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병 (문단 편집) === 부정적 측면 === 국가의 입장에서는 사실 달갑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본래 군대를 운영하는 것은 돈을 밑 빠진 독에 쏟아 붓는 것처럼 엄청난 [[군비|군자금]]을 필요로 한다.[* 군대 운영 비용이 다방면으로 많이 들어가는 것 자체도 맞지만,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유가 전혀 틀리지 않은 것이 군대 운영 자체만으로 파생되는 물질적 이득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약탈이나 둔전 등의, 비용을 그마나 메울 수 있는 방법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단순히 의기만 가지고는 의병을 조직하기 힘들기 때문에 의병장은 보통 자기 지역에서 재력을 가지고 있거나 명성이 높은 인물이기 마련이다. 이들의 의병 활동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의병장들은 더욱 높은 명성을 얻게 되며 [[사병|무력 집단]]과 [[호족|지역 근거지]]까지 가지게 된다. 실패한다면 모를까, 의병의 활동으로 인해 문제가 해결된다면 더욱 명성이 높아지고, 스스로 국가적 난제를 수습하지 못한 중앙 정부의 권위는 상대적으로 추락한다. 그 결과 문제가 해결되면 의병은 [[군벌]]화 하고, 의병장들은 지방의 권력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도 처음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런 출세를 목적으로 의병을 일으키는 인물도 많다. 당장 유명한 삼국지의 [[유비]]만 하더라도 의병으로 군세를 일으켜 한 나라의 황제가 된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한 [[이홍장]], [[증국번]] 같은 청말의 한인 출신 고관들 역시 이런 사례에 속한다. 그래서 국가 시스템이 살아있다면 되도록 정규군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조선]]도 [[임진왜란]] 당시 모인 의병들 상당수를 관군으로 편입시켰다. 의병이 관군으로 편입되면 지휘권이야 기존의 의병장이 갖는다 하더라도 일단 정규군이라 전후 해산이 용이하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의병들이 도적떼가 되기도 하고 임의대로 관리들을 처단하고 다니기도 했는데 하급관리였던 [[한용운]]의 아버지 또한 의병들에게 살해당했다. 오히려 당시 신문들[* 일제강점기 이전의 일이다. 다만 이것도 애매한게 말이 좋아 일제강점기 전이지 실질적으로 일제강점기나 다름없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대한매일신문의 경우엔 비적, 비도 등이 아닌 의병으로 명시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대한매일신보의 사장이 외국인인 어니스트 베델이기 때문이란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에 따르면 신문들이 폭도 같은 표현을 쓰고 의병이란 표현을 안 쓴것은 일제의 탄압이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은 의병들을 [[폭도]]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