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석중 (문단 편집) == 생애 == 한국의 아동문학가로 아명은 노마, 호는 석동(石童).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는데도 [[보통학교]] 3학년에서 5학년으로 월반할 정도였다니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낭중지추]]였던 듯하다.[* 1925년 '조선소년운동협회'에서 수재(작문 잘하는 아동)로 뽑혀 동아일보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국에서 뽑힌 140명 중 한 명이었다.] 첫 동시를 발표한 것이 '''13세''' 때인 1925년이다.[* 처음으로 노랫말을 만든 것은 12살 때였다고 한다. [[학교]]에서 '하루(春)'라는 일본 노래를 배웠는데, 이 때 '봄'이라는 [[노래]]를 만든 것이 시작이라고... 생전에 [[인터뷰]]나 특강 때마다 언급했던 부분. 정확히는 <[[https://www.youtube.com/watch?v=FJGUzzQmai0|하루가키타(春が来た-봄이 온다)]]>라는 노래였다. 윤석중은 이 노래를 처음 배우면서 가사의 의미를 몰라, 선생님께 '왜 [[몬더그린|하루가 길다]]고 하는 겁니까?'라고 질문했다가 혼났다고 한다.] 데뷔작의 제목은 '[[https://www.youtube.com/watch?v=kO3aN7sJvWE|오뚝이]]'. >"석동 윤석중군은 조선 아기노래 시인의 거벽이다. 그의 노래 중에는 전 조선 아기네의 입에 오른 것이 여러 편이다. 그는 지금 이십이 넘은 청년이지만, 그의 속에는 사오세로부터 십이삼세에 이르는 아기네의 맘과 뜻을 겸하야 가졌다. 이른바 '동심'이란 것이다. 아마도, 또한 원컨대는, 그는 일생에, 그에게 백발이 오고 이가 다 빠져 오므람이 늙은이가 다 될 때까지 이 '어린 맘'을 읽어버리지 아니할 것이다."이라 평했다 > >1932년 윤석중동요집 서문 - [[춘원 이광수]]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극 「올빼미의 눈」이 선외가작으로 뽑힌 다음, 같은 해 『어린이』에 동요 「오뚝이」가 입선되었으며, 1926년 「[[물산장려운동|조선물산장려가]]」가 당선되면서 천재소년예술가로 불렸다. 1933년, [[방정환]]의 뒤를 이어 어린이 주간으로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6.25 전쟁]] 중에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부친]]과 [[계모]]가 [[서산시]]에서 우익 세력에게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하였는데, 계모가 좌익 세력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부친이 북한군 점령 기간 중에 서산에서 요직을 맡았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자 윤석중은 가족들이 있는 서산으로 피난오려고 했으나, 부친이 '전쟁 통에는 떨어져 있어야 누구든 산다'며 만류해서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후 소년중앙·소년·소학생 등의 주간을 지냈으며 1955년에는 [[조선일보]] 편집 고문을 지냈다.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지 그는 1956년 1월 3일 조풍연, [[피천득]], 어효선, 홍웅선 등과 '''새싹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선출되었다.'''하여 어린이문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57년 소파상을 제정하고, 1961년 장한어머니상을 제정했다. 1964년 [[마해송]]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해송문학상을 제정했다. 1961년 3·1 문화상 예술 부문 본상과 1966년 문화훈장 국민장을, 1978년에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또한 외부활동도 활발해서 1970년에는 어린이 회관 고문을, 1979년부터 2년간 방송윤리위원회 위원장, 1981년부터 1984년까지는 초대 및 2대 [[방송통신위원회|방송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03년 12월 9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향년]] 92세에 지병으로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0016791|눈을 감은]] 그는 12월 12일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2006년에 그가 모은 도서 8,555권이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