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응오딘지엠 (문단 편집) === 총론 === 결국 남베트남을 군사적으로 지키는 것은 미군이 한다 해도 실제로 남베트남 정부를 구성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를 하며 현지 인민들을 남베트남이란 국가 안으로 끌어올 만한 남베트남의 정치인은 응오딘지엠이 실질적으로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응오딘지엠이 쿠데타군에 의해 축출당한 후 남베트남의 많은 장수들이 정권을 노리며 나도 수장이 되겠다며 수많은 쿠데타의 수렁을 겪다가 통킹만 사건 발발을 계기로 미국이 직접 개입한 이후 아예 주권 국가로서의 존재감과 독자적 역량이 사라져버리고, 진짜 정직한 미국의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렸다. 파리 평화 회담 같은 자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전시 회담에서도 아예 철저히 배제되면서 괴뢰국 수준으로 떨어진 남베트남은 결국 응오딘지엠 이후 상실한 독자적 정치적 역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식물인간처럼 미군의 보호에 연명하다 결국 1975년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최후의 공세에 의해 그 기구한 역사를 끝마치게 되었다. 하지만 혼동해서는 안되는 것이, 응오딘지엠에 대한 긍정 평가는 어디까지나 응오딘지엠 이후의 남베트남 지도자들과 남베트남 군대가 더 무능하고 형편없었기 때문에[* 지엠 본인이 육성하고 미국이 후원한 친미 군부에서 후속 지도자들이 계속 나왔는데, 응우옌 반 티에우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다 후속 쿠데타로 망했다.] [[다시 보니 선녀 같다|차라리 응오딘지엠이 존속하는 게 더 가능성이 있었지 않았을까]]라는 의미일 뿐이다. 위의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대안들이라고 나온 인간들이 더 무능한 인간들밖에 남지 않도록 한 사람이 바로 응오딘지엠 자신이다. 독립운동은 했으나 무력투쟁 경력은 없던 책상물림 주제에 무장투쟁 경험이 풍부한 혁명위의 장군들을 앞뒤 안 가리고 숙청해버리는 동시에 정규군 장교들은 실력보단 충성심 위주로 승진시켜서 베트남군 간부들의 질적 수준을 크게 저하시켰고, 수많은 베트남 농민들의 마지막 희망이자 성공했다면 베트콩의 계급투쟁 전략을 가장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던 토지개혁을 소극적인 태도로 말아먹고, 전략촌 같은 허황한 곳에 물자/시간/노력을 헛되어 날려버렸으며[* 전략촌이 의미가 있으려면 최소한 베트콩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 방어가 가능한 수준이 되어야 했는데, 대나무 방벽 친 마을로 강제 이주시킨 후 주민들에게 죽창 연습 좀 시킨 게 전부였으니 당연히 방어가 가능할 리 없었다. 심지어 겨우 이정도 수준의 방위 노력을 한답시고 원래 살던 집 불태우고 강제로 이주시킨 것도 모자라 통금을 걸고 통금 시간에 마을 밖에 있으면 베트콩 취급했으니, 전략촌 마을 주민들은 오히려 응오딘지엠 정권에 분노했고 베트콩에 대항하려는 의지를 가지기 힘들었다.], 편협하고 차별적인 종교 정책으로 국민 대다수인 불교도, 특히 그 중에서도 독립운동에 큰 기여를 했던 호아하오교 분파를 배척하고 분열시켰을 뿐 아니라[* 사회 혼란을 빌미로 일체 종교 행사를 못하게 하면서 그에 따라 국민의 90%가 믿는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억압했는데, 정작 응오딘지엠 일가가 믿는 가톨릭의 크리스마스 때는 그런 거 없이 트리 세우고 할 거 다했다. 그러니 국민들 사이에서 응오딘지엠 정권이 불교를 억압하고 강제로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폭증했고, 그에 따라 소신공양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생각없는 충동적인 행동으로 국민의 공분을 샀던 쩐레쑤언의 행동을 통제하지도 못했다. 이러한 억압적이고 불통 그 자체인 국정운영은 민심의 이반을 유발했고, 특히 젊은 지식인들과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가장 격렬히 반발했다. 이 모든 실책 중에서 결과적으로 보면 디엠 본인과 남베트남에게 가장 해가 되었던 것은 미국과의 관계 악화다. 전쟁으로 강제 분단된 상태라 경제적 자립도 어려운 상황에서 중공과 북베트남이라는 거대한 위협에 노출된 국가로서 살아남으려면 후원자인 미국과 서방세계와 우호적인 관계가 필수적인데, 이유야 어쨌든 지엠은 각종 독재와 실책으로 서방세계를 실망시켰다. 해외 망명객 시절 구축한 인맥 역시 디엠의 비타협성과 고집 때문에 정권 말기가 되면 붕괴되다시피했고, 서방과의 계속된 갈등은 끝내 가장 큰 후원자 미국이 인내심을 잃고 응오딘지엠 제거를 승인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론은, 지엠의 몰락과 남베트남의 멸망에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사람은 바로 응오딘지엠 본인이라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