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건희 (문단 편집) == 여담 == * 생전에 기관지가 많이 약해 림프암 수술에 6년간 심근경색 [[https://m.yonhapnewstv.co.kr/news/MYH20201025012700641|투병을 했었다.]] 그래서 집에 공기청정기가 있는데 전기료가 가장 많이 나오는 대저택이었다. * [[홍사덕]] 국회부의장과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8/2020061803866.html|절친이었다.]] 정치인들과 친분이 깊었다. * 아버지로서 [[이재용]]을 엄격하게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 [[홍라희]]는 말로 훈계를 했지만 이건희는 [[빠따]]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재용의 소심한 성격이 아버지의 영향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파일:삼성_이건희_일가.jpg]] * 출생지가 [[대구시]] [[중구]] [[인교동]]인지라 [[대구(중구)]] 출신 인물로 분류되어 있지만, 전술되었듯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을 떠나 3살 때까지 [[경남]] [[의령군]]에서 자랐고, [[일본]]에서 소학교를 다닌 뒤에 [[1950년]] [[6.25 전쟁]] 때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사범국민학교[* 현. [[부산교대부설초등학교]].]를 다녔고 중고등학교는 모두 [[서울]]에서 다닌데다 [[대학]] 역시 [[연세대학교]]를 다니고 나서 [[일본]] [[와세다대학]],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이 학력이다. 말그대로 출생지만 대구일 뿐, 대구 사람은 아닌 것이다.[* 태어난 특정 지역의 사람이라 한다면 적어도 [[학교]]는 그 지역에서 나왔어야 한다.] * [[부산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잣집 도련님이라서 사립학교를 나왔을 것으로 보는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초중고는 모두 국립학교를 졸업'''하였다.[* 물론 국립 초등학교는 공립 초등학교와는 다르게 사립학교에 준할 만큼 교육의 질이 매우 좋다. 단지 학비가 무료일 뿐이다. 중/고등학교는 일반적인 공립학교와 다를 바 없으며, 사립학교도 뺑뺑이 돌려서 배치되는 곳은 공립학교와 다를 바 없다.][* 공립학교 출신의 정치가, 기업가들도 많은 것을 보면 사립학교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다만 1970년대 평준화 이전에는 서울을 비롯 지역명문고는 국공립이 우선이었고[* 경기고, 부산고, 경북고 등] 사립이 뒤를 따르는 식이었다. * 아들인 [[이재용]]은 재벌 개그를 담당하고 있고, 이건희는 재벌 총수가 주는 이미지와는 다른 귀여운 외모로 한때 '''[[쁘띠]][[거니]]'''로 알려졌었다. 이 별명을 본따 이건희의 여러 가지 모습을 모아놓은 '쁘띠거니' 시리즈가 한때 유행했었다. XX에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넣어놓고 'XX거니'라는 제목을 달아놓는 형식. [[http://down.humoruniv.org/hwiparambbs/data/pds/hu_1303282539_62348497.jpg|예시]]. * 고등학교 시절에는 [[레슬링]]부 소속이었다. [[럭비]]도 좋아했고 [[승마]]도 즐겨했던 모양이다. 이를 바탕으로 레슬링협회장[* 레슬링협회장, [[대한체육회]] [[이사(직위)|이사]]를 거쳐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당선되었다.]과 승마협회장을 맡았다. [[2008년]] [[특검]] 수사 때는 수사관들에게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21/2008042100910.html|승마의 장점에 대해 줄줄이 설명]]하면서 아예 직접 배워보라고까지 권했었다. * [[KBO 리그]] 창립 초창기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삼성 라이온즈]] 초대 구단주[* 나중에는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 [[이수빈(기업인)|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그의 경영 참모들이 구단주 역할을 대리했다.]로 야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구단 경영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 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한 뒤로는 직관은 안 간다고 한다.[* 그가 야구장에 갈 때마다 라이온즈가 패하는 징크스가 있었다고 한다.