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순신/평가 (문단 편집) === 독재 정권 관련 === 일설에는 이순신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이 국민들을 단합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악용된 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고 아예 이순신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허구의 가공인물인데 박정희가 날조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거짓말도 인터넷 게시판에 버젓이 돌아다닌다...]. 시기적으로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띄워진 위인이라는 요지이다. 다만, 이순신은 조선시대부터 저명했으며 교과서에 이미 등장했던 실제 유명했던 위인이었기 때문에, 유명한 것과 별개로 박정희 정권의 등장과 동시에 '이순신'이 문화 산업 안에서 캐릭터로서 주인공으로서 다뤄지기 시작한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1962년 무용극 성웅 이순신이란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물론 역사적으로 [[파시즘]] 성향의 국가나 세력이 과거의 [[전쟁 영웅]]이나 위인을 [[프로파간다]]로 악용한 사례는 상당히 흔하고,[* 다른 예로 잔 다르크는 페미니스트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대의 인물인데 페미니즘 세력에서 페미니즘의 심볼로 이용하는 모습도 나오고 있다.] 한국 역시 그러한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심지어 이순신 장군이 무명은 아니어도 생각만큼 유명하진 않았는데, 과거 군사 정권이 이순신을 띄우는 프로파간다로 유명해졌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옳지 못한 주장이다. 물론 [[멸사봉공]]이란 문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보면 전체주의적 요소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멸사봉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 길들이기에 자주 사용하면서 등장한 단어로써 멸사봉공이라는 단어에서의 '공'이란 다름아닌 '''일본 제국주의 전쟁'''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일본 측 위키피디아 설명에서는 <[[전국책]]>의 진책에서 따온 단어로 패전 이전까지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충군애국(忠君愛國)의 교육으로써 도입됐으며, 일본 기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는 기업 내 (마치 봉건 시대 주군과 가신 사이의 관계나 다름없는) 상하 관계를 지칭하는데 쓰이기도 하고, '''과도하게 강조될 경우 자신의 희생이 요구되는 [[전체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출처 : 이윤옥 저 <오염된 국어사전> 27쪽 ~ 32쪽 및 [[https://ja.wikipedia.org/wiki/滅私奉公|일본어 위키피디아 '멸사봉공' 설명]]) 그러나 당시는 지금 같은 천부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백성]][* 이 단어 자체가 어떤 뜻을 갖는지 알고 나면 이해가 더 쉽다. [[백성|해당 문서 참조]]]은 왕을 섬기는 게 당연한 것이고, 왕과 국가[* 사실 이때는 국가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다. 적어도 현대인인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아니다.]를 구분할 줄도 몰랐다. 같은 나라 안에서 왕이 바뀐다면 몰라도 외세에 의해 왕이 살해 당한다면 그건 나라가 망했음을 의미한 게 그 시절이었다. 그 둘이 나뉘게 된 것은, 즉 ''''시민'이란 개념이 생긴 건 프랑스 혁명 이후다.''' 당연히 파시즘이란 개념도 민주주의의 대척점으로 생겨난 것. 따라서 이순신의 언행을 두고 전체주의 운운하는 건 온당치 않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순신은 파시스트였던 게 아니라 당시 충효사상을 강조하던 유교 사회에 태어나 살았던 인물일 뿐이고,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 자체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식의 논리는 과거의 역사적 인물을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지 않고 '''현대의 사상과 관점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은 당시 시대를 감안해도 충분히 훌륭한 인물이었다. [[지장]], [[용장]], [[명장]]일 뿐만 아니라 [[덕장]]의 면목도 충분히 갖췄다. 이순신과 대비되는 원균의 경우 수급을 얻겠다고 죄 없는 백성들 목까지 베었다는 것이나 이순신이 죽자 남도 백성들이 통곡했다는 것을 상기하자. 이러한 반발로 인해 민주화 이후에는 역으로 '이순신은 조선 왕조가 아닌 백성에게 충성했다'라고 주장하며 이순신을 [[민본주의]]적 영웅으로 표현하는 창작물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방향만 반대일 뿐 무리하게 이순신의 성향을 왜곡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랬다면 [[역성혁명]] 혹은 자살 의혹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왕권국가인 조선에서 나고자란 이순신의 충성은 왕과 백성 모두에게 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왕 혹은 국가만을 생각했다는 독재정권의 프로파간다와 백성만을 생각했다는 민주화 이후의 주장은 모두 이순신이 가진 충성의 단면만 두둔하는 것에 불과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