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선도 (문단 편집) == 원림 == 윤선도는 보길도와 금쇄동(문소동, 수정동 포함)에 원림을 직접 조영하였는데, 그의 유적지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그 화려함을 생각하고 찾아갔다가 막상 이 원림을 대하게 되면 실망을 하게 된다. 유적지에는 순수자연, 일부의 생활공간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림의 뜻을 이해하고 대자연에 몰입하여 그를 느끼게 되면 비로서 그 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하여 그는 "사군자의 처세는 나아가고 물러나는 두 가지 길일 따름이니, 조정이 아니면 산림이라 한 것은 곧 고인의 말입니다. 제가 이미 병이 들어 세로에서 행세할 수 없으니 수석에 소요하면서 여생을 마치지 아니하고 다시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자가 운곡[에 들어가고] 이자현이 청평[에 들어가며] 최고운이 가야[에 들어간 것]은 오래된 일입니다. 이원이 반곡으로 돌아가자 한퇴지는 서를 지어 찬양했고, 유지지가 여산에 살자 구양수는 시를 지어 훌륭히 여기었으니, 내가 어찌 이원과 여지지에 미치지 못할 것이며, 또한 당세인이 어찌 구양수와 한퇴지에 미치지 못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림(園林)이란 순수자연은 그대로 둔 채 거기에 최소한의 인위만을 가해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원(庭園, garden)과 다르다. 서울대 성종상공학박사는 "윤선도는 당시 여타 선비들과 구분되는 성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탁월한 예술적 소질과 감성의 소유자란 점이고, 둘째 자연에 대한 특별한 애호와 성벽을 숨기지 않고 토로하면서 적극적으로 찾아 즐기려는, 관념에 머물었던 당시 선비들과는 다른 실천궁행(實踐躬行실제로 몸소 실행함)의 자세를 지녔으며, 세 번째 당시 사상적 한계를 뛰어넘는, 유불선을 포용하는 열린 태도와 편력, 그리고 시대를 앞선 독창적인 시각으로서 천문, 지리, 의학을 위시한 과학적 지식에 대한 폭넓은 조예와 그에 입각한 실학적 자세를 견지하였다는 점 등이다. 그의 원림들에서 당시의 유교적 관념을 뛰어넘는 자연 경물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원림에 대한 적극적인 예술적 활동과 체험이라는 점이 유달리 부각되는 것은 이같은 그의 독특한 개성에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를 대표적인 원림조영의 실천가로 평가하였다. 그는 원림을 조성한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빈번한 유람과 탐승을 통해 체험하고 그 경험을 시, 수필, 음악 등으로 노래함으로써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