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스탄불 (문단 편집) === 어원 === 이스탄불은 그 역사적 지위에 따라 도시의 어원학(etymology)에 관해서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진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스인들은 이스탄불을 '이 폴리(Η πολή)'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그리스어로 '그 도시'라는 뜻이다. [[오스만 제국/역사|오스만 베이국]]에게 함락당하기 이전,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누폴리스(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시기에 쓰이던 별칭이다. 이는 동로마 제국 시기에 '도시' 라고 하면 당연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누폴리스를 의미하던 것에서 기인한 호칭이다. 실제로 [[안나 콤니니]]의 「[[알렉시아드]]」를 보더라도 '도시(The city, Η πολή)'라면 당연히 콘스탄티누폴리스를 가리켰다. 동로마 제국의 주도 세력이었던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누폴리스에 애착이 무척 강했다. 이는 문학 작품들에서도 나타나는데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아기를 축복하는 동네 아낙들이 "딸들은 저마다 길쌈에 익숙하게 하시고 아들들은 저마다 용감한 병사가 되어 왕들의 도시 콘스탄디누폴리(콘스탄티누폴리스의 현대 그리스어 표기)를 되찾게 하옵소서."라고 노래하고, 튀르키예 독립 전쟁 당시 콘스탄티누폴리스를 '탈환'하지 못한 것을 아직도 통한스럽게 여기는 이가 있을 정도였다. [[콘스탄티누스 11세]]를 추모하는 노래 [[당신은 번개처럼 오시리라]]의 가사에도 도시가 언젠가 다시 성모의 품으로 돌아가리라는 내용이 있다.[* "Σώπασε, Κυρά Δέσποινα και μην πολυδακρύζεις, πάλι με χρόνια με καιρούς, πάλι δικά Σου θά ναι." 해석하면 "성모시여, 진정하시고 울지 마소서. 세월이 흘러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현대의 그리스 공화국에서도 민족정서상의 이유로 터키어식 이름인 '이스탄불(Ιστάνμπουλ)'보다는 현대 그리스어식 표기인 '콘스탄디누폴리(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η)'와 '이 폴리'를 선호한다. [[정교회]]에서도 여전히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부른다. [[기독교]] 5대 [[총대주교]]좌의 하나이자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좌가 여기에 있어서 그 주인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라고 부르지만, 튀르키예 정부에서는 싹 무시하고, '이스탄불의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라고만 부른다. 한번은 이러한 그리스와 터키 간의 언어표현이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2021-22 [[UEFA 유로파 리그]] 조별 리그 2차전에서 [[올림피아코스]]가 [[페네르바흐체]] 원정 경기에서 3 대 0으로 대승한 후 올림피아코스의 구단주 [[에반겔로스 마리나키스]]가[* [[미국]] 국적도 보유하고 있으며 그리스의 대형 유통 기업 CEO로 [[노팅엄 포레스트]]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의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둬서 매우 행복하다. 이 승리를 전 세계 모든 그리스인에게 바친다.", "나는 우리 선수들에게 전날 밤 여기(콘스탄티노폴리스)는 튀르키예 내에 있는 그리스의 위대한 옛 영토이니 반드시 승리를 통해 그리스인과 올림피아코스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고 선수들은 착실하게 이를 해냈다. 또한 우리 구단은 이 도시와 좋은 기억이 많다. 2012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열린 농구 결승전에서 우승한 위대한 역사가 있고 오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위대한 역사를 다시 써준 선수들에게 매우 감사하다."라고 발언하여 튀르키예 전역이 망언이라고 발칵 뒤집혔다. 그러자 그리스에서는 그런 것 따질 시간에 축구연습이나 더 하고 오라고 응수했다.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후 새로운 수도가 되면서 명칭에 혼선이 생겼는데, 사실 오스만의 정복 이전부터 튀르크인들은 이 도시를 '이스탄불'이라 불렀다. 이것은 10세기 무렵부터 아랍에서 쓰던 명칭이었다. 뜻은 '도시에서', '도시로' 정도로, 서쪽에서 번영하던 대도시라는 이미지를 통해 좀 막연하게 붙인 명칭이었다. 이 명칭의 유래를 설명하는 전설이 있다. 처음 콘스탄티누폴리스를 방문한 튀르크인 사절단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어느 그리스인 어부에게 해협 건너의 콘스탄티누폴리스를 가리키며 도시의 이름을 물었는데, 튀르크인 통역자의 그리스어 발음이 영 좋지 않았는지 그리스인 어부는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폴리스를 가리키며 "Εις τὴν Πόλιν;(저 도시요?)" 