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응오딘지엠 (문단 편집) ==== 농지 ==== 이중 농지개혁에 관해 1955년 1월 법령 2호, 1955년 2월 법령 7호를 발표해 처음 손을 본 바가 있었다. 2호 법령은 소작인의 경작권 보호를 통한 안정화와 소작료를 15~25%로 제한한다는 것이었고 7호 법령은 유휴농지를 재경작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다지 효과를 보지도 못했고 제대로 실행되지도 못했다. 좀 더 근본적인 농지개혁은 1956년 10월 법령 57호가 발령되면서부터였다. 통계에 따르면, 농촌 인구의 0.025%에 불과한 2,500명의 지주가 40%의 쌀 생산농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때문에 메콩강 삼각지대 일대의 토지 소유 불평등을 해결하고 지주의 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려 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끝난 일본, 중화민국, 대한민국의 토지개혁과 달리 법령 57호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100ha[* 한국에선 [[농지개혁법]]에 따라 약 3ha의 토지만 보유할 수 있었다.]나 되는 농지의 1인 보유를 허락했고, 응오딘지엠의 권력이 약한 상태라서 강하게 밀어붙힐 수도 없었다. 게다가 지주 출신인 지방 관리들도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응오딘지엠 정권은 2,255명의 지주로부터 65만ha를 유상몰수하여 소작농에게 분배했으나 앞서 언급한 관료들의 능력과 의지 부족으로 원래 계획의 반에 불과한 10%의 소작농가만 혜택을 입었다. 그리고 오히려 1945년 8월 혁명을 통한 베트민의 개혁으로 혜택을 입은 농민이나 전쟁을 피해 도시로 피난간 부재지주의 토지를 공짜로 경작하던 농민들에게는 오히려 피해가 가는 개혁이었다. 1960년도에는 여전히 2.5%의 대지주가 45%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11%의 중소지주가 42.5%를 소유했고 일반 자작농의 보유 면적은 12.5%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나마 혜택을 입은 자들도 군 장교, 월남민, 가톨릭 교도, 중부인들이 대부분이라 [[토지개혁]]은 오히려 남부 농민의 불만을 샀다. 여기에 토지개혁으로 오히려 응오딘지엠 일가의 배만 불렸단 소문이 퍼지면서 반정부 불만은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은 농지개발 프로젝트였다. 응오딘지엠은 농지가 아니라 사람을 재분배하는 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무주지에 농촌 거주자들을 대거 이주시켜 농지 없는 농민에게 농지를 준다는 것이었다. 당시 남베트남은 인구과잉에 90만의 월남민까지 몰려와서 지나친 농지부족에 시달렸는데 농지를 확장하여 인구압력을 해결하면 경제, 안보, 이념 목표가 모두 달성되고 궁극적으로 베트남 농촌의 중농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계획에만 따르면 농지의 확장을 통한 농업생산력 증가와 상품작물 재배로 경제적 자립도 이룩할 수 있었다. 거기에 라오스-캄보디아 지역의 공산주의 침투 저지와 과거 반정부 군벌들로 소란스러운 지역의 안정도 꾀할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을 바탕으로 응오딘지엠은 1959년 중반까지 84개 정착지에 125,000명을 정착시켰다. 7만명이 중부인, 17,000명이 월남민이었다. 1962년 말 발표로는 173개 정착지에 23만명이 산다고 했다. 하지만 이 농지개발 정책은 지나치게 강압적인 수단이 동원되었고 농민의 희생을 지나치게 요구하여 월남민조차도 꺼렸다. 게다가 땅의 비옥도, 농업용수 접근 가능성, 교통 등의 여건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미국]]의 조언은 조속한 성과에 집착한 응오딘지엠에 의해 무시되었다. 이 때문에 월남한 사람들이 차라리 북으로 돌아가는게 낫다고 할 정도로 농민들의 희생은 컸다. 게다가 응오딘지엠은 미국 고문들로부터 베트남 주권 손상을 우려하여 미국에게 정보 제공을 거부하고 미국의 자금이 관료적 절차에 막히는 것에 대해 불만스러워했다. 그래도 이 농지개발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둔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