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릉대전 (문단 편집) === 북벌 필요론? === 이릉대전은 유비의 복수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이며 필연적인 전쟁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촉이 북벌을 하기 위해서는 형주를 가지고 있었어야만 했다. 형주는 촉한의 국가전략이기도 했던 [[천하삼분지계#s-1.1|제갈량의 융중대]]에서 익주와 함께 동시 북벌로 위를 혼란스럽게 할 요충지였다. 형주 없이 파촉 지역에서 관중 평야로 나가려면 험난한 진령 산맥을 넘어야만 했다. 잔도를 이용해 관중 평야를 점령할 만큼 막대한 양의 군사, 식량, 냉병기 등을 수송하는 데 따를 제약은 매우 크며, 설령 양주방면으로 군을 돌린다 한들 관중평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소관을 넘거나 진령산맥의 우측을 타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 따라서 북벌을 하기 위해서는 형주에서 군을 가지고 있으면서, 연주와 예주를 지척에 두고 위의 주력군을 묶어두면서, 관중평야로 진격을 해야만 했었다. 유비는 바로 이러한 구도를 회복하기 위해 이릉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비용을 고려치 않고 일단은 공격로가 늘어나니 좋다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미 있는 요충지는 도움이 되지만, 그 요충지를 탈환해야 할 상황이라면 탈환 후의 이득이 손해를 상회하는지를 계산해야 한다. 실제로 발생했던 판도를 따져보면, 이릉대전으로 거둘 이득이 손해보다 컸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현실적으로 비용 문제를 계산해보면 진령 산맥이 험난한 만큼이나 익주에서 형주방면으로의 분출 역시 마찬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익주에서 형주평야까지는 수백KM에 달하는 보급로를 필요로 하며, 결과적으로 유비가 준비해 간 군조차 형주로 직접 나간 군은 전체 중 4만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공세에 나선 촉군은 되려 방어에 나선 오군보다 적은 수밖에 투입될 수 없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촉군 전체의 진군속도 둔화와 장기간에 걸친 수세적인 움직임을 야기하였다. 긴 원정동안 유비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효정에서 남군조차 100km가 넘게 떨어져 있었고, 유비군에는 수군과 기병 역시 의미있는 규모로 관측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만약 형주에서 대규모 회전이 발생하여도 유비가 육손이 이끄는 오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히리라는 가정은 어렵다. 고대전쟁사에서 대다수 병력의 사상은 패퇴 이후 전과확대 과정에서 발생하였는데, 수로를 낀 오군은 기동성면에서 촉군보다 훨씬 앞서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연히 실제 역사에서 육손은 신중한 태도로 일관하여 촉군이 지형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의 대규모 회전 자체를 회피하였다. 따라서 상기 논의에서 촉군이 오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둬 남군까지 진출할 수 있으리라는 숨겨진 가정 자체도 이미 비현실적이지만, 그보다 앞서 오군이 촉군과 순순히 싸워줄 가능성, 설사 오군이 촉군과 싸워주더라도 촉군이 오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가정부터가 실제 역사에서 발생하지 않았던, 대단히 비현실적인 가정임을 짚고 넘어갈 수 있다. 만약에 이 모든 가정이 희박한 확률로 촉에 유리한 방향으로 실현되어 육손의 오군이 상한다 하더라도, 삼국시대 다종다양한 공격을 받아낸 요충인 남군이 공세종말점에 달한 촉군에 떨어진다는 가정 역시도 어렵다. 촉군은 남군에 비해 훨씬 작은 거점인 이도마저 수 개월간 함락시키지 못했고 이 상태에서 보급로가 400KM를 넘는 원정은 이미 1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 상태에서 수만 단위 군이 진을 치고 있을 남군을 다시 몇 개월간 공성하며 얻어낼 수 있다는 가정은 실제 역사에서 반복되는 공성전의 높은 난이도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이릉대전 바로 직후 남군에서 주연은 전염병으로 싸울 여력이 되는 병사가 고작 5천인 상황에서 위군의 중핵인 장합과 하후상, 조진의 수만단위 공격을 6개월간 수비해냈는데, 수백킬로미터가 되는 보급선을 이미 일년 가까이 감당해와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촉군이 이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가정은 더이상 현실적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불가능한 가정을 기적적으로 극복하여 남군을 얻어내더라도, 이번에는 위군의 개입가능성이 문제가 된다. 외교적으로 조비를 설득하여 불간섭을 얻어낸 손권과 다르게 유비는 이 원정 내내 위군의 개입을 방지할 어떠한 의미있는 방법도 제시하지 못했다. 손권은 자신이 유비를 홀로 격파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여 명목상 상국에 해당하는 위군의 간섭을 배제하려 들었는데, 형주방면에서 오군이 크게 패퇴하고 자연스레 번국을 구원하기 위한 위국 개입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위군이 보급로인 자귀를 공격하는 경우 촉군으로선 보급이 끊긴 채 상한 군을 들고 본국과 유리된 형주에서 위군을 상대해야만 한다. 위와 같은 문제를 볼 때, 유비가 융중대 실현을 위해 이릉대전을 벌였다고 가정한들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평가는 어렵다. 또한 유비가 융중대의 실현을 위해서 이릉대전을 벌였다는 가설 자체에 사료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 융중대의 착안자인 제갈량 본인이 반대로 행동한다는 점 역시 이 가설을 주장할 수 없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현재로서는 근거와 설득력이 모두 부재하여 고려할 가치가 없는 가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