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명박/재판/제1심 (문단 편집) == 2018년 8월 17일 == 2018년 8월 17일 공판기일에서, [[이명박]] 측은 [[이팔성]] 관련 [[사전수뢰죄|뇌물수수]] 혐의 관련 반박을 마무리했다. [[이명박]] 측은 ▲[[이팔성]]을 거쳐 성동조선해양의 자금을 받은 일은 [[정치자금법]] 위반일지는 몰라도 [[사전수뢰죄|뇌물수수]]가 될 수는 없고 ▲[[이팔성]]에게 돈을 받고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게 한 적이 없으며 ▲[[이명박]]은 일면식도 없는 [[전광우(1949)|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을 당시 임명하는 등 분야별 전문가를 임명했다고 반박했다. [[이명박]]도 직접 반박에 나섰다. 다음은 [[이명박]]의 이날 반박 전문이다. {{{#!folding [ 이명박의 직접 반박 펼치기/접기 ] >재판장님, 잠깐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이번 재판을 받으면서 검찰의 진술이나 여러 가지를 접하면서 [[이팔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팔성]] 씨의 성격은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지만….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누가 ([[이팔성]]을) 추천해서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 상황을 보면 "[[이팔성|본인]]이 자발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무자들의 죄책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이팔성]]은 [[서울시향]]에 들어오기 전에는 저와 교류가 없었습니다. [[서울시향]]에 대해서도, 저에게는 "([[이팔성]]의) 성격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면하면 자꾸 고개를 돌리고 눈길을 피한다"는 인식이 있었고요. > >[[2007년 대선|선거]]를 할 때, 금융인들이 금융정책을 건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명박/재판|여기 상황]]을 놓고 보니까, 저는 "나를 둘러싼 선거기간에 ([[이팔성]]이) 실무자들에게 전략적으로 접촉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팔성]]은 한 번도 제 선거운동을 하면서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고, [[서울시장]]을 했을 때, 뭐랄까, "오픈된 사람이 아니라 눈을 맞추지 않는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팔성]]은) 보좌관들을 매수하는 등 나를 만나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은 사실 같습니다. 그 사람들도 나를 만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김희중(정치인)|김희중]]은 진술을 이렇게 했지만, 같이 있는 동안 "누구를 어디에 했으면 좋겠다"는 등 인사 문제를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비서관|그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팔성]]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접근했겠지만…. >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이팔성|이분]]은 내가 퇴임한 다음 4년 한 번도 나타난 일이 없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금융위원장]]을 2번 했다면[* [[이팔성]]은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다. [[이명박]]이 잘못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인사라도 했을 텐데 한 번도 온 적이 없습니다. 저와 개인적으로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금 마음이 가장 그런 이유는, "선거운동 때에도 얼굴을 안 비치던 사람이 당선되니까 만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 >특히 "([[이팔성]]과) 2008년 1~2월, 특히 2월 23일에 만났다"는 말이 나옵니다. 10~15년 전 일이지만, 5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을 하면서 겪은 몇 가지 상황은 기억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취임식에 세계 정상 7명이 참석했고, 각 대표들도 30명 가깝게 왔습니다. 그런 큰 행사를 앞두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무슨 내용을 말해야 합니까?" 등 각국 정상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내용을 생각했다가, 2월 중순부터는 [[류우익]] 등 교수를 중심으로 원고를 쓰는 팀원들과 거의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원고 하나 하나 한 줄 한 줄, 이것은 국민에게 주는 것도 있지만, 국격을 높이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했기 때문입니다. > >2월 25일 취임을 앞두고, 2월 20일부터는 외부 사람과는 거의 단절했습니다. 22일과 23일에는 원고를 쓰는 사람들·방송실 사람들을 불러 리허설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거의 보냈습니다. 해단식도 23~24일로 앞당겼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3일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방송 리허설에 들어갔습니다. 