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용상 (문단 편집) == 여담 == *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인 가문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화산 이씨 외에도 정선 이씨가 있다. 리 왕조의 4대 황제인 인종 이건덕의 셋째 아들이자 5대 황제 신종 [[신종(리)|이양환]]의 아우가 되는 이양혼(李陽焜)이 조상이다. 이양혼은 신종과 제위를 두고 다투다 북송으로 망명했고, 이후 북송이 쇠락하면서 고려로 와 경주에 정착했으며, 그 9대손인 이우원이 정선으로 옮긴 이래 본관을 정선으로 삼아 지금에 이른다. 나라가 망해가는 가운데 탈출한 이용상의 이야기가 워낙 드라마틱해서 이쪽은 좀 묻힌 감이 있지만 [[1995년]]에 화산 이씨와 함께 베트남을 방문해 황손으로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의민#s-3]]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쪽 집안의 족보도 신빙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 [[베트남]]에서는 [[보트피플]]의 시조라는 농담도 있는 듯하다. 이걸 그저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고국을 떠난 이용상의 후손으로서 고국을 다시 찾은 이창근을 띄움으로써 보트피플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도록 선전한다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돌아왔긴 했는데 완전히 [[한국인|다른 나라 사람]]이 되어서 왔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피소드/2018년#s-1| 2018년 1월 7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 [[프리한 19]]에서도 이용상의 일대기가 다뤄졌는데, 프리한 19의 진행자 중 한 명인 [[한석준]]의 외가가 화산 이씨였다고 한다. 본인은 과거 어른들로부터 외가가 베트남 쪽의 혈통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는 모양이다. 그 당시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은 [[고려]]에 귀화한 이후 [[황해도]]에 정착해서 살고 있었는데, 실제로 한석준의 외갓집 고향이 황해도의 [[사리원]], [[해주]]였다고 이야기를 했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BdeoXyNVAbs&t=360s|#]] * 중국 [[바이두 백과]]에 나오는 이용상이라는 문서 중에서 논란되는 부분(相关争议)이 등재되어 있다. 이 부분을 살펴보면, 이용상이 최초로 사료(史料)에서 언급되는 시점이 늦고 한국과 베트남 간의 역사를 다루는 어떠한 것도 남기지 않아서 160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용상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선 중기 도사를 지낸 조여적(趙汝籍)의 문집인 《청학집》(靑鶴集)에서 편운자(片雲子)[* 이름은 이정원(李挺元) 또는 이승조(李承祖)로, 조선 중기의 도인.]가 홍주(洪州) 사람 이양필(李良弼)의 선조는 "안남국의 왕이었던 이양환이고, [[이종(송)|이종]] 때,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에 들어왔다."고 하였고, 이맹운(李孟芸)[* [[두문동 72현 전설]]에 나오는 인물.]은 옹진 사람으로 "그의 조상은 이용상이다."라고 말했다.《씨족원류》(氏族源流)를 보면, 화산 이씨라고 적혀 있는 경우는 없고, 오히려 옹진 이씨로 적혀 있는 게 있다. 1906년 해주의 마산면이 옹진군에 편입되기 전까지만해도 옹진의 중심지는 북면 화산동리였다. 즉, 20세기 전까지 화산 일대가 옹진 지역의 중심지역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옹진 이씨의 표현은 오늘날의 화산 이씨와 병존하여 쓰였거나, 훗날 옹진읍의 승격으로 중심지가 옮겨지면서 본관지의 구읍과 새 신읍과의 구별을 위해 본관의 명칭을 화산으로 점진적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송사》(宋史)나 남송의 문학가인 주밀(周密, 1232~1298)이 지은 《제동야어》(齊東野語)와 《고려사》의 내용을 짜깁기해서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적혀 있다. [[https://baike.baidu.com/item/%E6%9D%8E%E9%BE%99%E7%A5%A5/10773883?fr=aladdin#3|출처]] * 이러한 일화들 덕인지, [[대체역사소설]] 쪽에서도 활용되는데, 해방 이후 한국사 설정에서 한국이 대외 확장이나 동남아에서 영향력을 확장할 제일 좋은 기회로 이들 후손들을 이용한 친분 쌓기가 설정된다. 만일 된다면, 최소한 남베트남 혹은 베트남 전역이 친한국가가 되거나 대한민국 안남도가 되었다는 두가지 방향이 제시된다. 하지만 근대 배경 대역소설에서 가끔 언급되어 활용되는 정도지. 정작 본인이 살았던 고려 배경 대체역사소설에선 그렇게 활용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용상 본인은 고려사에선 적혀있지 않고 중진도 아니기 때문에 활용하기엔 어려워서로 추측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