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용수(1928) (문단 편집) === 1993년 증언 === >내 동갑내기 친구 중에 김분순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술장사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내가 그 집에 놀러가니까 그 어머니가 “너 신발 하나 옳게 못 신고 이게 뭐냐, 애야, 너 우리 분순이하고 저기 어디로 가거라. 거기 가면 오만 거 다 있단다. 밥도 많이 먹을 거고, 너희집도 잘 살게 해준단다.”라고 했다. 당시 내 옷차림새는 헐벗고 말이 아니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새벽, 분순이가 우리 집 봉창을 두드리며 “가만히 나오너라” 하며 소곤거렸다. 나는 발걸음을 죽이고 살금살금 분순이를 따라 나갔다. 어머니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냥 분순이를 따라 집을 나섰다. 집에서 입고 있던 검은 통치마에 단추 달린 긴 면적삼을 입고 게다를 끌고 있었다. 가서 보니 강가에서 보았던 일본 남자가 나와 있었다. 그는 마흔이 좀 안 되어 보였다. 국민복에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옷보퉁이 하나를 건네주면서 그 속에 원피스와 가죽 구두가 있다고 했다. 보퉁이를 살짝 들쳐 보니 과연 빨간 원피스와 가죽 구두가 보였다. 그걸 받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만 다른 생각도 못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 나까지 합해 처녀가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 길로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경주까지 갔다. 그때 나는 생전 처음으로 기차를 타보았다. >경주에 가서 어느 여관에 들어갔다. 여관 앞 개울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산비탈에 보라색 꽃이 한송이 피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꽃이어서 무슨 꽃이냐고 물어보니까 도라지꽃이라고 했다. >거기서 이틀밤인가를 지냈는데 또 여자 두 명을 더 데리고 왔다. 그래서 여자가 모두 일곱 명이 되었다. >경주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를 지나가게 되었다. 달리는 기차의 깨진 유리 차창 저편에 우리집이 보였다. >그때서야 비로소 집생각이 나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난 우리 엄마에게 가야 한다고 하면서 막 울었다. >옷보퉁이를 밀치며 이거 안 가질 테니 집에 보내 달라고 하며 계속 울었다. 울다가 지쳐서 곯아떨어졌는데 얼마나 갔는지 모르겠다. >여러 날을 간 것 같다.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군위안부들(1) 』, 한울, 1993, p. 124 >대구에서 우리를 데려간 남자가 위안소의 주인이었다. 우리들은 그를 ‘오야지’라고 불렀다. 여자들 중에서 내가 제일 어렸다. 분순이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았고, 다른 여자들도 열여덟, 열아홉, 스무 살 정도 되었다. 방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안 들어가려고 하니까 주인이 내 머리끄댕이를 잡아끌고 어느 방으로 데려갔다. 그 방에서 전기 고문을 당했다. 주인은 지독하게 독한 놈이었다. 그는 전화 코드를 잡아 빼서 그 줄로 나의 손목, 발목에 감았다. 그리고는 “고노야로” 하며 전화통 손잡이를 마구 돌렸다. 나는 눈에 불이 번쩍 나면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더는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울부짖으며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전화기를 돌릴 때 나는 견디지 못해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물을 끼어 얹었는지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군위안부들(1) 』, 한울, 1993, p. 127 여성가족부의 일본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에 93년 증언 전문이 기록되어 있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 첫 번째 증언은 '취업 사기'에 가까운 증언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용수가 당시 기준으로도 미성년자고, 위안부가 되는 데 본인과 부모 포함 가족 동의가 없었고, 속임수에 의한 인신매매도 강제 납치로 분류되며, 위안부가 근무하는 지역은 민간인 출입이 자유로울 수가 없는 전방이라는 점에서 이용수를 일본 제국에 의한 납치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다. 영화 '귀향'에 반영된 일본군에 의한 강제납치 증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내용의 일부가 남아있다. [[https://www.facebook.com/hermuseum/posts/695565333933540:0|e역사관 페이스북 페이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