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란/역사 (문단 편집) == 고대사([[이슬람]] 도래 이전) == * '''[[엘람]] 왕국''' (3000 BC? - 550 BC) * '''[[메디아]] 왕국''' (728 BC - 550 BC)[* 그외 여러 소국] * '''[[아케메네스 왕조]]''' (559 BC - 330 BC) * [[마케도니아 왕국]]의 정복 (334 BC - 330 BC, [[헬레니즘 제국]]) * [[셀레우코스 왕조]] (330 BC - 63 BC, 150 BC 이후 페르시아 상실) * '''[[파르티아|아르사케스 왕조]]'''(파르티아) (248 BC - 226) * '''[[사산 왕조]]''' (226 - 651)[* 에란샤 왕조라고도 한다] 이란 역사 최고의 리즈 시절 중 하나인 아케메네스 왕조는 멸망 직전까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녔던 국가'''였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통해서 당시 아직 생소하던 화폐제도가 중동 각지를 넘어 중앙아시아로 전해졌고 이는 인도의 화폐 제도로 이어졌다. 사산 왕조는 이란인들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한 국가이지만, 결코 아케메네스 왕조 수준의 전성기를 구가한 제국은 아니었다. 사산 왕조의 영토 중 중원에 해당하는 이란 고원은 생산성이 낮았고, 이라크 지역은 주민들 상당수가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이란인이 아니라 기독교나 마니교, 만다야교 등을 믿는 [[아시리아인]]인 것은 물론 동로마 제국이 정기적으로 침공해왔으며, 인더스 강 유역은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남하해온 유목민들이 맨날 쳐들어왔다. 오늘날 이란 민족주의자들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학문이 발달했으며 아랍인들이 크테시폰의 도서관 책을 다 불질러서 남는게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사산 왕조는 중세 유럽의 암흑시대와 비슷하게 고도로 군사화된 봉건 사회였고 인도나 중국 수준으로 과학 등 각종 학문이 구체적으로 발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페르시아의 학문이 중국이나 인도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올라간 시대는 바로 후술할 [[압바스 왕조]] 시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