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자왕/생애 (문단 편집) === 당항성 공격 === 그 이듬해인 643년 정월에 의자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는 한편, 11월에는 고구려와 화친을 체결하였다. 당시 [[영류왕]]을 시해하고 고구려의 실권자로 행세하던 [[연개소문]]은 대야성 함락 후에 찾아온 [[태종 무열왕|김춘추]]를 내치고 그 대신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의도로 백제와 전면 화친을 맺었다. 고구려와 화친을 맺은 의자왕은 신라가 [[당나라]]와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 당항성(黨項城)을 집중 공격하였다. 당항성은 오늘날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위치한 곳으로, 의자왕은 이곳을 점령하여 신라가 당나라에 입조하는 길을 끊어버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신라의 [[선덕여왕]]은 급히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의자왕은 이를 알고는 공격을 멈추고 물러났다. 결국 당항성 공격은 당의 개입으로 실패했고 이는 신라가 당나라에 의지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이때의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말갈에 의해 '''멸망 직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신라가 당에 구원을 요청하자 당 태종은 644년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와 백제, 말갈의 신라 공격을 멈추라고 요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