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순신/평가 (문단 편집) == 북한에서 == 이북에서는 두음법칙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리순신" 이라 쓰인다. >리순신 장군은 량반 출신으로 봉건 지배 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봉건국가를 위해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6.25 전쟁|조국 해방 전쟁]] 시기에 사회주의 조국을 위하여 자기의 가슴으로 적 화구를 막아 부대의 직격로를 열어놓은 [[김일성|애국자]]들과 비길 수 없다.[[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89|출처]] 요약하자면 인민을 위해 싸우지 않고 임금에게 충성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현실은 그 반대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북한이 자신들의 체재에 알맞게 입맛대로 왜곡한 셈이다. [[1967년]]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도''' 이순신은 명장으로 큰 우대를 받고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지만 1967년 김일성 우상화가 시작되면서 김일성을 능가하는 영웅이 있다는 것은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 아니었으므로 이순신에 대한 폄하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온 게 상기한 여러 망언들이다. 그럼에도 북한에선 이순신이 희대의 애국자요, 천재적 지략가로 세계 해전사에 이름을 떨친 명장이라는 것을 부인하진 않고 있다. 다만 김일성만 못하다고 할 뿐이다.[[https://m.blog.naver.com/minjune98/221264309136|김일성의 이순신 평가]] 아래는 1967년 이전 이순신에 대한 북한의 평가이다. >임진 조국 전쟁을 말할 때 우리는 이 전쟁에서의 리순신 장군의 역할의 평가에 대하여 반드시 언급하여야 하겠다. 당시 최대의 애국자의 한 사람이었으며 천재적인 군사 지휘관인 리순신 장군의 임진 조국 전쟁에 있어서의 위대성은 그가 임진 전쟁을 조국 보위의 인민 전쟁으로 인식하고 인민에 의지하고 인민의 역량을 발휘시키고 인민의 역량을 굳게 결집하여 적을 대항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구체적 사실을 보여주는 바와 같이 임진 조국 전쟁 과정에서 리순신 장군의 활동을 그 시대에 있어서 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전 동양에 있어서 가장 열렬한 애국자이며 천재적인 군사 전략가의 한 사람이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전쟁에 있어서 리순신 장군의 투쟁은 애국 인민의 산 표본으로 되었으며 그가 군사 예술의 우수한 정수로 되었으며 그의 전략 전술은 애국 투쟁의 영광스런 상징으로 되였다. >리청원, 《임진 조국 전쟁 1592년 ~ 1598년》 (1955년) >우리는 위대한 애국자이며 탁월한 전략 전술가였던 리순신 장군에 의하여 우리 수군 연합 함대가 지휘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순신 장군은 전쟁 전부터 왜적이 침입할 것을 예견하고 함선 건조, 함선 수리 특히 유명한 거북선의 건조, 무기의 제작, 군량 준비, 병사들의 훈련 등 모든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백방으로 군비를 강화하였다. 장군은 또한 탁월한 전략가로서 적아간의 력량 관계를 정확히 타산하고 이에 립각하여 격멸전을 용감하고 대담하게 전개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군은 전반적 전국에 대한 전략적 견지에서 이를 분석하고 여기서 제기되는 과업을 능숙하게 해결하는 방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하루 속히 원쑤들을 우리 강토로부터 몰아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당시 누구보다도 깊이 연구하였으며 또한 잘 알고 시기적절한 대책을 취하곤 했다. 이와 같은 리순신 장군을 자기들의 지휘관으로 모신 우리 수군 병사들은 장군을 무한히 존경하고 사랑하였으며 전체가 단결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원쑤들을 격멸하는데 언제 어디서든지 자기 생명을 서슴없이 바치였다. 제 아무리 우수한 무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리순신 장군과 같은 위대한 지휘관을 가지지 못하였을 때에는 이와 같은 승리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길성, 《임진 조국 전쟁 시기 우리 수군의 투쟁》 이렇게 이순신을 고평가하던 북한 학자들은 유물 사관을 신봉하였단 이유로 반종파분자로 몰려 대거 숙청당했다. 북한이 이순신에 대해 비교적 박한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그가 우상화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만 해도 당장 북한 땅이 배경인 작품인 《[[심청전]]》마저 폄하하고 [[을지문덕]], [[강감찬]] 등 모든 위인으로 평가받던 인물의 계급적 한계성이 강조되었다. 오직 [[동학농민운동]] 같은 인민의 항거만 강조되고 왕조 자체는 모조리 폄하한다. 고려도 신라처럼 외세는 끌어들이지 않았지만 다른 것을 모조리 폄하하고 있다. 심지어 [[고조선]]조차 이 당시에는 지배계급이 다수를 억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평가한다. 지방을 강조하는 것은 '지방주의'라고 하여 초헌법적 원칙인 10대 원칙 등에서 철저히 금기시되는 내용이다.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72784/1/09.pdf|#]] 그나마 민족에 대한 평가가 좋아진 것은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으로 독자성을 추구해야 했던 1980년대 후반, [[단군릉]]을 만들며 고조선의 역사성이 다시 강조되는 것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다. 이순신은 그 이후 왕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시 활약에 대한 언급이 늘어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001/2005/09/11/kp1_2050911l2257.jpg|width=100%]]}}} || [[6.25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북한]]이 공을 세운 해군에게 주기 위해 만든 훈장 중에 이순신 훈장이라는 것도 있다. 북한에서도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처음에는 별로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너무 이순신만 띄워주고 그 밑의 인민대중들의 투쟁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고 말하여 다른 전근대 위인들처럼 김일성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즉각 평가절하되었다.[* 물론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6.25 전쟁]]을 일으켜 민족에게 동족상잔의 상처와 기나긴 고통을 남기고 3대에 걸친 세습 철권 통치로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북한을 말그대로 생지옥으로 만들고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급급한 극악무도한 독재자인 김씨 일가 따위가 감히 충무공보다 훌륭하다고 지껄이는 것은 '''그 자체로 충무공에 대한 모독'''이다.] 여담으로 한홍구가 말했던 《'''거짓된 신화로의 이순신'''》이라는 것의 예로 든 것이 북한의 저런 모습을 든 것이다. 다만 2014년 들어서는 외세 배격을 목적으로 이순신과 거북선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남한에서 제작된 이순신 관련 드라마와 영화가 북한으로 전해지고 주민들에게 유포되었다. 탈북자들에 의하면 북한내 최고위층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5월 [[풍계리 핵실험장]]에 간 남측 기자들의 이순신을 영웅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에 북측 관계자가 '우리 민족을 구한 영웅인데 우리가 그걸 모르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52617297674635&cast=1&STAND=MT_P|#]]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