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순철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내 아바타는 [[전준우]]인 것 같다. [[김주찬]]이나 [[김강민]]도 있지만 수비까지 두루 따지면 전준우가 가깝다고 생각한다." > ---- > 2011년, 자신의 아바타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자연스레 발이 느려지고, 수비 범위가 좁아져 중견수 자리를 내주고, 좌익수로서도 일명 뚝떨 안타를 양산하며 악명을 떨치는--더군다나 뒤에 언급된 [[김강민]]은 세 살이나 많음에도 여전히 날아다니며 도무지 늙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2020년대 현 시점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 발언은 2011년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들에게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당시만 해도 전준우는 수비'만' 되는 [[이우민|이승화]]와 어디에 둬도 눈이 썩는 수비를 보이며 1루와 외야를 오간 [[김주찬]]으로 고통 받던 롯데 외야에 혜성처럼 나타난 공수주 삼박자를 두루 갖춘 주전 중견수였다. 풀타임 1년차였던 2010년에 19홈런 16도루로 파워와 주루 포텐을 보인데 이어 2011년은 테이블세터로 나서 컨택에 집중하며 3할 타율과 2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시즌이었고, 수비에서는 경험과 판단력은 부족했으나 워낙 어깨가 좋고 다리가 빨라 몸으로 커버하는 모습을 보여 연차가 쌓이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로 보였다. 즉, 이 시점에서는 빠른 발과 좋은 컨택, 적당한 펀치력에 최상급의 수비력까지 갖췄던 전성기 이순철과 비슷한 유형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었던 후배 전준우에 대한 일종의 덕담인 셈.][* 그러나 이후 전준우는 발목-어깨 수술을 받으며 주루툴이 급감, 2013년을 끝으로 두자릿수 도루를 기록하지 못 했고, 수비력은 끝내 발전시키기는 커녕 신체 능력 하락과 함께 퇴보하며 상술했듯이 좌익수 자리에서도 뚝떨 안타를 양산하기에 이른다. 반면 타격에서는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인 2015-2016 시즌을 경찰청 복무로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타율 0.342에 33홈런을 기록하는 등 이순철에게는 부족했던 장타력을 갖춘 강타자로 변모하며 이순철과는 판이하게 다른 유형의 타자로 성장했다. 결과론적으로는 이 발언은 틀린 예측이 된 셈.] [[KBO 골든글러브]]를 다섯 번이나 탈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홈런 생산능력+도루능력+외야수비 능력 등 전반적인 밸런스가 좋다. 다만 타율은 기복이 심한 편이다. 좋은 시즌에는 3할을 어렵지 않게 쳐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2할 중반까지 하락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통산 타율은 0.262로 레전드급 선수 치고는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94년]] 성적까지로 제한하면 타율 0.277에 OPS 0.798의 웬만한 중심타자 뺨치는 기록을 자랑했다. 선수 생활 후반기에 비율 스탯을 까먹은 케이스. 한편 그의 타율에 가려진 다른 툴이 있었으니 바로 장타력이다. 30홈런 이상은 쳐야 거포 소리를 듣는 지금의 [[KBO]]와 달리, 이순철이 뛰던 시절의 KBO는 20홈런대 홈런왕이 나오는 경우가 흔했다. 30홈런은 [[1988년]] [[김성한]]이 때려낸 것이 최초였으며, [[1991년]] [[장종훈]]이 35홈런으로 홈런왕이 되기 전까지 두 시즌 동안 30홈런 타자가 없었다. 이런 시대에 이순철은 꾸준히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1988년]]부터 [[1993년]]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리드오프로서는 대단한 기록이다. 즉 이순철은 컨택 능력은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었지만(통산 타율만 보면) 출루하면 상대를 뒤흔들고 심심찮게 홈런을 때리면서 스스로 해결도 하는, 당시로서는 완성형 리드오프에 가까웠다. 타이거즈의 이런 장타력 있는 리드오프의 계보는 이후 [[이종범]]이 이어받는다. 의외로 한방 능력이 있는 1번타자이다. 도루를 잘하는 이미지 때문에 특유의 한방 능력이 묻힌 케이스. 그의 선수 시절 최고의 해였던 [[1992년|92 시즌]]에 21개 홈런을 기록하기 이전에도 매년 홈런을 12개씩 쳐주면서 종종 홈런 10걸 안에 안착했을 정도로, 근래 기준으로도 보기 드문 일발 장타력을 가진 1번타자였다. 이러한 장타력을 바탕으로 1번에서 9번까지 어떤 타순에서도 제 활약을 보인 선수로, KBO 최초이자 유일하게 모든 타순에서 홈런을 기록한 진기록이 있다.