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때도 처음에는 자택에서 TV로 중계를 보다가 삼성이 리드를 잡자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으로 향했는데 하필 야구장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은 순간 [[장효조]]의 결정적 수비 실책(일명 '만세 사건')이 터지면서 경기가 꼬이기 시작했고 결국 [[유두열]]의 역전 홈런과 [[최동원]]의 역투로 팀이 준우승하는 순간을 직접 목격했다. 이후 단 한 번도 야구장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라이온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상당했다. 대조적으로 아들 [[이재용]]은 야구장에 갈 때마다 승리하는 이른바 '재용불패' 징크스가 유명했다.] * 재벌 중에서도 소문난 애견인으로 유명한데, 한남동 자택에서도 포메라니안, 요크셔테리어, 치와와를 포함한 여러 마리의 반려견을 키웠으며 특히 '벤지'라는 이름의 포메라니안을 무척 아껴서 이 개가 16세의 나이로 노령으로 사망하자 충남대에 연구비를 지원하여 이 개를 체세포 복제하기도 했다. [[삼성화재]]의 맹인안내견 육성 사업을 통해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안내견 육성을 지원하고 있으며, 에버랜드를 통해 진돗개라는 견종을 국제적으로 알린 것도 삼성인데 이러한 사업에 이 회장의 반려견 사랑이 반영되었다는 평가다. 또한 갤럭시 휴대폰의 테스트 모드중 하나인 *#0*#에 사진이 숨겨져 있다. 센서 버튼을 누른 후 이미지 테스트를 누르면 나온다. * 반려견 사랑과 함께 부하 직원을 직접 문책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알려주는 성품이 반영된 일화가 있는데, 어느날 모 임원을 불러 "우리 사장단 중에서 혹시 보신탕(개)를 먹는 사장이 있는지 조사해달라"고 하자 해당 임원이 "명단이 제출되면 문책하실 생각이시냐"고 물었다. 이에 이 회장은 "아니, 강아지를 한 마리씩 선물하겠다"고 했다고. [[https://www.insight.co.kr/news/309835|관련 기사]] 강아지를 직접 키워보면 보신탕을 먹는 일을 안할 것이라 생각하여 완곡하게 알려준 것이다. 실제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등 국제 행사 때 한국인이 개를 먹는다는 외국의 인식 때문에 평가절하당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 있다. * 일본에서 산 유년 시절에는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가정교사의 특별 교육만 받아 평범한 친구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이건희는 거의 하루종일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고 한다. 이것은 이건희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같은 영화를 수차례 관람하면서 각각 주연, 조연,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보는 버릇을 갖게 되었고 이는 회장이 된 후 다각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2014년]] 병환으로 쓰러져 있을 때에는 병원 측에서 의식이 깨어나도록 그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틀어줬는데 자주 보던 '''[[스타워즈]] 시리즈'''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 등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가 처음으로 입사했던 동양방송의 운영이나 안목에도 이러한 유년시절의 취향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 [[자동차 애호가]]로도 유명해 자동차 수집과 운전도 좋아했다. 가끔은 에버랜드 서킷을 전세 내고 레이서에게 교습 받아가며 드라이빙을 배웠다고 한다. [[1982년]]에는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가 크게 나서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아야 했을 정도. 세계 최고가 차량인 페라리 250 GTO[* 22번 차량이다. 1996년에 구매했다가 2007년에 익명의 영국인 수집가에게 매각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해당 구매자는 바로 다음해에 이 차를 몰다가 사고를 냈다.] 를 포함한 클래식 카들은 물론 고급 [[세단]]을 수집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슈퍼카]] 매니아로 알려져 있는데 2015년 조사 결과 26억원짜리 [[부가티 베이론]] 포함 총 126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고, 차량 가격을 다 합치면 총 477억 원에 달한다. 참고로 대한민국에 단 한대 있는 [[부가티 EB 110]]도 소유 중이었는데, [[삼풍백화점]] 붕괴 시기에 삼풍백화점에 있었는지라 현재 소유는 불명확하다.[* 다만 후에 반납했다는 말을 보아 아직까지 소유 중인듯 하다.] 그런데, 이게 1억 원 이상 차량만 조사한 거라서 '''1억 원 이하의 --저렴한-- 차량은 누락되었다는 게 함정.'''