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희열/토이 (문단 편집) == [[펠레의 저주|유희열(=토이)의 저주]] == 토이 객원 보컬을 한 가수는 가수로서의 인지도가 거의 제로가 되고 음반의 텀이 엄청 길어지며 객원 보컬을 맡은 이후의 작품들이 모두 전만 못하다는 평을 받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다음은 해당 인물과 사례. * [[유희열]] - 토이 앨범중에 일부 수록곡들을 본인이 불렸고 2022년에 터진 [[유희열 표절 논란]]으로 인해 본인이 해당 인물이 되었다. * [[윤정오]] - 토이 1집에 소개된 대로. 일단 엔지니어니까. * 김정호 / 박상균 - 김정호는 토이 1집의 "In Your Face"를 부르고, [[1999년]] 이후로는 행적 확인불가. 아마 은퇴한 듯. 과거 몇몇 타 아티스트의 앨범에 코러스로 참여한 이력이 있는 것 외에는 딱히 활동여력을 확인하기 힘들다. 박상균은 토이 1집의 "내가 너의 곁에"를 부른 뒤 1996년 MBC 강변가요제에 참가해 '그쵸'라는 자작곡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당시 5명의 편곡자로 참여했던 유희열과 재회해 다시 한번 작업할 뻔 했으나 잘 알려진대로 유희열은 당시 이수근이 참가한 팀의 편곡을 맡게 되었으며, 선배 프로듀서인 김형석 씨가 박상균과의 작업을 희망해 둘의 재결합은 무산되었다는 후문.) 박상균은 지난 2020년 경부터 LA박피디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재개, 자살방지 등 정신건강 힐링을 위한 한미공조 캠페인송 제작 및 프로듀싱, 나눔음악 프로젝트, 그리고 CCM 음악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https://www.facebook.com/LAparkPD|페북 공식 페이지]] * [[김연우]] - 토이 음반의 가장 많은 곡에 참여했다. 그 여파인지는 모르지만 4집까지 냈지만 아는 사람이 꽤 없으며 텀도 엄청 길다.(1998년 1집, 2004년 2집, 2006년 3집, 2011년 4집) "토이"의 김연우는 알아도 "김연우"가 토이에서 보컬을 자주 맡았다는 걸 모를 사람이 있을 정도. 2011년에는 [[나는 가수다]] 출연과 샤이니의 온유와 함께 듀엣곡을 불러 인지도 급상승. 그후 각종 예능등에 출연하여 요즘은 꽤나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미스틱 89]]로 적을 옮긴 뒤로는 미니 앨범도 꾸준히 발표하는 중. 또 [[복면가왕]]에도 출연해 양민학살을 시전하시고 가셨다. 본격 유희열이 탄생시킨 라디오 패널 전문 인생 1호. 단, 패널로 들어가면 오래 버틴다. 최소 반년에서 최대 3년까지. 참고로 '연우'라는 예명을 유희열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김연우 항목 참조. [[파일:external/wstatic.dcinside.com/kimyu.jpg]] * [[이장우(가수)|이장우]] - 토이 이전에 [[공일오비]]의 객원 보컬이기도 했다. 토이 2집에서 보컬을 맡은 이후 앨범을 두장 더 냈지만 (그 전에 낸 한장까지 합쳐 총 세장) 1999년 3집을 발매하고 [[2001년]] 결혼하고선 한동안 소식이 뜸했다가 다시 2004년 [[손지창]]과 함께 그룹 피닉스로 앨범을 냈다. 그 외엔 딱히 커리어 없음. [[2013년]]에 아들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1&aid=0002324827|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했으며]] 2016년에는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슈가맨]]에 [[서장훈]]의 의뢰인으로 출연한 바 있다. * [[윤종신]] - [[1996년]] 토이 2집의 피쳐링으로 처음 참여. 우연인지 필연인지 1996년 연달아 낸 5 & 6집까지가 많이 기억되고 그 이후의 앨범들도 분명 명반이나 어째 수렁으로…. 팔리기는 팔렸지만. 한동안 OST나 헌정앨범에서만 활동하다 [[2003년]] [[논스톱 시리즈|논스톱]] 4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예능인이 되었다. 이후 2005년 10집, 2009년 11집 등을 발매하다가 2010년 월마다 음악을 한 두곡씩 발표한다는 [[월간 윤종신|월간 Monthly 싱글 프로젝트]]를 출범시켰지만 90년대 [[음유시인]]의 이미지는 어디로 가고 웬 깐죽거리는 애 아버지가. 다만 정작 윤종신은 크게 개의치는 않는 듯. 하긴 성격 자체가 매우 쾌활한 사람이니.[* 사실 윤종신은 이미 1990년대 중후반에도 라디오 진행하면서 "깐죽거림"의 [[레전드]]였다. 