[* 반면 세간의 1번타자의 통념과 달리 정교한 타격은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잘 칠 때와 못 칠 때의 기복이 지나칠 정도로 극심한 편이였다. 시즌별로 봐도 3할대 타율을 4번 기록했고, 나머지 해는 .277을 뺀 [[1991년]]을 빼면 죄다 2할 6푼을 넘긴 적이 없을 정도로 타율이 극단적이다(...). 그래도 그 당시가 투고타저였고, 이순철은 장타력이 뛰어난 편이었기 때문에 [[1994년]]까지는 [[1987년]]을 제외하면 wRC+는 꾸준히 100 이상은 기록해줬다.] 그리고 전성기 시절 이순철의 주특기는 빠른 발과 뛰어난 펀치력도 있었지만 천재성에 가까운 수비력이었다. 당시 TV로 중계되는 해태 경기를 보면 중견수 방면의 뜬공이 나왔을 때 낙구 지점에 이미 짝다리를 짚고 서 있다가 세상 만사 귀찮음은 다 끌어안은 표정으로 공을 잡았던 이순철의 모습이 등장했다. 이 수비가 소위 '라면수비'[* 왜 라면수비인가 하면 집 근처 슈퍼에 라면 사러 가는 것 마냥 설렁설렁 걸어가서 여유롭게 타구를 잡아내서 라면수비라 불렸다.]였다. 여기에 본인이 애초에 잡기 힘든 타구라면 포구 이후의 플레이를 신경써서 선행주자의 추가 진루를 저지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1996년 한국시리즈]] 5차전 당시 주루를 하던 [[염경엽]]을 잡은 것이 대표적 사례.] 사실 라면수비는 매우 빼어난 수비 실력을 갖지 않은 이상 나오기 힘든 고급 기술이다. 타자의 타격 특성을 파악해서 미리 시프트를 통해 자리를 잡는 것은 기본이며[* 특히 이순철의 현역 시절에는 타자의 타구 방향 빈도를 체크하는 데이터마저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현재 쓰는 외야 수비 페이퍼는 2010년대 중반 이후에야 나온 것이다.] 타격 소리와 동시에 낙구 지점을 파악하는 뛰어난 타구 판단 능력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빠른 발이 더해져야만 중계 화면을 외야로 돌리는 그 짧은 시간에 이미 낙구 지점에 도착해 공을 잡아내는 것이기 때문.[* 고교 시절 야구선수였던 [[김C]]가 선수 시절에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이순철이었는데, 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고 [[브레인 서바이벌]]에서 [[https://youtu.be/r4g5k4Qwuv4?t=31m15s|밝힌 적이 있다.]] 덤으로 야구하기 매우 귀찮고 싫은 표정인데도 너무나 야구를 잘했기에(...)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이병규(1974)|이병규]]에게 라면수비의 계보는 계승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순철의 이러한 수비 능력이 천부적 재능에서 나온 것이 아닌 선수 본인의 피나는 노력에서 나온 대가라는 점이다. 원래 이순철의 수비 포지션은 [[3루수]]였으나 국가대표 3루수 출신 선배 [[한대화]]가 OB를 떠나 해태로 들어오면서 외야수로 전향해야 했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안중에도 없던 외야수를 맡아야 했기에 당시 이순철의 외야 수비 능력은 형편이 없었다.[* 외야수 전향 첫 시즌인 [[1986년]] 이순철의 실책 수는 10개인데 이는 시즌 외야수 최다 실책 기록이다.] 그러자 이순철은 체육관에서 뒤돌아서 타구 소리만 듣고 공을 잡는 연습을 하였다. 정확히는 타구가 뻗어가는 소리를 듣고 타구의 낙구 포착 지점을 판단하는 연습을 기른 것.[* 외야 수비는 넓은 범위를 홀로 커버해야 하고 그 중에도 중견수는 수비 범위가 제일 넓은 포지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타구음만 듣고도 재빠르게 공의 위치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중견수가 공을 더듬는 순간 [[인사이드 파크 홈런]]까지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KBO 리그의 역사에서 손꼽히는 톱클래스 중견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1998년]] 은퇴했을 때 야수 누적 WAR[* 스탯티즈 기준] 5위, 종합 누적 WAR 10위였다.[* 그의 위에 있는 야수로는 [[이만수]], [[장종훈]], [[한대화]], [[홍현우]] 뿐이었다.][* 그 외 바로 뒤에 5년간 신의 활약을 보인 [[이종범]](6위, 종합 13위)과 홈런왕 출신 팀 선배 [[김성한]](8위, 종합 7위)도 있었다.][* 종합 WAR는 [[김성한]]이 이순철보다 높은데, 김성한은 투수 WAR가 3.5 정도 더해지기 때문.] 야수 WAR 10걸에 해태 선수가 5명이나 포진되었으니 [[해태 타이거즈|해태]]의 전력이 얼마나 사기였는지 알 수 있다.[* 투수진에는 WAR가 이순철의 2.5배인 [[선동열]]이나 투수 WAR 5위(종합 WAR 11위) 이강철, 6위(종합 WAR 12위) [[조계현]] 등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