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1&nNewsNumb=002373100002|관련기사]] * 상당한 오디오광으로도 유명했다. 일본의 고급 오디오 회사인 럭스만을 인수했다 되팔기도 했고, [[마크 레빈슨]]·헤일즈 스피커와 손을 잡고 엠퍼러라는 하이엔드 오디오를 출시했다가 IMF 외환위기 이후 정리했다. 와병하는 동안 삼성이 하만을 인수하면서 하이엔드 오디오에 재진입하였다. * 카메라도 좋아해서 돈이 되지 않아도 카메라 사업에 꾸준히 투자를 하기도 했다. * 에피소드로 외제차를 구매하다 영업사원에게 굴욕 아닌 굴욕을 당한 적이 있다. [[포르쉐]]를 구입하려 매장을 방문한 이건희가 포르쉐를 총 6대 고르고 계약 사인을 하고 가는데 신입직원이 몰라보고 계약금을 달라며 발목을 붙잡은 일이 있었다. 이에 이건희는 지갑 가져와라 하면서 3억을 즉납했다는 일화도 있다. [[벤틀리]] 매장서는 벤틀리를 고르는데 역시나 이건희를 몰라본 직원이 차를 리스로 하면 좋다는 조언을 해주고 직원은 신원조회를 위해 이건희의 정보를 삼성캐피탈에 의뢰했다는 웃긴 이야기도 있다. [[http://issuebox.tistory.com/121|#]] [[http://down.humoruniv.org//hwiparambbs/data/editor/pdswait/CID1428668912_4939_7db6480e9627157338356a3c5f050c6ca5ed09c1.jpg|#]][* 근데 계약금은 구매자가 돈이 있냐 없냐를 떠나서 앞으로 구매절차에 대한 담보적 성격이기 때문에 받는 게 옳다. 예를 들면 돈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차를 구매하기로 해서 영업사원이 이런저런 절차를 다 거쳐놨는데 갑자기 안 산다고 하면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손해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 손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서 받아두는 것이다.] * 내성적인 성격 탓에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던 습관이 있었는지 경영권을 이어받은 후에는 회사일 외에 대중매체나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편이었다. 주로 [[한남동]] 자택에서 집무를 보며 은둔과 칩거 등을 반복하였다. 또 국제적 기업의 회장답게(?) 3~4개월간 [[미국]], [[중국]], [[유럽]] 등으로 국외 출장도 잦았으며, 암 투병 경험에 [[샤르코-마리-투스 병|유전적으로 병]]이 있는 데다 폐까지 좋지 않아 요양 겸 [[하와이]], [[타이완]] 같은 곳으로도 오래 나갔다. * 옛부터 국내 [[기업]] 총수들은 대외적으로 모습을 노출하는 경우가 적다. 연예인처럼 언론지상에 자주 오르내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 접촉도 신문 매체의 경우 [[1990년대]] 중반까지는 자주 하였으나, 그 후에는 거의 없다. [[2003년]] [[동아일보]]에서 질문지를 기자가 미리 보내면 비서와 함께 구술을 통해 답변하는 식으로 [[http://woman.donga.com/List/3/all/12/129970/1|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다만, 뉴스에는 이따금씩 나온다. 본사 사옥으로 출근할 때나 해외로 출국할 때, 생일 파티나 만찬 같은 각종 모임이 있으면 행사장 앞에서 기자들 모아 놓고 스탠딩 인터뷰 잠깐 하는 정도다. * 막내 딸 [[이윤형]]이 2005년 미국에서 자살했다. 처음엔 교통사고라고 했지만 뉴욕시경의 발표에선 맨해튼 숙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은 나오지 않았지만 뉴욕에 유학간 이윤형이 그곳에서 남자친구와 사귀었고[* 장녀 [[이부진]]의 남편 임우재도 오랜 세월 동안 삼성물산 사원 출신으로 삼성그룹 봉사활동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혼 뒤 본인 스스로 삼성에스원 소속의 경호원이었으며 경호를 하다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까지 가게 됐었다고 진상을 밝힌 바 있다.]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주지 않아서 자살한 거라는 추측만 있다. 딸이 사망했지만 이건희는 뉴욕을 방문하지 않았고, 언니들인 이부진과 이서현이 와서 시신을 수습해 갔다고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9C%A4%ED%98%95|관련 자료]]. 그녀가 보유한 삼성 주식은 사후 장학재단에 들어갔다고 한다. *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과는 선대째부터 내려져 오는 인연으로 10살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경영 멘토로도 매우 절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김승연이 중대한 경영상 결정 사항이 있으면 이건희에게 찾아와 조언을 구하고[* [[한화생명|대한생명]] 인수에 나서기 전 김승연이 이건희를 찾아와서 "형님! 