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소라(가수) (문단 편집) === [[이소라의 프로포즈]] === 아마 이소라의 팬들이라면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KBS 2TV]]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인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1996년]] [[10월 19일]]부터 [[2002년]] [[3월 30일]]까지 진행했다. 후속타는 "[[윤도현의 러브레터]]". [[언니네 이발관]]의 멤버인 이석원의 증언에 따르면 목이 안 좋은 상태에서 립싱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대 아래에 가습기까지 켜 가면서 꿋꿋히 라이브를 고집했다고 한다. 가수 [[김경호]]는 평범한 신인이었던 당시 '이소라의 프로포즈' 신인 가수 소개 코너에서의 무대 한 번을 통해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 당시 꾸민 무대는 Skidrow의 'Youth Gone Wild'. 이때 PD는 무난하게 대중들에게 알려져있는 [[비틀즈]]의 [[Let It Be(노래)|let it be]]를 하라고 권유했지만 김경호가 이 곡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무대에 섰으며 이 무대 이후는 그는 대박을 치게 됐다.] 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바뀌어 있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직접 방청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그녀가 립싱크를 많이 하는 가수나 아이돌 가수들이 나오면 강제 라이브를 하라고 한다든가 본인 스스로 방송 펑크를 냈을 정도로 립싱크 가수들을 무지 싫어했다. 특히 [[god(아이돌)|god]]가 나왔던 편에서는 갑자기 방송 펑크를 내서 급하게 미국에서 돌아온 [[박진영]]이 스페셜 MC로 진행했을 정도로 당시에 말이 많았다. 이때 그녀는 건강 문제라고 해명했지만, 자정에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나와서 god에게 반감을 가진 게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렸다. [[컨츄리꼬꼬]]와도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한데, 당시 립싱크를 자주 했던 [[컨츄리꼬꼬]]와 '이소라의 프로포즈'와의 컨셉 자체가 맞지 않다면서 3번 섭외 중 2번을 펑크 냈다고 하며 그 바람에 컨츄리꼬꼬가 진행과 무대를 병행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한 번도 그룹 이름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참고로 방송을 하면서 그녀가 스스로 방송 펑크를 낸 건 총 5번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방송에 대한 이소라의 자부심은 대단했는데, 한 에피소드로 [[박완규]]가 출연했을 때 박완규가 브릿지 염색을 했다는 이유로 국장이 녹화 재촬영을 요구했는데,[* 박완규는 PD에게 불려가서 이야기를 들은 뒤 화나서 '''"에이 시--발--, 어디서 반말이야!"'''라고 화를 냈었고, 그 당시 부활의 기획사 '''대표'''가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얘가 아직 가요계 이것도 모르고, 우리 태원이도 지금 얘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생략)'''"'''라고 거의 무릎 꿇듯이 사죄를 했다. 김태원이 인기 밴드 부활의 리더이긴 했지만 본인도 사고를 많이친 입장이어서 PD 앞에선 약자였다. 다만 당시 PD는 오히려 박완규의 시원시원한 태도를 보고 마음에 들어했으며, 윗선(국장)에서 내린 결정이니 자네가 한번 참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소라는 복장도 좋았고 노래도 잘했는데 왜 다시 찍어야 하냐고 먼저 집에 가버렸다고 한다. 덕분에 원본 그대로 방송이 나갔고, 그게 바로 전설의 론니나잇 첫방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작진하고 많은 갈등을 빚어왔으며 그 갈등이 심했는지 그녀가 종영되기 전에 본인 스스로 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결국 그 발언이 현실이 되었고 그 뒤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KBS joy에서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로 부활했으며 2011년 4월 26일부터 2012년 8월 7일까지 매주 화요일 밤 12시 10분에 방영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