근래에 TV에도 많이 출연하면서 다들 알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도 [[2017년]] [[좋니]]를 발표하며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 조삼희 - 토이 2집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 3집의 외로움를 불렀다. 이후 드림팩토리에서 기타 세션을 열심히 맡아 주며 간혹 음악여행 라라라나 [[이승환]]의 라이브 기타 세션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종종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라이브 기타 세션으로 활동중이기도 하다. * [[조원선]] - 모던 락 밴드 '[[롤러코스터(밴드)|롤러코스터]]'의 보컬. 토이 2집 Billy's Bar로 데뷔. 김연우만큼은 아니어도 그 훌륭한 보컬에 비해 인지도가…. 그래도 롤러코스터는 한국 대중음악사 사상 꽤나 특이하고 높은 퀄리티의 모던락 밴드로 자리매김을 했고 그 외에 [[2009년]] 개인 솔로앨범을 냈었다. * [[변재원]] - 1997년 토이 3집에서 바램과 다시 시작하기 두 곡의 보컬을 맡았다. 원래 신해철이 발굴해서 솔로앨범을 준비중인 가수였고 라디오 출연을 계기로 가까워진 유희열에게 객원가수로 추천을 한 것. 너무나 깨끗하게 묻혀서 [[OTL]]. OST.나 디지털 싱글을 내는 정도. 뭔가를 계속 내기는 하는데 거 참.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출연 당시 변재원 본인 스스로 '가요계의 닌자'라며 자학하기도. * 이재형 - 토이 3집 고백을 불렀다. 이후 위의 한 곡 부르고 퇴장한 가수들 처럼 행적 확인불가…였지만 한동안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게스트로 출연했었다. 과거 90년대에 종종 일부 드라마의 OST에 참여하기도 했다. * [[박용준]] - 토이 3집에서 선물 파트 2를 불렀다. [[더 클래식]]의 멤버인데 막상 [[김광진(가수)|김광진]]에 밀려서 상대적으로 잘 안 알려졌었다. * [[신해철]] - 토이 3집에서 '마지막 로맨티스트'를 불렀는데, [[넥스트(밴드)|N.EX.T]] 4집 Lazenca - A space rock opera와 다음 해인 [[1998년]]에 낸 솔로 3집 앨범 Crom's Techno works 히트를 쳤으나 1999년에 낸 솔로 앨범 Monocrom, 2000년에 낸 영화 세기말 O.S.T, 2001년에 비트겐슈타인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낸 A man's life가 모조리 침몰. 그래도 2004년에는 N.EX.T 5집, 2006년에는 N.EX.T 5.5집, 2007년에는 솔로 앨범이자 재즈 앨범을 냈으나 2008년에 N.EX.T 6집 파트 1 내놓고 곡 작업을 한동안 아예 놓아버렸다. 그나마 [[2014년]] 솔로 6집 "Reboot Myself Part 1"과 넥스트 7집 일부 선공개 등 다시 뮤지션으로 활동을 재개했으나... [[신해철 의료사고 사망사건|그 해 10월에 유명을 달리했다]]. * [[김형중]] - 전 [[E.O.S]] 멤버였던 가수로, 이쪽은 저주에 씌였다고 하기 뭐 한게 유희열이랑 같은 과다. 앨범 늦게 내고, 라디오 패널이 아니면 잘 눈에도 안 띄고. [[2013년]]까지 솔로 활동을 하다가 변재원, 김연우와 함께 '프로젝트 프랜즈'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위에서 언급된 기타리스트 조삼희, [[코나(가수)|코나]], [[W(밴드)|W]] 출신의 배영준과 [[E.O.S]]를 재결성해 활동 중. * [[하림(가수)|하림]] - 김연우 & 변재원과 함께 유희열의 저주를 직격타로 먹은 사람들 가운데 한명. 2001년 1집, 2004년 2집 이후로는 피쳐링이나 O.S.T. 참여로 근근히 보인다. 정말 근근히. 이후 [[윤종신]], [[조정치]]와 '신치림'이라는 그룹으로도 활동 중. 간혹 [[촛불집회]] 현장에서 얼굴을 봤다는 증언이 있긴 했다. 본격 유희열이 탄생시킨 라디오 패널 전문 인생 2호. 이쪽도 들어가면 오래 버티긴 하는데 본인이 의외로 방랑벽이 있다. 한때 KBS에서 <조정치 하림의 2시>라는 프로를 진행했었고, 성시경의 음도 등에서도 조정치와 같이 게스트로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둘다 혼자 빠졌다. 가장 최근인 현영의 뮤직파티 게스트 역을 그만 둘 때 댄 이유는 아프리카 자원봉사. 그래도 공연 쪽은 잘 풀리는 중. * [[김장훈]] - 토이 4집에서 윤종신과 함께 스케치북을 불렀다. 이쪽도 신해철처럼 유희열보다 기도 쎄고 훨씬 선배인데다 유희열을 가수로 만든 절대적인 사람이었기에 별 영향은 없었다. 