금융 사업의 노하우를 전수해주시면 형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잘 해보겠습니다"라고 조언을 구했다. 이후 이건희는 김승연에게 많은 조언을 전했고 결국 생명보험사 인수에 성공해 [[한화생명]]을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키우게 된다.] 반대로 당시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이었던 이재용을 김승연에게 보내 경영 수업을 받게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반대로 김승연 회장이 어린 나이로 회장직에 급작스레 올랐을땐 이병철 회장이 김승연 회장을 많이 도왔다고 한다.] 또한 이건희 본인이 별장으로 놀러 갔을때 한화 이글스가 전지훈련을 오자 선물을 보내기도 했으며, 승지원으로 김승연을 불러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덕분에 자식들도 나이차가 있음에도 절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병상에 누워 지내기 직전인 2014년엔 삼성그룹의 위기를 언급 하면서 삼성이 변해야 한다는 언급과 함께, 한화도 변화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하며,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의 빅딜 기반을 설계 했다고 한다.[* 이후엔 자손들인 이재용과 김동관이 서로 성사 시켰고, 서로에 대한 그간의 믿음 덕분에 기업 실사도 생략했다고 한다.] 이건희가 사망하자 이튿날 바로 조문하여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나누었으며, 언론에 "형님처럼 모시던 분"이라며 "가장 슬픈 날이다"라고 애통해하기도 했다. * 국내 재계에서 압도적인 영향력과 인지도를 갖춘 인물이니만큼 재벌의 대명사로도 쓰인다. "이건희 손자에게도 [[무상급식|공짜로 급식]]을 줘야 하느냐?" 등이 있다. * 이름이 [[니코니코니]]의 '니코니'와 운이 비슷해 패러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6P9ngHQoTk|영상]]. '''이건'''희에서 이건 = 이것은으로 치환되어, [[트위터]] 등에선 이건희가 '''이것은희'''로 자동 필터링이 된다. * 2017년, 외아들 이재용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어 있는 사실이 확인되어서 구속되었다. 이 때문에 미래전략실이 없어지게 되는 등, 이건희 일가에게 위기가 오기도 했지만 2018년 초에 이재용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일단 급한 불은 진화될 줄 알았는데, [[다스 실소유주 논란|또 뭔가가 터지기 직전]]이다. * 사후 이건희가 생전에 남겼다고 추정되는 편지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본인이 작성한 것인지 확인된 바가 없는 루머이므로 이 점을 유의하는 것이 좋다. 편지가 널리 확산되자 삼성 측에서 공식적으로 해당 편지는 1년 전부터 인터넷에 떠돌던 내용이라면서 부인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469&aid=0000547878|기사]] * 그의 사망 전에 그의 사망과 이재용의 승계에 대한 꿈을 미리 꾼 지식iN 이용자가 있다. [[https://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1&dirId=1060101&docId=371185398&qb=7J206rG07Z2sIOyCrOunnQ==&enc=utf8§ion=kin.ext&rank=3&search_sort=0&spq=1|네이버 지식iN 질문]] 정작 질문 작성자는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하다. 다만, 이건희는 투병한지 오래 되었고 한때 사망설까지 퍼질 만큼 건강이 좋지 못한 게 세간에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딱히 예지몽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 사후 이건희가 안치된 [[이목동]] 수원 선산은 원래 SK 소유의 산이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매입해 자신의 조부모를 모시면서 선영으로 지켜온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 [[라면]]을 비롯한 면류를 매우 좋아하였는데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던 날 저녁식사 메뉴도 국수였다. 이건희는 평소 당뇨가 심한데도 식단조절을 하지 않아 이재용 부회장의 걱정이 커던 듯 하다.[[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70210482378772|#]] 더불어 상당한 대식가였는데 98년 어느날 밤 늦게 이건희의 자택에 초대받았던 [[최규선]]의 회고에 따르면 그날 이건희는 자동차 사업과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의 투자문제 등을 이야기하며 옆에 놓여있던 케이크 한판을 다 먹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