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동균 (문단 편집) == 은퇴 이후 == 이후 OB의 코치를 하다가, 1991년 이재우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임하자 감독대행을 맡고, 이듬해 프로선수 출신 1호의 감독에 올랐다. 1992년에는 시즌을 5위로 마감했지만, 1993년에는 시즌 3위까지 올라 준플레이오프에 오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red,#ff0000 '''그러나...'''}}} 1994년 시즌 막판 윤동균 감독의 거친 지도 스타일에 반발하여 다수의 선수들이 이탈한 [[OB 베어스 항명파동]]이 터지면서 이를 책임지고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이 사건으로 OB 베어스의 잔여 경기 몰수패가 논의되었으며 결국 윤동균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선수단의 대대적인 징계로 막을 내렸다. 사태의 원인인 만큼 그 이외의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 사건 후 윤동균은 주동자들과 화해하며 지금도 원만하게 잘 지낸다고 한다.[* 항명 파동의 핵심이었던 [[박철순]]은 이후 세차장에서 우연히 만난 윤동균과 소주 한잔 하면서 서로 눈물을 흘리며 화해했다고 한다.] [[안경현]]의 증언에 의하면 의외로 항명파동 때 당시만은 폭행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일날 선수들이 "우리는 못 맞겠다"고 하자 그냥 보냈었다고. 대신 윤동균은 평소에 다혈질로 유명해서[* 후배 김광수는 그에 대해 평소에는 섬세한데 경기할 때는 유독 다혈질인 분이라고 평했다.] 선수들이 혼란을 겪은 게 많아[* 어느 경기 때 부진한 선수를 욱해서 욕하며 2군에 가라고 해 놓은 뒤, 그 선수가 다음날 2군 훈련장에 갔는데 갑자기 코치가 전화해서 "감독님이 너 2군 명단에 안 보냈대. 돌아와라." 이러는 경우.] 앙금이 많이 쌓여있던 건 맞다고 한다. 그 후 PBC와 SBS 야구 해설위원, 음식점 '고향골' 경영 등 개인 사업을 하면서 1997년 실버야구단 '노노 야구단' 창단 당시 [[최동원]]과 함께 감독을 맡기도 했다. 2001년부터 [[한화 이글스]]의 코치를 맡아 야구계에 복귀했지만 2002년 말에 [[이광환]] 감독이 경질되면서 코치직에서 사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