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재만(1959) (문단 편집) == 구청장 재임 시절 == 2006년 5월31일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동구청장에 초선으로 당선되었다. 아무래도 지금에서야 정치경력이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노련한 베테랑이지만 당시로서는 정치와는 큰 연이 없는 사업가였을 뿐더러 입당한지 1년도 채되지 않은 정치신인이였기에 주변의 시선은 응원보다 흔들기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당시 대구에서 정치신인이 [[공천]]을 받는다? 어림도 없는 일) 하지만 그의 사업가 시절부터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배짱]]과 [[강단]]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불도저였기에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기보단 정면돌파였다. 그러한 그가 그저 배짱만 있는 것은 아닌게 구청장후보 시절부터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대구동구의 가치를 높인다"'''라는 구체적인 사안은 당시 기준으로 30년전에 비해 타지역의 땅은 25배가량 올랐는데 동구는 10배가량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착안한 대구동구의 가치를 높인다는 공약이였다. 과거의 동구에서 착안하여 공약으로 이행하는 면, 이러한 면만 보아도 그저 배짱만 있는 것이 아닌 [[지능캐]]의 면모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2023년 '''현시점에서 보면 지방 청년들이 서울로 계속 이주한다는 점과 지방의 젊은 청년들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회문제'''가 몇년새에 심화적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17년전에 진작 이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동구에는 복지시설이 꽤 있지만, 당시엔 지금과 달리 복지시설 한 곳을 가기위해서 꽤나 걸어야했다. 대구토박이였던 그 조차 이러한 부분에서 '동네에 뭐가 이렇게 없냐'였다. 학부모입장에서는 도서관이 없고, 노인입장에서는 노인복지관이 없고, 학생과 청년들 입장에서는 구민운동장이 멀찍이 있고, 그 외에도 문화적인 [[메리트]]가 없으니 동구에 사는 여유있는 사람들도 타도시로 떠나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사업에서 성공을 해본 사람이라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파악하는 것에 도가 터있는 그였기에''' 동구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그의 해답은 이러했다. "동구의 교육여건 개선과 사람들이 눌러앉아 살기에 좋은 환경." 그러니까 더 쉽게 얘기하면 주거지역에서 5분 이내에 도달 할 수 있는 '''문화시설들을 만드는것이 지역의 가치를 올린다'''는 것이다. 당시 구청장 후보들과 비교해보아도 동구의 가치를 올리겠다는 명확한 플랜이 있는 후보임과 동시에 사업으로 이미 증명을 한 사람이다보니 정치신인이라는 약점 아닌 약점을 뒤덮고도 남았다. --(일은 해본놈이 잘한다더니...)--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주변의 우려섞인 시선을 무색하게 구청장 후보자리에 공천을 받아냈고, '''경선에서는 80.4%의 압도적인 득표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그에 더불어 그는 후술할 구청장 재임시절 과학고 유치등의 교육과 문화에 관련된 사업에 관해 공을 들였는데 그가 명문고,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꽤나 고생을 한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구청장 재임시절 구청장 업무를 다 보고 '''퇴근을 한 뒤에는 바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수업을 듣고 마친 뒤 다시 KTX를 타고 내려오며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갓생]]을 살기도 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