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삼평 (문단 편집) === 일본의 신이 되다 === 1656년 아리타 주민들은 니리무라(二里村)의 오자토(大里)에 있는 하치만궁의 신체를 받아서 오타루(大樽) 언덕에 아리타야마소뵤하치만궁(有田山宗廟八幡宮)을 건립할 때 이삼평과 나오시게를 합사하여 모셨다. 이 신사는 1828년 대화재로 인해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메이지기에 접어들어 [[스에야마 신사]](陶山神社)로 이름을 고치고 현재의 위치로 옮긴다. 1917년에는 아리타 시내가 보이는 렌게이시산(蓮花石山) 정상에 '도조 이삼평비'를 세운다. 조선인의 기념을 일본 신을 모신 신사 위에 세운다는 것에 대해 반발이 있었으나, 구 나베시마의 후예들이 송덕회를 조직하고 명예총재로 거물급 정치인 오쿠마 시게노부를 추대하자 일사천리로 건립이 진행되었다. 또한 이삼평이 백토를 발견한 곳에는 이삼평발견지자광지(李參平發見之磁鑛地)라는 대형 기념비가 세워졌고, 이시바신사(石場神社)의 경내에 이삼평상이 안치되었다. 이삼평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자 히에코바(裨古場)의 보은사 묘지에 가묘가 건립되었다.[* 이삼평의 무덤은 훗날 텐쿠타니가 있는 시라카와(白川)에서 발견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