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은(기업인) (문단 편집) == [[다스 실소유주 논란]] == 1933년에 태어나, [[경상북도]] [[포항시]]의 [[동지고등학교|동지상고]]를 졸업하였다는 이력 외에 젊었을 때 대학 진학 여부나 직업 등 행적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이후 중년이 된 40대 시절인 70년대부터 경기도 이천에서 목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제주도 서귀포에서 1800평 규모의 감귤 농장을 하기도 하는 등 농업쪽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7년 대부기공([[DAS]][* 훗날 대부기공을 다스(DAS)로 이름을 바꾼다.])의 경영자가 되면서 이 직업을 30년간 쭉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의 감귤 농장 땅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때까지도 팔지 않고[* 땅값도 엄청나게 올라서, 1977년 당시 땅을 살때는 약 1800만원에 샀는데 30년 뒤인 2007~2008년에는 거의 30배가 되어 5억이 넘는 땅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땅값이 오른 이유는 근처에 서귀포 중문단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상은이 가지고 있었으며, 농사도 이상은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농장관리인 박모 씨에게 계속 관리비 월급을 50만원씩 주면서 20년 넘게 농사를 시켰다고 하는데, 2000년대초부터 과수원을 가꾸는 일은 그만두게 하고 그냥 땅 관리만 맡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관리비 월급이 '[[다스 실소유주 논란]]'을 증폭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농장 관리비를 농장 시작할때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거의 20년동안 이상은 본인이 안 주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언급이 없으니 그때부터 이상은 본인이 준 걸로 보인다.], 친동생인 [[이상득]]이 내줬다고 한다.[* 이 논란이 나오던 때가 이명박의 대통령 후보 시절인데, 당시 국회 부의장 이상득의 비서실장이던 [[장다사로]]는 기자의 질문에 '이상득 부의장님의 형님(이상은)이 당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어서 더 힘드실 때였다고 한다. 그런 형님이 힘들때는 동생이 돕는게 우애라서 그러신 것이다.'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부친 이충우씨는 1981년에 작고했다. 따라서 부친 생존 시에는 부친 부양비 차원에서 돈을 주었더라도, 부친 사망 후 무려 15년이나 돈을 계속 준 것은 납득하기 힘든 설명이다. 사실상 이상득이 친형의 명의로 차명재산을 만든 게 아닌가 의심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장다사로는 이상득의 심복으로, 이상득이 구속된 이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기획관을 지내는 등 이명박과도 관계가 깊다.] 그러나 [[BBK 주가조작 사건]]에서 알려졌다시피 이상은은 90년대는 커녕 80년대 중반인 1985년 사돈(이명박의 처남)인 김재정과 함께 도곡동에 1500평이 넘는 땅을 14억6천만원[* 그리고 이후 이 땅의 일부는 10여년 뒤 팔려서 BBK 투자금으로 넘어간다.]에 샀었다. 50만원도 본인이 안 내고''' 동생이 내 주던 판국에 그런 엄청난 금액의 땅을 샀다는 것에서 의혹이 짙으며 그런 상황에 몇년 안 되어 대부기공(다스)까지 김재정과 세웠다는 데서 '''땅 사고 회사 세울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주진우(1973)|주진우]] 기자가 이상은의 운전기사였던 김종백을 취재한 바로는 '이명박 전대통령 못지 않은 짠돌이'라고 하는데, 운전기사 김종백과 식당에 가서 국밥 한 그릇만을 시키고 공기밥을 추가 한 다음 운전기사보고는 공기밥만 줬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김종백은 서운함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외에 2만원짜리 침술원에 가서 돈없는 노인인 척 침술사를 속이고 수년간 1만원에 침을 맞기도 하는 등[* 침술사가 몇년 뒤에 동네 소문을 듣고 다스의 회장이라는걸 알게 되어, 회장님은 돈도 있으신 분인데 원래 가격을 내시라고 요구해서 다시 한동안 2만원을 냈다고 한다. 