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선(삼국지) (문단 편집) === 낙불사촉 일화 === [[촉한]]이 망한 이후 촉한의 유신들과 유선을 모아놓고 [[사마소]]가 베푼 잔치에서 사마소가 그를 위해 옛 촉의 가무를 짓게 했다. 주변의 촉한 유신들이 모두 슬퍼했으나 유선은 기뻐하고 웃으며 태연자약했다. 심지어 사마소조차 어이가 없었는지 "저렇게 사람이 무정하니 (촉이) 망했을 것이다, [[제갈량]]이 살아 있었더라도 힘들었을 텐데 하물며 [[강유]]는 가능했겠는가?" 라고 가충에게 털어놨을 정도. 다른 날에도 태도가 똑같아서 사마소가 그런 그에게 '옛날 촉의 생활이 그립지 않소이까?'라고 물어보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즐겁게 해주시니 조금도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樂不思蜀)'라고 대답했다 한다. 이에 [[극정]]이 보다 못해 유선을 만나길 청해 귀띔하기를 "사마소가 또 한 번 묻는다면 '조상들 묘가 멀리 촉에 있어 마음이 서쪽을 향했고 비감하니 하루라도 생각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고 눈을 감으십시오."라고 말했다. 사마소가 이를 엿들었는지 (망국의 군주니 어느정도 감시를 붙여뒀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사마소가 극정에게 지시해서 말한 것이었는지 알수 없지만 어쨋든 다시 '촉이 생각나지 않소?'라고 묻자 극정의 말처럼 대답하려했다. 그러나 유선은 현 상황이 그다지 슬프지 않고 눈물을 짜내려고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아 그 모습을 본 사마소가 "극정이 그리 울라고 시키던가요?"라고 말하자 유선은 놀라서 쳐다보며 '''"그 말씀대로네요."'''라고 대답했다 한다. 이윽고 좌중은 웃음 큰 잔치. 그에 유선은 자기도 좌중을 따라 같이 웃었다고 한다. 그 이후 사마소는 유선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선의 행동이 하도 한심하여 어떤 이들은 이야기의 진실성을 의심하는데, 이 이야기는 [[습착치]]가 지은 역사책 한진춘추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배송지]]가 [[정사 삼국지]]에서 후주전의 주해로 인용해 전해졌다.[* 그리고 [[이문열 평역 삼국지]]는 '이 일은 실제 역사에선 없었던 일이다.'라고 적었다.] 그럴만도 한게, 굳이 두 번이나 같은 질문을 던진 사마소도 수상하고, 그걸 극정이 예상하고 답안지를 줬다는 사실도 너무 우연적이다. 위에서처럼 극정이 사실 사마소의 지시로 짜고친 고스톱이었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지만 극정은 처자식을 성도에 버리고 유선을 따라올 정도의 충신이다. 이렇게 보여준 충성심들이 사실 모두 연기였다고 생각하기에도 석연치 않다. 게다가 유선은 항복한 후 평소 극정의 조언을 들으며서 진작에 극정을 발탁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하니 마냥 생각없는 인간이라고 보기도 뭣하다.[* 극정을 아쉬워했던 유선의 이 모습이 처세술과도 연관될 수 있다. 하지만 유선의 일상적인 모습이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는 건, 사마소가 유선의 주위를 장악했다는 뜻이다. 처세술의 달인이었다면 이미 주위가 장악당해 있는 상황에서 극정에 대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불리하다. 또 평소에 만만찮거나 수상쩍은 모습을 보여주다 갑자기 바보 연기를 한다면 오히려 더 수상할 것이다.] 사실 중국 역사에는 유선보다 더 한심한 황제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사마소의 손자인 서진 [[사마충|혜제]]가 그렇다. 이 에피소드를 한쪽은 유선이 아무 생각 없는 최악의 얼간이라고 해석하고 한쪽은 아버지 [[유비|소열제]]가 위나라 [[조조|무제]]와의 술자리에서 번개를 두려워한 에피소드와 비교하여 [[제안대군|처세를 위한 현명한 대답]]이라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사마소가 유선에게 재기의 의지가 있는지를 떠보고 만일 그럴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제거하려고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사마소가 [[조모|황제]]도 대낮에 시해한 잔인한 인물이었기에 여기서 유선이 재기의 의지를 보였으면 진짜로 죽였을 수도 있다.[* 유선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최훈도 삼국전투기 낙불사촉 일화에 '촉이 그립지 않냐'라는 사마소의 표정과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유선의 표정을 음영을 넣어서 그렸다. 