라고 되물었고, 튀르크인 사절단은 이걸 도시 이름으로 알아듣고 그대로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해당 [[그리스어]]의 발음은 [is tim ˈbolin\]인데, 이 지방에서 쓰던 그리스어 방언으로는 '이스탄불'과 어느 정도 유사한 "Εις ταν Πόλιν[is tam ˈbolin]"으로 발음한다. 실제 있었던 에피소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묘한 전설이다. 이 전설은 그리스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아는 이야기로 오늘날 그리스인들은 이 전설을 가지고 튀르키예인을 비웃기도 하는데, "우리의 위대한 도시 콘스탄티누폴리스는 이름도 제대로 못 부르는 튀르키예 촌놈들에겐 어울리지 않지! (고로 콘스탄티누폴리스는 우리 그리스인들의 품으로 돌아와야 마땅해)"라는 식. 그 외에도 튀르크인들은 이 도시를 '스탐불(ستامبول, Stambul)', '이슬람불(اسلامبول, İslambul, 이슬람을 찾으라[* 특히 셀림 3세 시기의 화폐들에는 일괄적으로 이슬람불 주조 표시가 되어 있지만 그 시대에 한정되어 쓰였다.])', '파이타흐트(پایتخت, Pay-i taht, 옥좌[* 2017년에 방영된 튀르키예 사극의 제목이기도 하다. 압뒬하미트 2세 시기를 다루었다.])', '아시타네(آستانه, Asitane, 술탄의 문지방), 다르사아데트(در سعادت, Dâr-ı saâdet, 행복의 집)', '바브알리(باب العالی, Bâb-ı âli, 웅장한 문)', '데르알리예(در عاليه, Der-ı âliyye, 위대한 집)'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동로마를 멸망시킨 [[메흐메트 2세]]가 친히 '이슬람볼(اسلامبول, İslambol)'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고도 하는데, 확증은 없다. 몇몇 역사가들의 기록에만 등장하는 내용인데, 콘스탄티누폴리스가 오스만 제국에 정복된 직후부터 이슬람볼이라는 이름이 보이므로, 개연성은 충분하다. [[불가리아]], [[세르비아]]와 같은 슬라브어권 지역과 [[루마니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황제의 도시란 의미로 '차리그라드([[불가리아어]]·[[세르보크로아트어]]: Цариград / Carigrad, [[루마니아어]]: Țarigrad)'라고 불렀다. 중세 [[불가리아 제국]]이 잘 나갈 때는 자신들의 수도인 [[벨리코 타르노보]]도 '차르그라드'라 불렀는데 이후에는 그냥 '이스탄불'에만 한정하여 사용되었다. 중세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발칸 반도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콘스탄티누폴리스-소피아-베오그라드 간 도로도 '차리그라드 도로(불가리아어: Цариградски път)'라고 부른다. 중세 시기부터 [[동로마 제국]]과 활발한 교류를 가져왔고, 정교회 문화권의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누폴리스를 '황제의 도시' 라고 불렀던 데서 기인한다. 그 외에도 북부 [[게르만어군]]에서는 이 도시를 '미클라고르드([[스웨덴어]]: Miklagård)', '미클리가르뒤르([[아이슬란드어]]: Mikligarður)' 등으로 부르는데 '대도시'라는 의미인 고대 노르드어 '미클라가르드르(Miklagarðr)'에서 유래한다. 이 명칭은 중세 초기, 온 유럽으로 진출했던 [[바이킹|바이킹인]]들이 자신들이 본 중에서 가장 큰 도시를 '큰 도시'라고 불렀던 데서 기인한다. 페르시아어권에서는 '수도'라는 의미의 '파이타흐트(پایتخت, Pâytaxt)이라고 불렸으며, 이외에도 '고스탄타니예(قسطنطنیه, Qostantaniye)'[* [ɢostæntænije\]]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오스만 제국의 점령 이후로도 제국의 공문서에서는 '코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 Kostantiniyye)'를 더 선호했다. 이는 [[아랍어]]로 '[[콘스탄티누스 1세|콘스탄티누스]]의 것'이라는 뜻의 '쿠스탄티니야(قسطنطنية, Qusṭanṭinīyya)'라고 쓴 것을 다시 오스만 튀르크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미 현지에서는 '콘스탄티누폴리스'라는 명칭이 워낙 뿌리 깊게 박혔던 탓이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 파디샤들 또한 무슬림이었지만 동로마 제국의 후계국가를 자처했기 때문에 동로마와의 직접적인 연결성을 부여하는 해당 명칭을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민족의식이 강해진 19세기에는 그리스식 명칭인 '콘스탄티누폴리스'를 버리고 '이스탄불'로 굳어졌고, 구어적으로 사용되던 명칭은 완전히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되자 '이스탄불'을 제외한 기타 명칭들은 폐지하고 '이스탄불'로 완전히 공식화했다. 아예 튀르키예 우편에서 '이스탄불' 이외의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누폴리스', '코스탄티니예', '차리그라드', '쿠스탄티니야' 따위 이름으로 적힌 우편은 무조건 취급하지 않겠다고 강경 엄포를 때릴 정도였다. 이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리스어권을 제외한 대부분 언어권에서는 이스탄불 혹은 이스탄불에서 유래한 표기를 사용한다. 다만 이와 별개로 현대 튀르키예에서는 그리스어의 콘스탄티노스와 같은 어원(라틴어의 콘스탄티누스)을 가진 이름인 코스탄틴이 남성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