유희열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1998년]] 3집에서 '사노라면'이 대박을 쳤고 [[2000년]] 솔로 6집의 난 남자다를 부를 즈음에는 초메이저 등극의 위업을 이뤘다 오오. 그러다 점점 공연형 가수 크리를 타더니 2006년 이후로 새앨범은 뚝. 그래도 이승환이나 신해철처럼 정열적으로 활동 중. 오히려 열정적인 기부 활동으로 인지도 및 호감이 급상승했다. 다만 본인에 의하면 기부 활동이나 독도 주권 알리미 활동 등에 의해 대중들이 자신을 가수 김장훈이 아닌 기부천사나 독도 지킴이 등의 이미지로 서서히 굳혀지는 것이 걱정인 듯.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가수로서의 입지는 좁아진 셈이니 저주 적중일지도? * 박인영 - 토이 5집에서 지누 & 유희열과 첫사랑을 불렀다. [[박정현]], [[이수영(가수)|이수영]]이나 이소은 같은 아티스트들의 앨범 수록곡에 참여한 바 있으며 영화 O.S.T에도 꾸준히 참여 중. 토이 7집에도 편곡에 꾸준히 참여했다. * [[성시경]] - 토이 5집에서 '소박했던, 행복했던'을 불렀다. 김연우, 변재원, 하림과는 달리 토이에서 보컬을 맡았는데도 불구하고 가수로서 꾸준하게 승승장구. 하지만 [[2007년]] 토이 6집에서 "딸에게 보내는 노래"의 보컬을 맡은 이후 [[군]]입대 문제와 [[소속사]] 간에 의견충돌로 [[2008년]] [[6월]] 발매한 6집 앨범이 활동할 겨를 없이 나와서 결국 저주는 실현되었다. [[2010년]]에 전역한 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FM 음악도시]]의 4대 시장을 맡으며 뒤를 따라갔다. [[2011년]]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을 보여준 정규 7집 '처음'은 상당히 성공했으며, 지금은 [[텔레비전]] 출연도 잦다. [[2014년]] 토이 7집에서는 타이틀곡 '세 사람'의 보컬을 맡았다. 그리고 12월에 새 앨범이 나온다고 했으나...정작 정규 8집이 아닌 캐럴 리메이크 앨범 〈[[Winter Wonderland]]〉였다. 결국 정규 8집은 7집을 낸 지 10년만에 나오게 되었다.. * [[이규호(가수)|이규호]] - 토이 6집에서 "나는 달"을 불렀다.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 수상. 이분은 원래 싱어송라이터인지라 커리어가 그리 돋보이는 건 없지만 확실한 커리어를 굳이 하나 적자면 윤종신의 [[팥빙수]] 와 이승환의 세가지 소원을 작곡했다. 정규 1집 이후 2집이 약 15년만에 나온 가수이기도 하다. * [[이지형]] - 홍대 남성 뮤지션 중에서도 최고급의 외모를 지녔고 천재라 불릴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해서 토이 6집의 타이틀 뜨거운 안녕을 불렀는데, 이후 작품활동이 '뜨거운 안녕'만한 곡이 없다는 평이 다수. 그전 밴드인 위퍼에서의 행적도 꽤나 화려했었고 [[2010년]] 2월 솔로앨범 발매. * [[루시드 폴]] - [[안테나 뮤직]] 소속 가수. 루시드 폴의 1집 새는 한국대중음악사 100대 명반 49위에 랭크될 정도였다! 하지만 토이 6집에서 투명인간의 보컬을 맡은 이후 낸 4집은 엄청나게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말 폭풍처럼 까였다. 이후 5집과 6집을 발표하고 [[2014년]]말 결혼. * [[스위트피#s-2|김민규]] - 한국 인디씬의 레전드 중 하나인 [[록밴드]] [[델리스파이스]]의 보컬. 이쪽은 자기들이 2006년에 6집 낸 후 알아서 봉인된(?) 경우. 2007년 토이 6집에서 안녕 스무살을 부른 이후 피쳐링이나 O.S.T.로 활동중이다. * [[윤하]] - 토이의 객원가수. 6집 작업을 할 때 '유희열 직접 보기 전까지는 백발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가 나온 후 팬덤이나 [[찌질이]] [[악플러]]들에게 집중포격을 받아 충격을 크게 먹은 전력이 있었고, 당연하게도(?) 객원 보컬 이후 낸 3집 파트 A는 실패했고 [[2011년]]에는 기존 소속사하고의 충돌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오늘 헤어졌어요"를 타이틀로 내세운 파트 B는 성공했다. 이후 정규 4집이나 Subsonic 앨범, [[나는 가수다]] 활동 등으로 본격적인 뮤지션,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이제는 완전히 극복한 듯. [[2011년]]부터 [[별이 빛나는 밤에]]의 22대 별밤지기로 취임하여 약 3년간 DJ로 있다가 새 앨범(아마 정규 5집으로 추정) 작업으로 [[2014년]] [[11월 2일]]을 마지막으로 하차한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