다른 의도가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처세술이라고 긍정하는 측에선 사마소가 유선에게 재기의 의지가 있는지를 떠보고 만일 그럴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제거하려고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멸망한 나라의 군주가 살해당하는 경우가 많은건 그가 자신의 나라를 찾기 위해 겉으로는 충성을 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망국이라 할지라도 그 군주라던가 관련된 인물이라면 그 망국 출신 인사들에게 하나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게 [[초한전쟁|초한쟁패기]]에서 [[항량]]이 [[항우]]와 함께 거병할 때에 [[범증]]의 제안에 따라 자기 자신을 지도자로 내세우지 않고, 시골에 숨어지내던 초나라 왕족의 후손인 웅심(초 회왕)을 전면에 내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질적으로 가장 권력이 강한 사람은 항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구심점'으로 초나라 왕족의 후손을 내세웠기 때문에 과거 초나라의 사람들이나 인재들을 불러모을 수 있었다. 이는 삼국시대에도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형주를 정복한 위 [[조조|무제]]가 오 [[손권|대제]]에게 항복을 권유할 때 [[노숙(삼국지)|노숙]]이 손권이 항복하지 않기를 권유했던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손권 자체가 특별히 모난 군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항복을 해도 충분히 오나라의 신하들이나 잔존 세력들에게 있어서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조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선의 이런 태도는 '난 다른 뜻이 없으니 굳이 사마소 네가 경계할 이유가 없는 행동만 하겠다'라는 것을 보이기 위한 일종의 처세술로 보기도 한다. 이때 다들 어이없어한 것은 촉한의 구신들마저 지적할 정도로 촉에서의 태도와 끌려온 후의 태도가 달랐기 때문으로도 볼 수도 있다.[* 고도의 처세술이라면 이 에피소드에서 극정의 역할이 은근히 의미심장한데 극정은 유선이 낙양으로 끌려갈 때 '이런 신하를 진작에 못 알아봤다.'고 탄식한 신하였다. 이 점은 하술하겠지만 후일 조선 정조도 지적한 얘기다.] 실제로 [[강유]] 등이 촉한 부흥을 시도한 바 있고 설사 유선이 뭔가를 할 수 없다고 해도 시기 변화나 상황 변화가 이뤄지는데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고 혹은 반란군들에게 추대될 수도 있었으므로 의심이 가면 가차없이 제거할 생각으로 떠본 것일 수 있다. 어쨌든 유선은 군주였고 서진에서 일하고 있는 촉한의 구신들도 많았다. 당장 사마소의 손자 [[사마치]]가 이런 의심을 사서 죽었다. 사마치 입장에서는 딱히 뭔가를 시도한 것도 아니었는데, 옛 신하들이 수모를 못 참고 울었다가 덤으로 독살당했다. 처세술일 뿐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똑똑한 사람이 처세술 차원에서 바보로 위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촉한의 황제이던 시절에 신하들 앞에서 같은 처세술을 보여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촉한에서 온 사람들이나 이들과 교류한 많은 사람들이 유선의 실제 모습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지금까지 남은 몇몇 에피소드만으로 유선을 평가하게 되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당대의 사람들이 바보라고 판단했다면 단순히 에피소드의 재해석만으로 그러한 평가를 뒤집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저 위의 에피소드가 사실이라면, 처음 바보 행세는 처세술로 쳐도 극정이 슬퍼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말 한 후의 행동은 신들린 연기력을 타고 나지 않은 이상, 유선이 바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에피소드다. 