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동균 (문단 편집) == 기타 == * 비록 성적에 대한 부담을 못 이겨 경력에 큰 흠집을 남겼지만, [[김민호(1969)|김민호]], [[안경현]], [[임형석]], [[장원진]] 등 훗날 OB의 황금기를 이끄는 선수들을 발굴해 1995년 OB 베어스의 창단 두 번째 우승의 초석을 다졌다는 호평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두산 베어스 공식 홈페이지의 역대 감독 소개에서도 '''"베어스 간판 선수 출신으로서 코치 수업을 받고 있던 윤동균 제 5대 감독은 부임 후 무명 선수 발굴 등 부족한 환경 속에서 팀의 경쟁력을 키워내며 베어스의 팀 재건과 상위권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 당시로서는 은퇴할 나이인 33살에 프로 데뷔해서 40살까지 활약할 수 있었던 건 [[김성근]]과의 인연이 한몫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기업은행에 들어갔는데 당시 [[김성근]]이 투수코치였다. 그가 보기에 제구는 떨어지지만 볼이 빨라 투수로 키워보려고 해서 [[김성근]]의 집으로 잡혀 들어가 하숙생활을 하면서 매일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오전 5시만 되면 뒷산에 올라가 훈련하고 출퇴근도 함께 해서 술 마실 틈이 없었을 정도. 비록 이후에는 투수가 아닌 타자로 전향해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보냈지만, 그 덕분에 선수생활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 *1988년 시즌 후 5년 계약이 만료된 [[김성근]] 감독이 OB를 떠나 [[태평양 돌핀스]] 감독으로 임명되어 OB의 일부 코치와 선수, 프런트 직원까지 데리고 가면서 이른바 '''김성근 사단'''을 구축할 때 선수생활 말년에 접어든 윤동균은 김성근에게 "감독님, 저도 태평양으로 가고 싶습니다" 라고 요청했지만, 윤동균은 OB 고위층의 신뢰를 받고있던 [[성골]]급 선수인 것을 알고있던 김성근은 "잘난 OB맨들 끼리 팀을 재구성한다고 하니 넌 여기 남아 있어야 클 수 있다" 라며 충고하였다고 한다. 윤동균은 비록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나긴 했지만 은퇴 후 OB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지내면서 김성근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한국프로야구 은퇴 선수 협회 제3대 회장, [[일구회]] 제14대 회장을 지냈다. * 현재는 KBO에서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youtube(LOXu0APdRno)] 호쾌하고 듬직한 인상을 지녀 [[OB 베어스]] 초창기의 얼굴 마담으로서 동양맥주와 태평양화학 '파낙스 D' 등지의 광고 모델로도 자주 기용됐다. 1989~1992년까지 [[대웅제약]]의 소화제 '베아제'의 전속모델로 나왔는데,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호감을 얻어 주위 사람들에게 '베아제 아저씨'로 불렸고, 딸 역시 '베아제'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TV 광고에선 목소리는 대역 성우를 썼지만 촬영 시 NG 없는 능숙한 연기로 관계자들로부터 연기자 전직을 제안받기도 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71100329118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7-11&officeId=00032&pageNo=18&printNo=14107&publishType=00010|1991년 7월 11일 경향신문 기사]]) 그 외에 김정일[* 북한 독재자와 동명이인이다.] 감독 영화 <내일은 야구왕: 홈런이다 홈런(1982)>과 KBS2 어린이드라마 <[[우리 아빠 홈런]](1990)>에도 출연한 바 있다. * KBO 리그의 원년 선수라 그런지 2004년작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도 등장한다. 배우는 이명수. * 은퇴하고서 영구결번을 받았지만, 항명사태가 터져서 윤동균 감독이 반쯤 흑역사로 전락하자, '''영구결번이 해제'''되었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10번은 누구도 달지 않았다.[* 참고로 감독시절에는 70번을 달았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849375|기사]] ] * 아들 윤준호[* 2000년생 야구선수 [[윤준호(야구선수)|윤준호]]와는 동명이인이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선수였다. [[한국프로야구/1996년/신인드래프트|1996년 한국프로야구 드래프트]] 당시 OB의 마지막으로 지명된 윤준호는 서울고 졸업 후 대학 대신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에 입대하여 기량이 성장했지만 사실 프로에서 활약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 지명은 의외라는 평을 들었다. 대체로 구단에서 우승도 했고, 한때 프랜차이즈였던 윤동균 감독에게 화해의 의미로 지명했다는 게 중론이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1700329117007&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6-01-17&officeId=00032&pageNo=17&printNo=15655&publishType=00010|기사]] 당시 프로야구 최초의 부자(父子) 야구선수로 화제를 모았으나, 결국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아무런 활약 없이 조기 은퇴를 하고 말았다. 이후 [[베트남]]으로 건너가서 침향 관련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