제의 웃어른인 황숙으로 칭했다는 쪽이 좀 더 설득력있을 정도. 더군다나 유비는 까마득한 방계인데 방계는 보통 세대의 진척이 직계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 방계는 맏아들의 동생들의 혈통이다. 동생들은 당연히 나이가 어리기에 일반적으로 맏형보다 결혼도 나중에 하고 애들도 늦게 낳으니 당연히 세대의 진척이 느리다.] 헌제도 경제의 직계는 아니지만 나름 황실 내부에서 혈통을 이어왔는데 한참 전에 방계가 된 유비의 혈통이 18대손까지 진행된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렇게까지 진행이 빠르려면 유비의 직계 조상들은 아주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장손으로만 가계를 이어왔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경제(기원전 188년 출생)와 유비(161년 출생)의 연대간격은 약 350년인데 이를 18대손으로 나누면 평균 20년밖에 되지 않는다. 20년이면 당시 시대상으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까지는 별 무리가 없지만 첫 아이를 제외한 다른 아이까지 봤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나이다. 참고로 경제와 광무제가 6대 182년(세대당 평균 30.3년), 헌제와 광무제가 7대 186년 (세대당 평균 26.6년) 차이로 양쪽 다 적당한 나이이다. 중문 위키에 의하면 유비의 할아버지 유웅이 119년생, 육성정후 유정이 기원전 139년생으로 두 사람 나이가 257년 정도로 나오는데, 대충 계산해보면 최소 7대, 최대 12대 정도가 자연스러우므로 유웅의 손자 유비와 유정의 조부 경제가 12대손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다. 기왕 창작할 거면 정말로 혈통상 헌제의 황숙 위치가 될 수 있게 경제의 12대손 정도로 맞췄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유비가 경제의 12대손 정도로 황숙이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은 하다. 일단 방계는 동생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생으로든 형으로도 갈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선의 양녕대군은 세종보다 형임에도 왕이 못 되었기 때문에 양녕의 후손은 방계 왕족이다. 물론 황제처럼 변수가 많지 않는 이상 작위를 물려받는건 웬만하면 장남이기 때문에 황제와 거리가 멀어진 유정의 직계는 웬만하면 장남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두 번째로 둘의 조상은 나이 차이가 많지 않다. 일단 헌제의 조상은 경제의 7남 장사정왕 유발이고 유비의 조상인 경제의 9남 중산정왕 유승보다 형이 맞다. 그런데 유승의 수많은 아들 중 유비의 조상인 육성정후 유정과 유발의 아들 중 헌제의 조상인 용릉절후 유매는 둘 다 출생연도가 불명이다. 제후로 봉해진 연도로 따지면 유정은 기원전 127년, 유매는 기원전 124년으로 유정이 더 빠르다.[* 제후 책봉 시기엔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유정이 나이가 더 많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어쨌거나 비슷한 시기에 책봉된 만큼 나이도 비슷하다고 추정해볼 순 있다.] 유승과 유발 모두 자식이 많았으므로(유승보단 덜하지만 유발도 열명 이상 자식을 뒀다) 사촌지간인 둘 중 누가 더 나이가 많았는지는 불명이다.오히려 제후 책봉 연도로 보면 유비의 조상인 유정이 헌제의 조상인 유매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 세번째로 애초에 헌제가 직계가 된 것은 광무제 때부터 따져서 직계이다. 즉, 헌제의 후한의 직계 황족이지, 만약 전한이 멸망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면 유비와 마찬가지로 방계황족이었을 것이다. [* 물론 실제로 전한은 멸망했기 때문에 광무제의 직계인 헌제는 직계 황족이 맞다.] 유비가 전한의 방계 후손이라고 해도, 헌제의 조상들 역시 전한 기준으론 방계 황족이기 때문에 "전한의 방계 황족들인 유발과 유정"의 세대 진척 중 유정(유비 조상)만 딱히 느릴 이유는 없다. 마지막으로 유비가 방계란건 경제의 방계->유승의 방계->유정의 방계, 유정 아들의 방계, 이런 식으로 '''계속 방계란 소리가 아니라''' 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나온 시점부터 방계란 것이다. [* 물론 실제론 유비쪽으론 유정까지 방계긴 했지만, 설령 유정이 유승의 장남이었어도 마찬가지로 방계로 분류된다.] 위에 언급됐다시피 중산정왕은 아들이 너무 많아 직계여도 종친 취급을 못 받을 정도였으니, 만약 유비가 유정의 직계였어도 아무 힘 없는 일반 백성으로 사는게 이상한 건 아니다. 종합하면 애초에 유비와 헌제의 같은 대 조상인 유발/유승 형제와 사촌지간인 유매/유정의 나이차이가 크지 않고, 유정의 이름모를 아들로부터 유비가 직계인지 방계인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유비가 헌제보다 항렬이 높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유정-유비 사이에 중간에 누가 있었는지, 장남인지 동생인지 전혀 기록이 없으니까 세대 진척이 더 느릴지 빠를지 아는건 불가능하지만, 유비가 경제의 11~12대손이 되는게 이론상 가능은 하다는 말이다. 여담으로 유비가 혈통 조작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건 연의 영향이 큰데, 연의에서는 유비가 허구한날 자신이 황족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지라 '자칭 황족이라는 사기꾼' 프레임을 씌우기 딱 좋기 때문이다. 물론 연의에서도 유비가 확실히 황족이 맞다는 서술이 있긴 하지만 이 부분은 '연의가 유비빠라서 조작했다'고 퉁쳐버리면 그만인지라...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유비,version=767)] [[분류:촉한의 인물]][[분류:유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