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릉대전 (문단 편집) === 촉군의 자귀 공격 === 221년 7월. 촉군이 공격을 시작한다. 이 당시 오군은 [[이이(삼국지)|이이]], [[유아]]를 무현과 자귀현에 주둔시켰고 육손은 상대적으로 후방인 이릉에서 이들을 감독하며 촉군의 침공에 대비하는 상태였다. 촉군의 선봉인 [[오반(삼국지)|오반]]과 [[풍습]]은 무현에서 이이 등을 격파하고 자귀에 주둔한다. 오주전의 묘사에 의하면 육손이 형주로 물러난 시점에서 오군의 형주방면 군이 보강되므로, 촉군의 전과는 오군의 형주방면 군이 본격적으로 보강되기 이전에 일어났다고 보인다. 손권은 육손에게 가절을 주고 대도독으로 임명하였고, 주연과 반장, 송겸과 한당, 서성과 선우단, 손환 등을 포함한 5만 군을 그에게 배속시켜 형주 방어전을 일임했다.[* 오주전] 한편 자귀에 도착한 촉군은 [[마량]]을 무릉 오계만이에게 내려보내 협력을 구하며 관직을 뿌려 '호응'을 얻어내지만, 이들이 이후 전쟁에서 유비 본대에 합류했다는 여타의 근거는 보이지 않으며, 남부의 오계만이는 보즐에게 틀어막혀 전선에 합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장기적으로 붕괴되었다. 영릉과 계양에서 [[습진(촉한)|습진]]이 반란을 일으키자 손권은 따로 [[보즐]]을 파견한다. 보즐은 습진을 [[반준]]과 함께 격파하고 익양에서 적을 대비하였으므로, 결국 남방에서 군사적 동맹을 얻으려는 유비의 시도는 대체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222년 1월이 될 때까지, 촉군은 형주와 익주를 나누는 지형적 분기점인 자귀에서 형주방면으로의 진출을 준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