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맹희 (문단 편집) == 이건희와의 소송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6199_24828_1943.jpg|width=100%]]}}} || || '''2015년 8월 20일 이맹희 영결식. [[김창성(기업인)|김창성]] 전방 회장의 조사 낭독.''' ||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이후 동생인 [[이건희]]가 삼성그룹을 맡고 이병철의 재산상속 문제 등도 얽히면서 두 사람은 말년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것은 결국 [[삼성]]과 [[CJ그룹]]의 갈등으로 번져갔으며 한때 [[삼성전자]] 전무였던 사람의 CJ그룹 이재현 회장 [[미행]]설이 나돌면서 갈등의 정점을 찍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 결심공판에서 이맹희가 재판부에 제출한 A4 용지 5장 분량의 편지를 보면 미행 내용 등이 등장한다.] 이에 제대로 빈정이 상했는지 이건희는 '''형제들의 집에 CCTV까지 설치해서 서로를 감시하고''', 함께 지내던 호암 제사조차도 완전히 따로 지내게 되었다. 2012년 [[이병철]] 추모식 때는 삼성이 CJ 관계자들의 방문을 불허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맹희는 이건희가 상속 과정에서 다른 형제들의 재산을 가로챈 혐의가 있다며[* 이건희가 1990년대 이후 삼성 편법 상속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이병철의 유산은 확실히 이맹희에게도 그 지분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애시당초 [[이재용]]에게 삼성을 물려주면서 상속세를 안내려고 이건희가 머리를 굴렸고, 검찰 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건희의 비자금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든 잡아때려고 이병철의 유산으로 조성되었다 거짓말을 했으니 당연히 이맹희도 자기도 모르는 이병철의 유산이 발견되었으니, 그 유산에 대한 지분을 요청할 수 있었다.] 2010년대 들어 상속 문제 관련 소송을 걸게 되는데, 이에 대해 한 언론에서는 이건희의 정권 무시적(?) 발언[* 2011년 3월 11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하여 "낙제점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당연히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는 반발했다. 참고로 이건희 회장은 1995년에 "한국의 기업은 2류, 관료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다. 정부의 행정규제가 풀린 게 하나도 없으며 그로 인해 경제가 발목 잡혔다."고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YS의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투자 승인보류.(...) 결국 청와대 가서 GG치고 승인 받았다.]에 분노한 정권이 이건희를 대놓고 어쩌지는 못하고 대신 CJ에 소송을 권유하여 '''일을 벌였다'''는 후일담을 보도하기도 했다. 물론 진짜인지는 미지수. 이런 이맹희의 주장에 대해 2012년 소송 당시 이건희는 삼성이 너무 크니 욕심내는 것이라며 출근길 기자들의 질문에 기분 나쁘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30년 전에 자신을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청와대에 고발까지 했다가 우리 집에서 퇴출당한 양반"[* 다만 상기했듯 이맹희는 죽을 때까지 투서 사건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부정했다.], "자기 입으로는 장손이다, 장남이다 그러지만 이미 아버지께서 맹희는 완전히 내 자식 아니다라고 못 박았으며, 지금도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92&aid=0001999697|#]][[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7&aid=0000192469|#]][[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5&aid=0000226464|#]][* 참고로 여기서 이맹희는 장남은 맞지만 [[장손]]은 아니다. 이병철은 차남이고 위에 형 이병각(이건희의 큰아버지) 1명이 있으며 이병각의 장남이자 이건희의 사촌형인 이동희가 장손이다. (거기에 이동희는 1924년생이므로 이건희의 큰 누나이자 이병철의 첫째 맏자녀인 이인희 보다도 사촌오빠이다.) 이동희는 숙모인 [[박두을]]보다 먼저 사망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장손]] 문서를 참고.] 이에 아무리 그래도 [[형]]한테 발언이 너무 심한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어서인지 이후 사적인 일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소송 싸움은 1, 2심 모두 이건희 측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421&aid=0000153093|#]] 이에 대해 당시 법원은 이맹희와 그 외 형제들의 지분은 인정하면서도 10년의 제척기간(법률적 권리 행사 기간)이 경과되어 효력을 잃었다는 식으로 이건희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하는데, 사실 이맹희 측이 알게 된 시점이 이미 10년이 지난 시점이라 좀 억울한 부분은 있을듯하다. 물론 이병철 유산이라는 것의 형태 자체가 진짜 있는건지 아니면 이건희가 비자금 핑계를 대는 과정에서 나온 거짓말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이런 판결에 대해 당시엔 삼성이 법조계에 깔아둔 [[삼성장학생]] 출신 [[판사]]가 장난질 친 것이란 [[음모론]]이 일기도 했으나 [[진실은 저 너머에]].. 2심 이후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이맹희는 [[유산]]보다 [[형제]]간 [[우애]]가 더 중요하다며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미 둘 다 노령에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일종의 [[인생무상]]을 느낀 듯 하다. 애초에 소송도 이건희 말마따나 삼성이 워낙 컸으니 자기 자식들 기업에 좀 더 보태주려고 한 것일지도.. 진실이 무엇이건 결국 소송을 마무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5년 이맹희는 [[폐암]]으로 사망하고, 이건희 역시 2014년부터 이미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실 신세를 지다가 2020년 [[신부전]]으로 사망한다. 소송 마무리 직후 양쪽의 분위기가 좀 누그러지고 [[화해]] 운운하는 말이 관계자들 입에서 나오기도 했으나 결국 살아생전 직접적인 화해는 하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