이후에는 안 간 듯.] 뭔가 수백억대의 기업인이자 자산가 답지 않은 상당히 천박한 일화들이 다스 이슈 당시 많은 언론의 탐사취재에 의해 보도되었다. 조선일보가 과거에 보도한 바로는 이명박이 가장 어려워하는 형이라, 대통령에 나갈때 이상은에게 '형님 재산을 좀 공개해 주셔야겠다'고 하자 "니 대통령 나가는데 왜 내 재산을 공개해!"라면서 신경질을 내서, 깨갱했다고 하는데 상술된 경제적 상황을 보면 그게 진짜일지 진실은 알 수 없다. 게다가 김종백씨가 밝힌 바로는 이상은이 [[바지사장|바지회장]]이었기 때문에 이명박의 부하이자 이상은의 아들뻘인 당시 다스의 사장 김성우에게 심한 모욕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했으니, 조선일보의 보도는 믿기 어렵다. 당시 한달에 다스 법인카드 400만원 이하를 술값으로 쓰도록 사장인 김성우가 회장인 이상은에게 요구하여 합의했는데, 이상은이 특정달에 400만원을 넘게 쓰자, 사장실로 회장인 이상은을 불러 [[하극상|면전에다가 카드명세서를 집어던지며]] '400만원 넘게 쓰지 말라고 했잖냐'며 크게 소리를 질렀고, 이상은의 운전기사 겸 실질비서였던 김종백도 이상은을 따라갔다가 이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근데 이상은은 별말도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김종백이 처음 이상은 운전기사로 고용되자마자 김성우가 부모뻘 회장인 이상은을 직원들 다 보는데서 개무시하길래 둘만 있을때 '그래도 회장님인데 사장님이 너무하시는거 아니냐'고 했다가, '니까짓게 뭘 안다고 까부냐'며 심한 욕설도 모자라 뺨까지 맞을뻔 했다고 한다. 다행히 김성우가 쌍욕만 계속 하고 때리려던 건 참아서 맞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명박의 차명재산 의혹이 제기된 회사인, 자동차 부품 회사 다스(DAS)의 회장이다. 2010년 전까지 DAS의 지분 대다수를 [[이명박]]의 처남인 김재정과 함께 투톱급으로 가지고 있었고, 이상은은 2대주주였으나[* 원래 김재정이 2% 이상 더 가지고 있어서 김재정이 최대 주주였다.], 2010년 2월 김재정의 사망 후 그의 부인 권영미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상속세 문제로 김재정의 부인 지분이 이상은보다 상당히 적게 되어 이상은이 최대주주로 등극하였고[* 김재정의 주식은 후술하듯이 물납처리가 되어 일부는 기획재정부가 가져갔으며 김재정의 부인인 권영미가 일부 지분을 감자하였다. 현재 최대주주는 이상은, 2대주주가 권영미이다.], 현재 홀로 40% 이상의 압도적인 지분을 가지고 있다. 김재정의 부인에게 가지 않은 나머지 지분은 [[상속세]]를 주식으로 납부하고[* 이를 '물납'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금물납은 보통 부동산으로 하게 되어 있는데, 주식증권으로 하는 방식은 정부에 허가받아 하기가 실제로는 매우 까다로운 상속세 납부방법이다. 게다가 가치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는 주식의 특성상 주는쪽이나 받는쪽이나 꺼림칙하기 마련이라 실제로 상속세로 납부하는 케이스는 드물다.], 재단에 기부도 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기획재정부]]와 [[청계재단]]에게 넘어갔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경매로 팔아서 현금화하여 국고에 넣을 예정이었으나, 가격문제로 수년동안 전혀 안 팔리고 있다. 간단히 말해 김재정의 상속세로 국고에 들어가야 할 돈을 정부가 못 구해서 못 넣고 있다. 사실 김재정 소유 부동산들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거의 다 근저당이나 채무문제가, 그것도 억대 땅에 몇백만 원어치씩 걸려 있어서 부동산으로 상속세 물납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청계재단은 참고로 이명박이 출자하여 만든 재단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