거기다가 사마소가 유선을 죽일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유선을 살해한다면 훗날 오 침공 시, 손호는 어차피 항복해봤자 죽을 거 최후까지 저항할 것인데, 단지 일말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상당한 군사적 희생을 감수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유선을 살해한다면 또 그건 그것대로 저항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만약 사마소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오히려 유선을 살해하기는커녕 보약이라도 보내야 할 판이고, 때문에 단지 유선이 살아남았다고 해서 유선의 처세술이 확실히 있었다는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냥 처세술이 아니더라도 막장이고 처세술이면 더 오히려 까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 번 양보해 처세술이 사실이었다 한들, 항복을 한 건 백성들을 위해서라고 쳐도 왜 아들인 유심처럼 항복 직후에 자결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즉 '''왜 그런 모욕까지 듣고도 유심처럼 자결하지 않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구차하게 계속 살아 있었냐'''는 견해. 실제로 유선의 태도에 어이없어한 건 촉의 구신이나 인사들만이 아니라, 위(사실상 서진)의 인사들조차도 그랬다. 물론 망국의 군주라고 해서 꼭 목숨을 내던지는 것만이 책임지는 자세인 건 아니고 촉이 망한 게 유선의 탓만도 아니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유선이 하는 꼴이 너무 심해서, 옛 군주라고 모시기를 원했던 [[극정]] 등 신하들조차 나라를 잃은 군주면 좀 슬퍼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대놓고 까고, 적국의 수장인 [[사마소]]조차 망국의 군주면 나라가 망한 것에 대해 능력이 안 돼서 항복한 건 이해가 가지만 최소한 죄책감 정도는 가지라고 비난할 정도였다. 항복론을 주장한 [[초주]]에 대한 평가긴 하지만 [[홍대용]]은 담헌서에서 '임금이 사직(社稷)을 위해 죽는 것은 천지의 대의(大義)가 아니겠는가?'라고 간접적으로 당시 유선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사실 이게 처세술이건 처세술이 아니건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게, 유선이 이렇게 처신해서 재기를 노리거나 한 것도 아니고, 아무튼 유선은 딱히 재기를 노릴 인물이 아니었고, 사마소는 그걸 캐치하고 놀게 냅뒀다는 큰 맥락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라는 망했고 에라 모르겠다 나는 인제 손 떼겠소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주면 대충 만족하겠소'가 유선의 스탠스인 건 이후 행보로 볼때 명백하다. 따라서 유선이 이걸 적극적으로 어필했는지, 그냥 모르고 한 거였는지, 심지어 유선이 촉의 멸망을 슬퍼하긴 했는지 등의 여부는 크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의도가 있었다면 순수함 100%의 백치가 아니라 소시민적인 감성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유선의 능지에 대한 평가가 조금 올라갈 뿐이고, 백치나 소시민이나 사마소가 보기에 안전한 수준이었던 건 마찬가지니까. 유선이 아예 바보는 아니었다는 여러 정황증거를 보면 소시민 설 쪽에 무게가 실리는 편이고, 즉 낙불사촉 드립은 본인의 안위와 부귀영화만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 행동으로 인해 망국 촉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역사가들이 이를 부끄러운 행위라고 기록했는데, 이렇게 될 것을 알고도 자기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이 길을 선택했다면 이기적인 졸장부이다. 어쨌건, [[위진남북조 시대]]의 군주, 그것도 망국의 군주 치고는 그 일생이 놀라울 정도로 안락했기에 정말 보신의 처세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 적어도 황실과 자신의 권위를 살리는 능력은 있지 않았느냐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해선 [[제갈첨]] 문서의 각주에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어쨌건 이게 처세술이건 아니건 사마소는 촉정을 시작할 때부터 유선을 우매하다 평가했고 이런 꼴까지 봤으니 유선을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에 놔둔 것 같다. 의도했든 아니든 유선은 이 사건으로 자신의 안위만 지켜진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할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어필했고, 사마소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