밤늦게까지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겨우 밤 늦게 23일 아침에 '한 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고 해서 진행해 끝낸 뒤, 낮에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30분 간을 앉아서 자리다툼하는 사람들과 앉았습니다. >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처음 출발하면, "나중에 가서 어떻게 되더라도 깨끗한 정권·공정한 인사를 하겠다"는 말 등이 다 나옵니다. 취임사에도 그 얘기가 나옵니다. 취임사를 쓰고 있는 입장에서, [[이팔성]]이라는 사람이 왔다는 것인데, 저는 "[[이팔성]]은 30분 간 말할 위인도 못 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팔성]]이 자리 3~4개와 국회의원을 말했다면, 5년 동안 뭐…. 나를 아는 사람은 믿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25일에 정권이 출발하는데, 23일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나를 궁지에 몰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팔성]]이 어떻게 검찰에) 그런 거짓말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나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진술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너무 얼토당토않고…. 중요한 것은 한 자리도 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 >저는 "전문직은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융위원장|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던 전광우 씨는 저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입니다. 정말 "전문가가 들어와서 제대로 해야 한다"고 해서 전광우를 추천 받아 적격이라고 생각했고, "일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전광우 씨가 추천한 사람 중 하나가 [[KDB산업은행|KDB산업은행장]][* 민유성]입니다. 아무튼 전부 선거와 관련 없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 >[[변호인]]은 (비망록과 관련된 [[이팔성]]의) [[휴대전화|전화기]]를 찾고 있지만,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일이 없는데 뭘 찾느냐? 찾으면 검찰이 찾는 거지 왜 당신이 찾느냐"고 말했습니다. 전화하고 말 것도 없고, 저는 지금 심정이…. 차라리 "[[이팔성]] 씨를 불러서 [[거짓말탐지기]]를 해서 확인을 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갖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충분히 말했지만, 나와 직접 관련이 있어 직접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검찰은 오후에 이르러 최등규·[[김소남]]·손병문·지광스님과의 뇌물거래 의혹에 대한 증거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최등규와의 뇌물거래 의혹에 대해 ▲최등규는 "[[최시중(1937)|최시중]]·[[김백준]] 중 1명이 대선자금을 요구해서 '사업상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5억 원을 줬다"고 진술했고 ▲"[[이명박]]·[[최시중(1937)|최시중]]·[[김백준]]과 골프를 치면서 [[이명박]]에게 대보그룹의 골프장 증설사업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으며 ▲대보그룹은 실제로 [[4대강 사업|4대강 관련 공사]]·[[휴게소]]와 [[주유소]] 낙찰·국유지 매입 후 [[골프장]] 증설 등 이익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소남]]과의 뇌물거래 의혹에 대해서는 ▲[[김소남]]은 4억 원을 준 이유로 "[[아파트]]를 크게 짓고 싶었고, [[국회의원]]도 되고 싶었다"는 것을 들었고 ▲[[김백준]]은 "[[김소남]]이 [[제18대 총선]]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 7번을 받은 뒤 '떡이 든 봉투'로 위장한 현금 2억 원을 [[청와대]]로 들고 왔다"고 진술했으며 ▲[[이방호]]·[[박재완]]은 "[[김소남]]은 7번을 주기엔 다소 떨어지는 사람이었지만, [[이명박]]의 지시로 공천을 줬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손병문과의 뇌물거래 의혹과 관련해서는 ▲손병문은 [[송정호]] 전 [[법무부장관]]·길종섭 [[고려대]] 석좌교수를 통해 [[김백준]]에게 후원금 명목으로 2억 원을 줬고 ▲장남은 [[김백준]]·길종섭의 주선으로 [[대통령비서실|대통령실]]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으며 ▲차남의 결혼식에는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명의의 화환이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광스님과의 뇌물거래 의혹에 대해서는 ▲지광스님은 [[김백준]]의 요구에 따라 3억 원을 줬고 ▲[[이명박]]은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당선 뒤 지광스님에게 직접 전화해서 짧게 감사인사를 남겼으며 ▲지광스님의 사찰 능인신원은 [[이명박]]의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재임 중 불교대학 설립승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