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을병대기근/전개 (문단 편집) === 2월 === > 평안도(平安道) 성천(成川) 등 16고을에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40여 명'''이었다.[* 2월 2일자 기사] >도적[賊人] 이억금(李億金)이 초장(草葬) 을 파내어 시체의 옷을 벗겨 입은 죄를 참형(斬刑)으로 논하였다. 근년(近年)에 오면서 거듭 기근(飢饉)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가난해져 명화적(明火賊)들이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는데, 곳곳마다 모두 그러하였으나, 유사(有司)가 전부 금지시킬 수 없었다. 심지어 '''살아 있는 사람의 고기를 먹으며''' 시체의 옷을 벗겨서 입으니, 참으로 예전에 없었던 변고(變故)로 식자(識者)들이 한심스럽게 여겼다.[* 2월 10일자 기사][* 기사를 보면 이 시기의 명화적들은 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어 도적이 된 것으로 보이며 그런 도적들이 사람을 죽이고 가진 것을 뺏는 것도 모자라 산 사람의 고기까지 먹을 지경이었으니 그 피해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물론 굳이 산 사람의 고기를 먹는다는 대목과 식자들이 근심했다는 것이 아니라 한심하게 여겼다는 기록을 보면 이 도적들이 그저 악랄하기만 한 이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식인까지는 안 하는걸 감안하면 정말 절박하긴 했을듯하다.] 4일, 왕이 강원 감사 유득일에게 진휼에 힘쓸 것을 유시했다. 8일에는 강릉에 화재가 발생해 집 65호가 불탔다. 11일에는 감사 유득일의 청에 따라 비변사에서 관동 지방에 보리 종자 6백석을 내리고 재해를 당한 고을은 대동법으로 거두는 쌀을 줄이고 그것으로 진휼에 보탬에 되게 했다. 13일에는 충청도 감찰사 민진후가 충주, 안흥, 아산 세 고을의 곡식 중 다른 고을에서 온 것은 되돌려보내고 각 고을의 저치미를 덜어 진휼을 위한 밑천으로 삼자고 청해 따랐다. 15일에는 동부승지 김흥복이 기근 대책에 대하 상소하여 이에 따랐다. 16일에는 비변사에서 흉년을 이유로 경기도에 봄에 바칠 전곡을 가을에 바치도록 청해 이에 따랐다. 30일에는 유랑하는 거지를 모아 여러 섬에 보내 구제하게 했다.[* 이들은 도적이 되기도 하고 또 유랑하는 입장상 목숨이 위험했기에 구제가 절박한 사람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